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적

진심 진심 부끄러운 자기 고백

by 사샤

야근을 해야 한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선 이후 새롭게 문 연 정부를 비판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인사부터 장관 후보들까지, 새 대통령이 과연 올바르고 유능한 사람들로 팀을 꾸리려고 하는지 감시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기자로서 나는 사내 ‘차기 정부 인사 검증 태스크 포스’에 자원해 합류했다.


동료 3명은 약 보름 전부터 인사 검증 취재를 먼저 시작했고 놀랄 만한 기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준비한 기사들이 보도돼 세상에 크나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이, 나도 이 기사들 못지않은 취재 결과를 만들어놔야 한다. 동료들 뒤를 이어 사회를 바꿀 기사들을 연달아 출판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집요하게 취재하더라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야근을 하든 주말 근무를 하든 뭘 하든 매달려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근하기 싫다. 주말, 휴일 근무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취재가 어려운 만큼 성과가 부진할까 걱정되는 건 나중 문제다. 다 망하더라도 저녁 6시 ‘칼퇴’만큼은 반드시 수호하고 싶은 내 마음이,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나란 인간이 박사샤 기자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현충일이었다. 엄마와 이태원 앤틱 가구 거리에 갔다. 가구와 그릇, 옷 등 각종 빈티지 물건을 평소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축제 기간이었다. 유럽 여행에 가면 매주 주말에 동네마다 열리는 이런 벼룩시장에 꼭 들렀다. 지난해 겨울 엄마와 동생까지 셋이서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도 벼룩시장에 갔었다. 행복했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려고 오랜만에 이태원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메신저 알림이 계속 울렸다. 인사 검증 TF 단체 대화방이었다. “알아보니 이런 게 있었다”며 팀원들에게 공유하는 대화였다. 서로가 취재한 내용을 나누며 온라인상의 대화는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대화 속에 없었다. 이태원 가구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눈앞의 엄마와 대화 중이었을 따름이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두 가지 대화를 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귀하게 성사된 엄마와의 데이트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얼굴에 불편한 기색마저 숨기기는 힘들었다. 두 가지 대화 중 어느 대화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휴일인지 평일인지 모르겠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동료들처럼 휴일에도 일하다 온 아빠와 만났다. 부모님과 셋이 오붓하게 삼계탕을 먹었다. 나는 두 분과 이렇게, 그저 두 분의 딸로서 오늘을 즐기고 있는데 다른 동료들은 여전히 기자로의 삶을 살고 있음을 토로했다. 괴롭다고 했다. 역시 난 기자 할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면서도 변화할 의지는 도저히 생기지 않는 나 자신이 진심으로 싫었다. 엄마와 아빠는 말했다.


“정 신경 쓰이면 너도 집 가서 일해.”

“그래도 일하기 싫으면 월요일에 더 열심히 해.”


이런 말도 했다.


“기본적으로 회사는 열심히 다녀야 하는 거야. 성실하게.”

“괜히 스트레스받지는 말고. 조금만 해, 조금만.”


깨달음을 얻은 나는 뒤늦게 메신저 대화방에 이렇게 썼다. “제가 지금 밖인데, 들어가서 살펴볼게요!”


물론 휴일 근무가 불가피한 상황에는 나 역시 당연하게도 일을 한다. 야근도 마찬가지다. 팀원 모두가 평소 근무 시간을 초과해 일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라면 더욱이 사전 합의를 거쳐 모두가 회사로 출근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직장에서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재직하는 내내 꽤 정기적으로 했다. 이번 현충일은 이런 상황이나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으므로 팀장은 내게 “오늘 일할 필요 없다. 근무일에 일하면 된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휴일에 일한 일부 동료에게는 오늘 일한 대가로 대체 휴일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마음이 아주 약간 편해졌다.


직업인으로의 나, 그냥 한 사람일 뿐인 나를 분리하기 위해 수년을 분투해 왔다. 직업인이 된 초창기에는 각기 다른 내가 절대 분리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집에 와서도 회사에서의 일을 곱씹으며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한숨도 쉬지 못한 채로 다음 날 출근해서는 지친 상태로 업무를 이어가곤 했다. 언제부턴가 목과 어깨 통증이 심해졌다. 살기 위해 운동의 세계에 입문했다. 날마다 버티듯이 두 명의 나를 안고 가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해 이 둘을 이제야 간신히, 거의 떼 놓았다. 그러나 가끔은 ‘그냥 나’를 잠시 뒷순위로 두고 직업인으로의 나를 우선하는 게 필요한데,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잘 안된다. 반강제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어쩌다 재밌는 아이템을 취재하게 돼서 나도 모르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야만 평일 저녁 6시 이후와 ‘빨간 날’에도 박사샤 기자가 될 수 있다. 이는 흔한 사례가 아니다.


스크린샷 2025-06-08 214958.png 빨간 날인데 왜 다들 일을 하는 건가요 물론 이해가 안 되진 않는데요.... (출처: 연합뉴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종종 ‘그냥 나’가 박사샤 기자에게 져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게 박사샤 기자와 ‘그냥 나’ 모두에게 좋은 길로 보이니까. 박사샤 기자의 가장 강력한 적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부끄럽네요. 안녕하세요. 사샤입니다.


야근하기 싫은 기자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나니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브런치에 글까지 써서 올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 글은 이번 주 직업에세이 수업 과제 글이었습니다. 직업인인 나와 한 사람으로서 나, 이 둘 사이에서 고민했던 경험을 글로 써보는 게 과제였어요. 하...... 아무튼 부끄럽습니다.


글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저와 동료들의 차이가 단순히 개인 시간이 중요한 사람과 업무 성과가 중요한 사람의 차이인 건지, 혹 그 이상의 어떤 차이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네...... 저도 제가 그저 일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이번 일이 발생한 것 같지는 않고요. 음. 분명 더 깊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고민 중입니다. 고민의 결과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2편도 한 번 써보도록 할게요.


네...... 또 월요일 아침이 밝았고 저는 아침 요가에 다녀와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평일 근무 시간이 시작될 거니까요 ㅠㅠㅋㅋㅋㅋㅋㅋ 나는 정말 왜 이러는 걸까...... 한번 제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빠샤


여러분도 힘내는 하루 보내시옵소서! 곧 재밌는 글로 다시 찾아올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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