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들 1

‘나’의 이야기

by 사샤

아, 다 내려놓는 수밖에 없다. 글이 너무 안 써진다. 주말 내내 노트북 앞은커녕 근처조차 못 갔다. 엄두가 안 난다. 3년 전 그날들의 기록을 펼쳐 본다.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추린 것보다 양이 꽤 된다. 순간순간을 빼곡히도 기록해 놨구나, 나 자신. 눈물 나는 취재의 흔적들. 분투했지만 이 취재는 실패했다. 나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정신장애인들의 삶은 기사가 되지 못했다.


정신장애인은 누구인가. 인터넷으로 확인한 법제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다음의 장애·질환에 따른 감정조절·행동·사고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장애인복지법) 여기서 ‘다음의 장애·질환’이란 조현병, 재발성 우울장애 등을 포함한다.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말로 정신질환자가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적힌 대로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 기분장애, 불안장애 등이 있는 이들이다.


정신장애인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경다양인이다. 신경다양성 지지 모임 ‘세바다’의 대표 리얼리즘(활동명)은, 신경다양인이란 ‘전형적인’ 형태를 벗어난 모든 신경 발달 형태를 가진 당사자라고 말한다. 반대로 전형적인 발달 과정을 거친 비장애인은 신경전형인이라고 한다. 리얼리즘 대표는 자신의 정신장애를 신경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면서 장애를 부끄럽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됐다고 고백한다. (출처: 일다, <정신장애인, ‘신경다양성’을 정체성으로 삼다>, 2022년 9월)


2023년 11월 조현병 당사자들을 만났다. 정신장애인이면서 정신질환자인, 신경다양인이기도 한 이들을. 만나기에 앞서 생각했다. 이들이 이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20대 시절 바늘구멍을 뚫으려는 취업 경쟁의 소굴 속에서 병들다 지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약을 복용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2026년, 수년을 사이로 나는 몇 달에서 몇 년 동안은 아예 병원을 찾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나는 어느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약을 정수와 함께 꿀꺽 삼킨다. 이 3개의 알약은 내 기분이 극단적으로 처지지 않게 하면서도 삶의 의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11월 퇴사 이후 시작한 복용. 의사 선생님은 추이를 지켜보고 올해 상반기 중에 약 복용을 종결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그 뒤 언제라도 내가 다시 병원 문을 열어젖힐지 알 수 없다. 마음이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이 행동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므로.


어느덧 만성화한 우울과 불안. 여기서 티끌의 미련도 없이 깨끗이 탈출할 날은 포기한 지 오래다. 단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바랄 뿐인 나는, 과연 누구인가.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자? 신경다양인? 적어도 신경전형인, 비장애인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딱 떨어지게 정의 내리기 힘든 나, 이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숨기고 살았으니까. 나 빼고 아무도 모르는 나인데 굳이 나는 누구야, 라고 공개적으로 정의 내릴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생겼다. 3년 전 여름, 나는 질병 휴직을 하기 위해 회사에 우울증을 진단한 일 ‘F 코드 진단서’를 제출했다. 회사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F 코드 진단서로 휴직을 요구한 사내 첫 직원이었다. 안 된다고 하니 법으로 해야지, 뭐. 노동조합에 이 사실을 공유하고 노조 측 노무사의 자문 등 법적 조력을 받았다. 나의 우울증은 동료들에게 서서히 알려졌다.


두 달 휴직이 승인됐다. 대신 ‘개인 일신상의 이유’로 인한 휴직으로. 결국 나의 우울증은 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내 우울과 불안은 그저 내 성격인가? 기질인가? 내가 극복해야 하는 나만의 흠인가? 못난 부분인가? 어쩌면 어떻게든 숨겼어야 했던 나의 치부인가? 회사 동료들과 나 사이에 구분선이 생긴 것 같았다. 복직해서도 나와 같거나 비슷한 사람은 이 회사에 한 명도 없다고 느꼈다. 이 회사는, 조직은 나와 공존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이 사회가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맞는가? 아, 아니다. 잘못 짚었다. 그냥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럴 리 없어. 아니야. 나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온 힘을 짜내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복직한 지 두 달째, 나는 조현병 당사자들이 건강하게 일상과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신재활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횟수는 서너 번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른 탓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누군가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 회사로의 출퇴근을 반복하듯 이들은 시설로 출퇴근했다. 스스로의 회복과 성장에 집중하는 당사자들을 마주하며 내가 유달리 속이 아팠던 이유는, 그들이 조현병을 얻게 된 이유와 배경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KakaoTalk_20260112_142140161.jpg '나 같은 사람들'을 쓰기 위한 고군분투. 12일 아침 스타벅스에서의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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