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괴범들

다 취재할 수 있게 됐다, 더 큰 세상에서

by 사샤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의 시즌 2, 그 시작은 이 글에서부터다. ‘택배 기사 김재식’. (시즌 1의 11화 참고.) 김재식 기사와 함께 내 취재를 도왔던 L 택배 기사의 제보로 나는 노조 파괴범들의 세계를 알게 됐다. 평소 노동 분야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는 독자가 아닌 이상, 어려울 수 있는 아이템임을 알고 있다. 자주 보이는 기사가 아니기도 하고. 하여 구체적인 취재 내용은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T 매체로의 이직이 확정되자마자 부장과 선배들께 퇴사를 통보하고, 단 며칠 만에 첫 직장을 나오게 됐다. 곧바로 당시 연인이었던 남편과 퇴사 및 이직 기념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경남 남해 여행. 이직할 곳이 정해진 퇴사자의 여행은 달콤 그 자체였다. 전 직장이 된 C 방송국을 향한 조금의 미련, 그리고 T 매체에서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존재했지만 미미했다. 짧고 굵게 보름 정도 휴식을 마치고 새 회사로 첫 출근한 나는 의욕이 넘쳤다. 직업인과 직장인 사이에서 방황하던 번아웃 인간은 잠시금 자취를 감췄고 (잠시였다.) 패기로 똘똘 뭉친 신입 사원의 반지르르한 얼굴만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제보받은 택배 업계의 노조 파괴 실태를 취재하고자 부산 출장 짐을 쌌다. L 택배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강원도 사례와 유사한 문제들이 부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출근한 지 겨우 4일 차였다.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을 막 마친 시점. 맡은 지역만 취재했던 지역 기자에서 전국구 기자로 변신한 스스로가 짜릿했던 터라 이례적으로 단시간에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다.


취재했던 내용을 간단히 (사실 간단히가 안 된다. 능력 부족을 인정하겠다.) 정리하면 이렇다. 택배 기사들은 CJ 대한통운 등 대형 택배 회사가 아닌 각 택배 대리점(예컨대 CJ대한통운 OO 지역 대리점)과 배송 계약을 맺고 일하는데, 이 대리점 소장들이 ‘어용 노조’(쉽게 말해 가짜 노조)를 만들어 기사들이 소속된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한다는 것.


가령 택배 기사들(노측)과 대리점 소장(사측)이 단체협약을 체결하려면, 여러 노동조합 중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노조가 대표로 사측과 교섭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이때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겠다며 이뤄진 사회적 합의 내용이 단체협약안에 꼭 명시돼야 했다. 그래야 합의 내용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었는데, (법적 구속력이 없으면 아무도 안 지킨다.) 여기에 사측인 대리점 소장들이 방해 공작에 나섰던 거다.


대리점 소장들은 이 사회적 합의를 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사측 편인 어용 노조의 세를 불리려 했다. 갑의 위치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어용 노조 가입을 강권하는 건 물론, 사측일 수밖에 없는 소장의 가족들까지 꼼수로 동원해 어용 노조를 교섭대표 노조로 만들었다. 이 비슷한 문제 상황의 시초로 통하는 게 삼성이다. 피 묻은 빵을 파는 제빵계의 삼성, SPC(대표 브랜드가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에서도 사측에서 노조 파괴 공작을 벌여 재판이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 삼성, SPC의 노조 파괴 실태 모두 T 매체 기자로 일하며 취재, 보도했다. 지역에서는, 전 직장에서는 이와 같은 전국 사안을 취재하기 어려웠고 거리상 취재 대상들을 직접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가피하게 우리 구역인 강원도를 벗어나 서울 등 타 지역으로 출장을 갈 때면 어찌나 선배들 눈치가 보이던지. 이직해서는 눈치는커녕 오히려 취재에 필요하다면야 여기저기 다니라며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랬었다.) 기존 방송 리포트 형식을 벗어나 토크 위주의 뉴스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처음이었다. 새로웠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뉴스의 원고를 장애인 당사자가 읽게 하자는 나와 취재진 제안을 열을 내며 묵살했던 전 직장 부장이 떠올랐다.


우물 안 개구리로 안 살길 잘했다.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 문장. 어느 회사보다 안정적인 C 방송국을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나를 말리거나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결국 이직한 회사를 퇴사한 지금까지도 그때의 퇴사 타이밍과 이직 결정은 정말 탁월했다고 본다. 우물 안에 그대로 안주해 버리기 전에 우물 밖에 있는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 생각했었다. 친했던 전 직장 선배들 몇몇도 퇴사를 만류하며 그랬다. 본인 주변 친구들도 다 우리처럼 산다고. 오히려 여기 나가면, 그니까 (우물) 밖은 전쟁터라고. 기자로 인정받기도, 나중에 가정을 꾸리기도 힘들 거라고 했다. 여기만 한 곳 없는데 거기 굳이 왜 가냐고. 그렇게 우물 안에 남았다면 T 매체를 거쳐 알게 된 세상도, 지금 맞고 있는 두 번째 퇴사 후의 세상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아찔한 일이다.


스크린샷 2025-12-07 171220.png 더 큰 세상을 꿈꾸는 나는야 개구리 (출처: 네이버 블로그 '포에프 트레이닝 센터')


또다시 우물 안에 남겨졌다고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T 매체가 그 우물임을 깨달으며 두 번째 퇴사 고민도 시작됐었다.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 다시금 생각하며 어느새 안락해진 이곳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개구리는 밧줄을 올라타고 우물 밖으로 기어코 나오고 말았다. 이 못 말리는 개구리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다음번에는 우물 안에 조금 안주해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될는지, 과연 가능한 일인지 난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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