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들 2

나와 같고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

by 사샤

조현병 당사자 M 선생님과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집을 한번 나가면 잘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등굣길을 나설 때 도시락을 들려주는 부모는 없었다. 중고생밖에 되지 않았는데 돈이 없어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분식집 아르바이트부터 안 해본 게 없다. 되려 21살부터는 아버지 용돈을 매달 40만 원씩 드렸다. 그런 아버지가 치매에 당뇨, 그 합병증까지 떠안고 왔다. 간병을 7년 했다. 대변을 봐 벽에다 바르니 팬티만 40장이었고 그 팬티들을 매일 락스에 빨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M 선생님은 1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민센터 신고로 그는 정신병동에 두 달간 입원했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그가 이 정신재활시설을 다닌 기간이기도 하다.


이들은 너무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병이 찾아왔다. 지긋지긋한 부모를 너무 열심히도 보살폈다. 손등에 샤프심을 박는 친구들에도 세상에 적응하려 너무도 애썼다. 직장 내 괴롭힘에도 계속 일을 하려 열심이었고, 평생을 괴롭히는 파킨슨병과 공황 장애를 뿌리치지 못한 채로 하루를 열심히도 살았다. 사방에서 “죽어라”는 환청이 종일 귀청을 울려대도 오늘은 우선 정신재활시설로 발걸음을 옮긴다. 삶을 회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다. 병은 그들이 외롭게 현실과 맞서 싸울 때 조용히 찾아와 보이지 않는 사슬로 몸과 정신을 옭아맸지만, 함께하는 지금은 각자에게 매인 사슬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함께 잘라내고 있었다.


담담하게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내게 터놓던 이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누군가들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당신과 나의 차이는 그저 종이 한 장 정도인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건데, 애초에 우리는 누군가와 완전히 같을 수 없는데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이놈의 사회. 시설은 ‘정신재활시설’이라는 명패 하나 달지 못했었다. 주민들에게 혐오 시설로 낙인찍혀 그대로 시설 문을 닫아야 할까 봐. 그 안에서 또 그렇게 열심인 우리들이 또다시 갈 곳을 잃어버릴까 봐. 그래서 은연중에 남들과 비슷한 척을 하고 살았던 나 자신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휴직 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한 뒤로 아무렇지 않은 듯, 우울과 불안은 이제 내 인생에 티끌만큼도 자리 잡을 곳이 없어졌다는 듯 지냈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밝고 유쾌한 모습만 존재하려고 사실 나는 노력했었다. 이 연기 생활이 잘 안 될 때면 남몰래 더 우울하고 불안해졌다. 동료들이 나를 휴직할 정도로 우울한 사람, 다시 말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특히 자신들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별로’인 동료로 인식될까 두려웠다. 주눅 들었다. 이 걱정을 불식시키고 싶어 조현병 당사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어려운 것 말고 쉬운 것 하라”는 팀장의 반대가 있었다. 섭외도 되지 않았다. 정신재활시설 관계자들과 당사자들 가족을 설득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무엇보다 이게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 더 집요하게 설득하거나, 다른 시설을 찾아볼 힘이 아직 없는 상태였다. 번아웃의 끄트머리가 남아있을 시점이었다. 뉴스는 보도되지 못했다. 만들어지지도 못했지만.


그날들에, 그곳에서 만난 14명의 조현병 당사자 선생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고, 더 평온하게 오늘을 지내고 계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게 선물해 주신 시집, 흔쾌히 사주신 커피, 용기 내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이야기들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 취재 수첩에 이 모든 기록들이 꼼꼼하게도 적혀 있지만 더는, 나는 기자가 아니다.


속상하고 속상해 아이템이 ‘킬’된 이후로 한 번을 찾아뵙지 못해 또 속상할 따름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나만 알고 끝내버린 내가 너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밖에. 뇌리에 아주 작게나마 내가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이겠죠, 선생님들.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는데,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왕창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아침 일찍 시설로 출근해 스스로 삶에 책임을 다하고 계신 여러분. 정말 존경합니다. 보고 싶어요. 진짜예요.


KakaoTalk_20260208_163109906.jpg 그때 쓴 취재 수첩의 일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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