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쓰자

복직했지만 여전히 쓸 수 없었다

by 사샤
재작년 4월 전 직장에서 휴직을 하고 복직한 뒤 썼습니다. 복직한 지 반년 지나서 나온 글이네요. 여전히 기사를 써내지 못했던 그때의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휴직을 계기로 스스로를 고찰하기 시작한, 제 심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제가 복직 이후 기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글부터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텅 빈 눈동자로 푸른빛을 뿜어내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정면에 놓인 13인치 노트북 화면에 눈이 닿는다. 고개를 떨군다. 화면 앞에 쌓인 서류 뭉치와 취재 수첩을 뒤지며 쓸 곳을 찾는다. 샤프든 볼펜이든 쓸 것을 손에 쥔 채로 끄적일 공간이 필요하다.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글자를 쓴다. “힘들다”는 감정을 말하는 글자가 나온다. “이렇게 해볼까?” 고민이 담긴 문장도 만들어진다. 계산된 글자와 문장이 아니다. 이 글의 목적과 가치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 구석 한편에 내려놓는다. 그저 이 순간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종종 존재하기가 힘들었다. 회사 사무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번갈아 보고, 키보드를 똥땅똥땅 두들기다 물 한 잔 마시고, 한 시간에 한 번 일어나 화장실도 갔다 오고 하며 숨을 쉬면 될 텐데…. 때때로 호흡하는 게 시원스럽지 않았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듯했고 동시에 숨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와 목 근육이 딱딱해지고 있었다. 마음 역시 메말라갔다.


20200219134956_vphynybz.jpg 노란색 속지에 적어보는 14명의 이름 (출처: 한빛 플러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글을 썼다. B5 크기의 노란 속지를 품은 옥스퍼드 노트는 보통 그 쓸 곳이 되곤 했다. 이 노트의 가장 뒤쪽부터 거꾸로 넘겨본다. 시간이 흘러 흑심이 지난 자리가 미묘하게 번져 있는 글자들로 빼곡하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하기 어려운 ‘14명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결국에는 용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나만, 나 혼자만 용기 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것.” 생각난다. 정신재활시설에 다니는 조현병 당사자들을 취재하다 결국 섭외에 실패해 뉴스 제작을 포기하고만 지난해 어느 날. 그날 쓴 글이다. (14명의 이야기는 다음 화 ‘나 같은 사람들’에서 풀어낼 예정.)


“나는 왜 또 이렇게 멍하니 선생님들 이름을 적고 있는지.” 문장 옆에 쓰인 조현병 당사자들의 이름과 “아이템은 떠나가면 그뿐이다. 아이템은 아이템일 뿐이다” 되뇌고 “집에 가고 싶다”라고 쓴 흔적을 보며 입꼬리가 한쪽만 슬프게 올라간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글을 써야 살 수 있나? 그래야 내가 존재할 수 있나? 곱씹어본다. 기자 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예정에 없던 휴가를 갑자기 쓰거나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던 무렵이 떠오른다. 아무 기사도 쓰지 못하던 때다. 대통령 선거라는 사회적으로 (특히 언론사에) 큰 행사가 다가오는데도, 이태원 참사라는 유례없이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몇 달째 아이템 발제안 하나 써내지 못했던 시절. 직업인으로서 글을 써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시간. 뭐라도 쓰고 싶은데 쓸 게 없어,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 쓰지 못했던 날들.


그래서였는지 나는 무슨 글이든 쓰려고 했었다. 글을 쓰지 않은(못한) 기간이 무기한으로 늘어나던 중 회사에 우울증 진단서를 내고 휴직을 했다. 출퇴근이 사라진 지난여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글쓰기 수업에 등록한 것이다. 언론사 입사 전형인 논술 시험을 준비하려 다녔던 서울 신촌의 교육문화센터로 매주 출근했다. 휴직과 번아웃, 종종 뛰곤 하는 내 심장에 관해 썼다. 모두 나를 쓴 수필이었다.


청소년기 이후를 통틀어 몸과 마음이 가장 이완된 두 달이었다. 몸과 마음은 특별히 이 느낌을 기억하려는 듯했다. 복직해서도 글을 쓰려고 했다. 다행히 지난겨울부터는 사내 기획 취재팀에 합류하게 돼 꾸준히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더 꾸준히 쓰기 위해 올 초 두 번째 글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 수개월 동안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었는데 사흘에 하나씩 기사든 수필이든 쓰고 있었다.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숨통이 트였다.


쓰기로 했다. 쓸 기회를 만들고 있다. 쓸 기사가 없으면 수필을 쓴다. 수필까지 쓸 힘이 없으면 머릿속에 스치는 단상을 손바닥만 한 수첩에 대강 기록한다. 다 귀찮다 싶으면 책 필사도 가끔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은 기삿거리가 보이지 않으면 일손이 부족한 취재팀에 적극 자원하고 있다.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 알아서 일을 찾아 해야 하는 사내 문화도 있다. 흑흑.) 모 군청 보도자료 내용을 요약한 세 문장짜리 라디오 단신 기사만 써도 재밌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기획 기사 한 편을 맡아 쓸 기회가 생기는데 망설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우연히도 주말에 반가운 얼굴을 봤다. 지난해 휴직 때 만난 글쓰기 선생님. 선생님은 신랑 친구, 나는 신부의 친구로 참석한 피로연 자리였다. “한번 안아봐도 돼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그날 신랑 신부도 하지 않은 포옹을 했다. 서로의 품 안에서 따뜻함을 공유하며 1년 전 글쓰기와 함께했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그래, 써야겠다. 왜 글을 써야 살 수 있는지, 존재할 수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글의 목적과 가치, 그런 것들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 우선, 쓰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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