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낭만에 대하여
내 강박 중 가장 최고 강박은 뭘까.
어제 아침에도 생각했다. 아침 요가를 마치고 스포츠센터 샤워실에서 씻고 탈의실에서 벗은 몸에 바디로션을 바르며 또 한 번 깨달았다. 불룩 튀어나온 하얀 내 뱃살. 어젯밤에 단백질을 과다 섭취했는지 (어쩌면 그냥 과식을 했는지) 소화가 잘 안 되더니만 자면서도 칼로리 소모가 잘 안 됐나...... 오늘따라 더 튀어나온 것 같은 내 뱃살. 뱃살 강박이다.
강박 최고봉 ‘뱃살 강박’은 내 모든 강박의 원천이 되고 있다. 다이어트 강박, 운동 강박, 바지 강박, 옆태 강박, 불룩 강박(불룩 튀어나온 것 자체를 없애고 싶어 하는)...... 끝도 없다.
“나는 60kg가 넘지만 근육도 많고 탄력도 있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야”를 외치는 퀸가비 언니(나보다 멋있으면 다 언니다)를 보면서도 ‘난 근육이 없는데’라고 되뇌며 ‘표준 이하’를 가리켰던 인바디상 골격근량을 떠올렸다. 이런 이런.
그러면서도 “내 몸이 싫기 때문에 바꾸려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몸에 더 많은 사랑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가꾸는 것”이란 언니 말을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건강식과 운동 따위를 실천했고 긍정적 결과(심신과 컨디션의 변화)와 부정적 결과(건강식·운동·뱃살 강박)를 동시에 얻었다.
강박 잠금해제, 최고 강박과 이별하는 수순에 들어가야 할 시간. 뱃살과 화해하기 권법, 시작하려고 한다.
아침에 좀 더 홀쭉한, 하루 세끼를 다 품은 채로 종일 가장 솟아오른 늦은 밤의 뱃살까지 내 품에 안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매일 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뱃살을 지켜보기로 한다.
하얀 뱃살, 윗옷에 가려진 뱃살, 앉아있느라 접힌 뱃살, 밥을 먹으며 실시간으로 부풀어 오르는 뱃살, 그리고 각종 뱃살들...... 모두 내 사랑스러운 뱃살이므로 매 순간 뱃살과 함께해보려고 한다. 따스하게 또는 뜨겁게 바라보려고 한다.
지난주 목요일을 기점으로 아주 최근까지도 (실은 좀 전까지도, 어쩌면 지금도......) 내 뱃살을 미워했다. 목요일에 헬스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서비스 차원으로 해주는 일대일 PT를 받았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인바디를 재자고 하셨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올라간 인바디 체중계는 내게 32% 체지방률을 보여줬다. 근육량은 전보다 1kg이 늘어 기분이 좋았지만, 체지방(뱃살)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그래, 인바디는 아주 많이 부정확하다고 트레이너 선생님도 말씀하시잖니. 그런데 꼭 쟀어야 하는 건가. 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늘 아침, 언제나처럼 변기에 앉아 일을 보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옆태를 확인했다. 옷을 걷어내 뱃살을 드러내고 어젯밤과의 크기 비교를 한다. 음...... 오늘은 어쩐지 허리둘레도 재보고 싶었다. 갈비뼈와 배꼽 사이를 재는 거라고 하니 73cm. 네이버한테 물어보니 28.7인치다. 지난 연말 건강검진에서 68.7cm였던 것 같은데, 난 요즘 바지가 헐렁해진 느낌인데, 무슨 일이지. 내가 잘못 잰 건가(건강검진이 잘못된 건가 크흡)...... 생각이 또 많아진다.
하지만 분명 윗배가 아랫배에 드리운 그림자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좀 더 묵직했던 윗배가 몇 달 새 작아진 걸 알아챌 수 있다. 아랫배도 축 쳐져 있기보다 위쪽으로 조금은 올라붙은 느낌이다. 물론 몸통이 가느다란 느낌은 (적어도 오늘은) 들지 않는다.
다시 알아차린다. 몸통이 가느다랄 필요는 없다고. 지금도 예쁘고 계속 예뻐지고 있다고, 내 뱃살에 칭찬해 주려고 노력한다. 내 몸을 사랑하려는 힘을 내본다. 물론 이 문장들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긋한 진심이 담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아가보겠다,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강박을 없애가겠다.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을, 나를 더 사랑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