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기, 되어지는 대로
지겹다 지겨워. 열심히 사는 습성은 직장인이든 백수든 그대로 남아 있다. 열심히 안 살아도 되는 상황인 데도 이 본성을 버리기가 어렵다. SNS로 몇몇 백수들 일상을 들여다봐도, 나만큼 열심히 사는 백수도 흔치 않은 듯싶다. (물론 훨씬 열심히 사는 백수들도 많다. 그럼 되려 반성을 해야 되나.) 나는 심지어 다음 스텝이 미정인, 퇴사한 지 이제 한 달 반도 안 된 백수니까(라고 변명해 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내가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발급하는 미디어교육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다는 것. (전직 기자이니만큼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이 상당하다.) 또 일주일에 두 편씩 에세이를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있고, 얼마 전에는 블로그도 시작했으며, 거의 매일 80분의 요가를 해내고 있다.
그러라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를 실천하다가 그제 급성 번아웃이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도서관 가서 책 반납하고, 카페 가서 글도 쓰고, 자격증 공부하고, 요가도 하려고 했는데…. 늦잠 자고 일어나 억지로 헬스장에 갔고 러닝 머신 위에서 차마 뛰지도 못한 채 어기적 어기적 걸어봤지만 돌덩이 같은 머리는 당최 가벼워질 기미가 없었다. 오늘, 못 움직이는 날이구나. 강렬하게 느꼈다.
운동 시간 30분을 채우지 못하고 약간의 쉰내를 풍기며 귀가했다. 씻고 대충 점심 먹고 누웠다. 블로그를 시작할까 싶어 노트북 책상에 잠시 앉았다가 침대로 복귀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남편이 퇴근했다. “뭐 했어?”와 “누워 있었어”로 이어지는 대화가 이뤄졌다. 집 안에 켜진 불이 하나둘 꺼진다. 잠이 온다.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요가는 결국 못 갔다는 소리다.
H 선생님과의 격렬한 빈야사 요가가 예정된 날이었다. 원장 선생님(K 선생님) 피셜, H 선생님은 우리 요가원에서 가장 빡센 선생님이다. 수련도 수련인데, 제대로 ‘운동’한다는 마음으로 갔던 H 선생님 수업이기에 더욱이 부담돼 못 갔다. 여유가 있는데도 계획했던 요가를 취소하는 게 오랜만이라 이참에 요즘 요가 어떻게 했지, 돌아봤다. 급성 번아웃의 전조 증상은 며칠 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S 선생님과의 빈야사를 앞둔 그날 아침부터 나는 조금 우울했다. 지난밤의 우울이 채 가시지 않았던 건데, (지난 3화 참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반복해서 ‘현타’가 오고 있었다. 나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 나 왜 요가하지. 왜 글 쓰지. 왜 자격증 공부하지. 나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고 현타는 계속되고 있다.)
심신의 컨디션이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지만 요가원에 갔다. 최대한 아사나(요가 동작)를 완성하려고 이날도 열심히 용을 쓰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고. 아, 열심히가 아니라 힘들게였구나.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갑자기 내려놔졌다. 몸과 마음 다 내려놓고 남은 수련을 마쳤다. S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 “오늘도 건강하게 수련을 마친 내 몸과 마음에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나마스떼.”
뭔가 뭉클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고, 다음 주 월요일 요가는 테라피 수업으로 예약했다. (번아웃이 올 것 같아도 요가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나 자신.) 예정된 일정들이 있어 바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테라피 요가를 하러 가니 그동안 다른 수업에서 본 고수 님들이 여럿 보였다. 고수 님들도 월요일 저녁은 힘들구나.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위한 테라피였던 수업이 끝나고 노곤 노곤 잠이 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하루가 지나갔고 S 선생님의 하타 요가 수업이 시작됐다.
애쓰지 말고, 내려놓으면, 되어지는 것들.
수업에서 선생님이 강조한 세 가지 포인트. 선생님은 한 동작당 2분씩 그대로 있으라고, 존재하라고 하셨다. 자극과 더불어 보내는 2분은 짧아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꽤 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자극을 바라보며,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 와중에 지나가는 생각들을 알아차리며 또 놓아주고, 나 자신과 지금 여기, 매트 위에 집중하는 ‘현존’(現存)을 연습해 보라고 하셨다. 애쓰지 않고 내려놓으니 우르드바 다누라사나가 혼자서 두 번이나 되어졌다. (‘되어지다’는 이중 피동으로 잘못된 표현이지만, 이 표현만이 갖는 어감이 있어 굳이 이렇게 쓴다.) 될 듯 안 될 듯하던 내 애증의 아사나. (1화 참고.) 애쓰지 않음의 힘은 강력했다.
이날의 마음 근력 운동이 인상 깊었던 나는 요가 일지에 이렇게 썼다. “포인트는 애쓰지 않기. 열심히, 쉬는 것도 애썼던 요즘이다. 엄마도 뭐 하지 말라고 하셨던 터라 더 와닿았던 말. 너무 애쓰지 말자.” 그리고 다음날 나는 급성 번아웃으로 요가고 뭐고 뭘 하지를 못했다. 이 순간 나에게 딱 필요한 말이었어서 이날 “애쓰지 말라”는 메시지에 유달리 마음이 동했던 걸까. 애씀 제로의 하루를 보내고 맞은 목요일 아침에 나는 그 어느 날보다 개운하게 일어났다. 오전에 아쉬탕가 요가까지 했다. (목요일 아침이 망설여지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아쉬탕가다. 너무 빡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 마감도 하고 있다.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우우.)
금요일 오전 10시, 다시 S 선생님과의 빈야사 요가 수업이 예약돼 있다. (나 S 선생님 좋아하나. 수업 자주 듣네. 좋아하나 보다.) 열심히는 안 할 거다. 억지로, 힘들게는 하지 않을 거다. 애쓰지 않겠다. 그저 내려놓고 되어지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하는 요가. 이런 요가 같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