벨트와 뱃살

벨트를 했다 뱃살 안 답답한 걸로

by 사샤

아끼는 청바지가 하나 있다. B 사에서 7만 원인지 8만 원 주고 산, 내 기준 비싼 바지다. 여기 와이드 데님이 워낙 예쁘다고 하길래 한 번 질러 본 바지다. 보통 때 같으면 바지는 에잇세컨즈나 지그재그 쇼핑몰에서 5만 원 아래 가격 주고 사니까.


그런데 요즘 밑단이 자꾸 바닥에 끌린다. 원래도 긴 바지만 입던 터라 이 바지도 길었던 건 맞는데, 신발 신고 걸어 다니다 보면 계속 뒤꿈치가 바짓단에 한 번씩 걸린다. 바짓단 ‘갈고리’에 걸렸다가 바지 안쪽에 땅 먼지를 잔뜩 묻히고는 겨우 빠져나온다. 허릿단이 커졌나 본데 그렇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다. 바지가 체형에 맞게 늘어났거나 뱃살이 빠졌거나. (예히)


스크린샷 2025-04-29 171610.png 언니 넘나 멋지시네요 근데 바짓단 괜찮아요? 곧 밟힐 것처럼 보여서요 (출처 : W 패션)


아무래도 마음은 후자로 간다. 그래, 뱃살이 빠졌나 보다. 거울을 보니 바지 단추가 배꼽 아래로 내려와 있다. 동그란 바지 단추가 역시 동그란 (다만 위아래로 살짝 눌린 원형의) 배꼽 언저리에 얹혀 있었던 것 같은데 더 밑으로 내려온 것 같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 허허허) 너무 ‘똥 싼’ 바지처럼 됐나 싶어 벨트를 매 봤다.


실은 나는 벨트를 싫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신체 부위보다도 배에 살이 많았던 이유로 벨트를 잘 매지 않았다. 벨트를 맨 느낌이 익숙하지가 않다. 허리를 조이는 듯한 특유의 느낌. (조이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크흠 그러라고 있는 게 벨트잖니) 특히 앉았을 때 이 ‘조임’은 배가 된다. 배꼽을 중심으로 마치 뱃살이 숨을 쉬지 못하기 시작한다. 불편해진다. 그래도 언젠가 벨트가 필요하겠지 싶어 고무줄처럼 신축성이 있는 벨트를 쿠팡으로 사놨었지.


꽤 편한 벨트인데도 뱃살을 감아버리는 디자인은 매한가지다. 또다시 쿠팡에 도움을 요청하니, 바지 단추 양 옆에 있는 벨트 고리에 고정시켜 사용하는 벨트가 나온다. 제품 이름도 ‘무압박 노버클 벨트’다. (정말 별 게 다 있다) 4천 몇 백 원에 2개 준다기에 사봤다. 하나는 검정, 하나는 중청색 데님과 잘 어울리는 네이비 색깔로 골랐다.


스크린샷 2025-04-29 171819.png 무압박 노버클 벨트 이렇게 생겼습니다 저만 처음 봤나요? 허허 (출처 : 쿠팡)


배송 완료 메시지를 받고 서둘러 집에 가 이 은혜로운 벨트들을 확인했다. 착용해 봤다. 가격만큼의 질이긴 해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쓸 만하다. 과연 뱃살 ‘무압박’은 사실이었다. 얇은 고무 밴드처럼 생겨서, 바지 윗부분을 덮을 정도로 긴 상의를 입으면 벨트를 했다는 티도 안 난다. 한두 번 이 벨트를 하고 출근을 했다. 티는 안 나지만 벨트를 했다는 느낌까지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간 바지에 달린 벨트 고리가 하얀 실밥을 터뜨리며 장렬히 튕겨져 나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았다. (허허) 가끔씩 쓸 정도는 되겠다고 결론지었다.


B 사의 와이드 데님은 물론 내가 입는 대부분 바지들이 바닥에 끌린다. 바지들끼리 입을 맞춰 다 함께, 딱 이 시점에 허리가 늘어났을 리는 없으니 내 뱃살이 일부 사라진 게 확실하다. 지난 주말 엄마가 기장이 애매해 잘 안 입으신다는 배럴핏 면바지를 집에 모셔왔다. 애초에 허리가 크게 나온 디자인이라 더욱이 헐렁했다. 이번에는 본디 집에 계시던, 스트레치성을 겸비한 검정 벨트를 매 줬다. 멋쟁이로 출퇴근하는 데 성공했다.


바지 2개는 아무래도 밑단이 너무 땅에 끌려서 바짓단을 1cm만 줄이기로 결심했다. 혹시 후회할 수도 있으니 이따 퇴근해서 다시 입어보려고 한다. 굽이 조금 있는 운동화에도 매치해서 기장 확인을 다시 한 뒤, 신중하게 세탁소에 맡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나와 우리 엄마가 신뢰하는 할아버지 세탁소는 인근 아파트 상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어제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허리둘레도 재봤다. 그런데......


몸무게 58.8kg에 허리둘레 71.5cm. (참고로 내 키는 160cm 후반 대다) 몸무게는 조금 쩠거나 비슷한데 (오 마이 갓) 허리둘레가 1.5cm 줄었다. (엥) 역시 몸무게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몸무게 먼저 재고 갑자기 세상이 잿빛이 됐던 건 안 비밀이다) 그런 것이었다. (후......)


아무튼 고무적인 결과지만 이 결과에 너무 고무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뱃살이 많아지건 줄어들건 모두 다 사랑스러운 내 뱃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줄었으면 좋겠다 호호호호호) 중요한 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 몸은 사랑스럽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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