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요가, 이깟 아사나

삶이, 오늘 하루가 중요한 거지

by 사샤

오늘 매우 짜증 나는 요가를 했기에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오전 10시 아쉬탕가 요가를 했다. 퇴사 후 동네 요가원에 다닌 지 어언 한 달이 지났고, 어쩌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는 오전에 아쉬탕가를 한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초보자와 숙련자 그 어디쯤에 있는 나는 (내 생각이다.) 아쉬탕가가 벅차디 벅차 좋기보다 싫고 짜증 나고 화가 치솟지만 (정말 치솟기도 한다. 수련하는 80분 내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왠지 모를 오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자극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갑자기 나 자신과의 결투를 신청했으므로 아쉬탕가를 매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쉬탕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상황인 건데, 자자. 진정하고. 여기서 꼭 누가 이겨야 하는 거였던가? (이런 나를 지켜보는 K 선생님만 어리둥절.)


특히나 점프 백, 점프 스루가 미칠 노릇이다. 요가를 해본 적 없다면 이게 다 무엇인고, 하실 거다. 나 역시 몸으로만 배운 터라 설명이 어려워 제미나이에 도움을 요청했다. 점프 백, 점프 스루 모두 아쉬탕가를 할 때 아사나(요가 동작)와 아사나를 연결하는 일종의 전환 동작이다.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점프가 가미된 동작이다. 아쉬탕가 아사나들은 이전 브런치 북 글을 참고해 주시라. (<요가하는 기자> 10화 ‘회복의 아쉬탕가’ 참고.)


먼저 점프 백은 무엇인고. 우선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엇갈리게 모아 복부 쪽으로 있는 힘껏 당긴다. (배에 힘 뽝!) 손으로 엉덩이 옆 바닥을 짚고 역시 있는 힘껏 밀어낸다. 이는 엉덩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 위함. (충격.) 현재 내 몸은 최대한 둥글게 말아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되고 싶)다. 그 상태로 발이 바닥에 닿지 않게 다리를 뒤쪽으로 뻗어 낸다. (발은 바닥에 닿아 있으며 뒤로 가지도 않는다.) 점프 스루는 이 동작을 거꾸로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공중에 뜬 다리를 앞쪽으로 뻗어 내는 동작이다. 독자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 하나를 첨부한다.


초급을 위한 (흑흑.) 아쉬탕가 점프 백, 점프스루 가이드 영상이라고 하네요 (출처: 유튜브 ‘아쉬탐 요가연구소’ 채널)


아무튼 점프 백이고 점프 스루고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아사나와 아사나 사이에 계속 이 전환 동작들은 해야겠고, 선생님은 절대 봐주는 게 없고…. 안 그래도 영하권 날씨에 춥고 나른해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아니, 실은 어젯밤 침대에 누워서도 ‘내일 아쉬탕가 수업을 가야 하나’ 고민한 참이었다. 그래도 ‘아, 내가 아쉬탕가를 하기 싫구나. 부담스러워하는구나. 또 수업 도중에 짜증이 날까 봐 걱정하는구나’라는 마음을 알아차린 채로 요가원으로 뚜벅뚜벅 걸어왔건만. 아웃도어 브랜드 롱패딩에, 털모자에, 털 부츠,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위풍당당하게 수련실 문을 열었건만. 이변은 없었던 것이다.


몸이 금세 풀리는 것 같았던 초반의 기세는 금세 사라지고 40분 만에 온몸에 기운이 싹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40분을 더 달려야 하는 처지. 힘이 달려 아사나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힘이 없는데 힘을 쓰려니 더 힘이 빠지고 감정까지 상해갔다. 짜증, 분노, 우울, 집에 가고 싶음 등등…. 맨 앞자리 매트에서 선생님과 줄곧 눈을 마주치고 있어 최대한 감정을 숨겨보려고 했는데 다 들통이 나버렸다. 심지어 눈물도 찔끔 나올 뻔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빈야사 요가를 안내해 주신 S 선생님은 마음의 ‘습’(習)을 말씀하셨다. 요가를 하면서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습이라는 것. 아사나를 뛰어나게 잘하는 누군가를 보면 질투가 난다거나 분노하게 된다거나, 아사나를 제대로 못 해내는 스스로를 참지 못해 짜증이 나거나 하는 마음의 습관(習慣) 말이다.

“마음의 습을 알아차려 보는 수련을 하자”라고 하셨던 이날 수련. 빈야사가 몰아쳤다가 잠시 쉬어가는 아사나들을 거쳐 다시 빈야사가 들이닥쳤다. 중간의 쉼을 잠시 지내고 다시 폭풍 같은 요가로 들어갈 때는 첫 폭풍 때보다 확연히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방금 한 번 해봤다고, 8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나 자신,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니. 스스로가 신기하고 기특했다. 질투나 짜증, 분노 따위의 마이너스(-) 감정은 그 시간, 그곳에 없었다. 성장하는 나를 알아차리면,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현재에 더 집중하면서, 급기야 한 단계 더 성장해내고 마는 나만의 마음 습관을 발견했다.


S 선생님은 수련 전에 이런 말씀도 하셨었다.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아사나를 하려는 이유는, 그 아사나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그 상태에 도달한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라고. 나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다. 무리해서까지 왕왕 고수들처럼 아사나를 완성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그저 나의 요가에 집중하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 그깟 요가, 이깟 아사나를 무진장 잘하려고 눈물 찔끔 흘려가며 집착할 거 없다고. (성실하게 수련하면 그 높은 수준의 아사나, 요가라는 거, 언젠가 만나게 될 테니까. 못 만나도 솔직히 상관없고.)


아사나를 완성하지 못한,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실패한 나를 발견하면 짜증, 분노, 우울이 치미는 내 마음의 습. S 선생님을 통해 발견한 긍정적인 마음의 습이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부정적인 습도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요가를 안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려는 이 습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되뇐다. 그깟 요가, 이깟 아사나가 뭐라고.


내 감정이 이렇게 오락가락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건데. 어차피 삶이, 오늘 하루가 중요한 거지, 뭐. 요가고 아사나고 내일도 모레에도 글피에도 또 할 건데. 잘한다고 상을 주나, 못 한다고 누가 혼내기라도 하나. 요가계의 왕왕왕 고수가 반드시 돼야 할 하등의 이유는 정말이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요가든 삶이든 임하면 그뿐이다. 점프 백, 점프 스루, 아쉬탕가, 빈야사 다 못해도 된다. 그냥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박사샤.


그래도 집착하게 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잠깐 회복이 필요한 듯하다. 금요일, 오늘은 푹 쉬어야겠다. (오전에 빈야사 수업 갔다가.)


동네 요가원 트리로 마무리해보는 오늘 글. 영롱하여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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