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와 눈을 맞췄다 진심으로
C 선배는 내 안중에 계신 분이 아니었다. 현재 회사로 이직한 지 4년이 돼 가도록 일 한번 같이 해본 적 없었다. 일은커녕 대화다운 대화도 거의 나누지 못했다. 아, 직전 문장을 쓰다가 생각났는데 입사 직후에 나와 동기들에게 선배가 근사한 중국집에서 밥을 사신 날이 있었다. 그때 긴장한 상태로 선배와 말을 주고받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기억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아무튼, 이와 별개로 C 선배는 오랜 시간 언론 판에서 이미 유명한 분이셨기에 나는 기자 준비생 시절부터 선배에 대한 존경, 아니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솔직히 선배는 무슨, 선생님이지. 저널리즘을 향한 열정이 폭발하기 시작한 어느 날 이후로 C 선생님은 줄곧 내 곁에 은은하게 계셨다. 실물만 아니었을 뿐.
충격적이게도 이직한 회사로 출근한 첫날, 내가 쓰는 건물 층 한 자리에 C 선생님이 버젓이 앉아 계셨다. 굉장히 집중한 옆얼굴이 보였다. 어쩌다 C 선배가 됐다. 그 순간 2021년 5월의 나는 ‘아,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는 게 참 재밌네. C 선생님을 어떻게 C 선배라고 부르지? 말도 안 돼’라고 조용히 혼잣말했다. 그러나 또 한 번 놀랍게도 내가 “C 선배”라고 부를 일 자체가 사실상 발생하지 않았고 언제부턴가 ‘C 선배가 내 이름을 알기는 할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C 선배와 내가 한 팀이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배경이다. 그렇다. 그와 내가 결국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두 달간 운영되는 TF 팀이 꾸려졌고 나는 이 팀에 자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C 선배도 TF 팀 소속이었다. 팀장과 일부 팀원들 즉, A 선배와 B 선배, C 선배 그리고 나까지 모두 같은 층을 쓰고 있었고 TF 팀이 사용하게 된 아래층으로 각자 컴퓨터와 소지품들을 옮겨야 했다. 그날도 C 선배는 하얀색 콩나물(에어팟)을 양쪽 귀에 꽂고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그의 머리카락 색깔과 조화롭게 연결돼 보였다) 업무에 열중하고 계셨으므로 나는 선배를 불러야 했다. “C 선배, 지금 저희 짐 옮기려고요.” 몇 년 만에 선배를 불러본 듯했는데 “어, 어. 고마워”라고 답하시는 목소리가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듣던 그 목소리였다. 아, 여전히 선배는 내게 연예인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사전 투표도 끝났고 벌써 대선일이 모레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 출근하면 TF 팀도 해산이다. C 선배와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아쉽게도 나는 그와 아직도 많은 대화를 해보지는 못한 상황이다.
다만 눈을 맞췄다. C 선배는 항상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걸었고 내 대답을 듣는 내내 따뜻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누구보다 나와 후배 팀원들 의견에 힘을 실어준 선배였다. 선배는 사내 그 어떤 동료들보다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에 취재와 보도에 관해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정년을 앞둔 나이에도 (C 선배는 사내 최고령자다) 대학원을 다니시며 과제도 성실하게 해내는 그는 취재도 모범생처럼 했다.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고, 스마트폰을 계속 귀에 갖다 댄 채로 수화기 너머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쉬지 않고 물었다. 동료들 중에서 가장 챗지피티를 실속 있게 활용하셨다. 고수할 것은 고수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수십 년을 언론인으로 살아오신 선배는 자신이 취재한 사회 문제가 끝내 해결되는 그날까지, 취재와 보도의 끈을 놓지 않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쯤 되면 당신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 ‘꼰대’가 되셨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적대 관계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일부 동료들조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면면을 나는 운 좋게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오히려 다른 후배들이 구태여 편견과 오해에 갇히지 않도록 다양한 목소리를 대신 전달해 주는 창구 역할까지 하셨다. 친절과 포용을 두루 갖춘 C 선배는 그리고, 언제나 당당했다.
나 정말 이렇게 C 선배 예찬론자가 될 줄 몰랐다. 기본적으로 언론 판의 선배를 예찬하지 않는다. 이 회사로 이직할 때 A 선배가 면접관으로 나오셨는데 “기자 중에 롤모델이 누구냐”고 집요하게도 물으셔서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난 롤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허허) 일하면서 기자들 각자 장단점이 있을 뿐 완벽한 기자는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도 깨달았던 탓이다. 오히려 괜히 선배 대접만 바라는 어떤 선배들을 내심 무시를 하면 했지 미미한 수준의 존경조차 해보기는 했던가, 싶을 정도였다. (첫 직장에서 데인 게 많아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내가 롤모델이 없다고 재차 설명을 드렸건만 A 선배가 끝까지 특정 한 명을 거론하기를 원하셔서 아무나 대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던 내가 C 선배를 예찬하고 있다.
C 선배가 회사에 계실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기에, 아마도 이번 TF 팀에서처럼 서로 부대끼며 일할 날은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종종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실 수는 있겠지. 그런 용기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선배께 대화를 신청해볼까 한다. 저널리즘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처럼 일이 잘 안 될 때 선배는 어떻게 하셨는지 노하우들을 쏙쏙 빼오고 싶다. 다른 동료들 노하우보다도 C 선배 노하우, 참으로 궁금하다. 머리카락이 아예 새하얗게 세버리고, 노트북을 바라보는 찡그린 눈 주위로 자글자글 잡힌 주름들의 골이 더 깊게 파이고, 타닥타닥 타자를 두들기는 손등에 검버섯이 늘어난 10년 뒤에도 한창 청춘인 저널리스트로 C 선배가 현장에 계시기를 고요히 소망한다.
(촬영기자 남편 빼고) 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C 선배 감사했습니다. 선배랑 저 같은 층 쓰니까 앞으로는 종종 대화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봬요 선배.
사샤입니다.
제가 언론인 선배를 실제로 진심을 다해 존경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동안은 선배들의 민낯을 볼 때마다 실망만 해왔던 저인데, C 선배는 정말 멋지시더라고요. 제가 사실 C 선배에 대해 아주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는 진짜 저널리스트셨습니다. 수십 년을 한결같이 낮은 자세로 조용히 열정을 불태우시는 분이세요. 또 이런 선배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TF 팀이 벌써 해산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대선이 치러지고 앞으로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취재를 할 수 있을지 예측이 잘 되지 않습니다. 사내 여러 변화와 움직임들이 점점 더 예측이 안 되는 쪽으로 향해가고 있어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주변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시끄러워도 당신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시는, 당신의 길을 가시는 C 선배를 보며 저도 따라해 보고자 합니다.
C 선배와의 일화를 더 구체적으로 적지 못해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필명으로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고 여전히 지금 회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게 많아요. 아쉽지만 뭐, 또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지금과는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일을 하게 될, 그래서 업데이트될 제 ‘업’ 이야기를 이곳 브런치에 풀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정말 다행이고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갑자기 ㅋㅋㅋㅋㅋㅋ)
다들 편안한 일요일 밤 보내세요. 다음 주에 뵐게요!
C 선배와의 일화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걸어드린 ‘얘기되는’ 아이템 시리즈 두 편의 글들을 읽어주시면 됩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