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을 깨부수려 기자가 됐던 것
3화 글에 30대 번아웃의 시작을 담아냈다면, 이번 4화에는 10대와 20대 번아웃 이야기를 썼습니다. 지난 화와 마찬가지로 전 직장에서 휴직했던 2023년 7월에 쓴 글이고요.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제가 꿈꾸는 ‘달’에 적어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는지 자문하게 되네요. 발행 예약을 거는 오늘은 왜인지 기분이 울적해 긍정적인 답변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그날’이 오고 있음을 역시 느끼고 있습니다.
“난 달을 사랑해서 울어요. 하지만 이 궁전에 갇혀 있어 달에 닿을 수가 없어요.” 이탈리아의 소설가 안토니오 타부키가 쓴 <꿈의 꿈>에서 어떤 존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면서 짐승이기도 한 이 존재는 황소의 머리를 들고 울고 있다. 건축가이자 비행사인 다이달로스는 꿈에서 만난 그를 돕는다. 덕분에 이 존재는 죽음의 문이 아닌 자유의 문을 선택해 궁전을 나온다. 다이달로스가 만든 밀랍 날개를 어깨에 달고 마침내, 자신을 기다린다는 밤 속에서 달을 향해 날아간다.
달을 좇아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울었다. 부러워서였다. 다이달로스의 꿈, 무의식에 등장한 이 ‘사람-짐승’은 다이달로스 자신이었을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자꾸 떨어졌다. 궁전에 갇혀 달에 닿을 수 없는 나는, 스스로를 도와 자유의 문을 통과해 달로 가고 싶었다. 다이달로스가 되고 싶었다.
궁전의 실체도 모른 채 그 안에 들어섰다고 느낀 때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다른 반과 달리 우리 반은 매주 토론 수업을 했다. 안락사가 옳은지 그른지, 양끝에 서서 주장과 반박을 이어가며 승패를 가리는 아이들 중에서 나는 빛났다. 학교 대표로 뽑혀 서울시 단위 토론대회에 나가 3등을 했다.
승자가 되자 잘한다고, 특별하다고 했다. 빛을 발하는 아이가 됐다. 반대로 패자가 된 대다수 아이들은 못해서, 평범해서 빛이 바랜 취급을 받았다. 내게 미소와 칭찬을 아낌없이 주던 교사는, 공부에 관심 없는 장난꾸러기에게는 굳은 표정으로 폭력을 일삼았다. 학교의 어른들이 ‘문제아’라고 부르던 아이가 친구와 싸움이 붙자 그는 아이의 얼굴로 주먹을 던졌다. 이겨야만 살 수 있는 곳이구나, 아이였던 나는 궁전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했다. 궁전 문은 닫혀 있었다.
궁전 밖에 있는 달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어른이 된, 비교적 최근에야 벌어진 일이다. 오랜 시간 달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궁전을 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자유의 문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을 찾는 와중에도 당장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해야 했다. 특별한 직업으로 여겨지는 외교관이나 기자 따위가 되기 위해 전교 1등, 외국어고등학교, ‘SKY’라고 이름 붙은 하늘 같은 명문대, 저널리즘 스쿨 등을 오롯이 성취하려고 했다. 이를 얻으려는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었다.
한때 서울시 3등을 했던 아이는 안타깝게도 어른이 돼 가면서, 또 어른인 상태로 패배를 반복했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전교 1등을 했지만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계속 머무르지 못했다. 외고와 명문대 모두 떨어지고 수능을 세 번 보고 나서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저널리즘 스쿨에는 운 좋게 들어갔지만 취업 준비를 3년 가까이했고 동기들 중에 거의 마지막으로 기자 명함을 팠다. 생존하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서 허들을 넘는 데 급급했다. 자유의 문 앞에 서는 것도, 죽음의 문조차 잊고 말았다.
결국 살아남았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여전히 궁전에 갇혀 있었다. 자유의 문을 찾기 전까지 이제부터는 아예 궁전을 깨부숴보기로 다짐했다. 벽이 느껴지면 이를 향해 망치질을 하던, 애초에 나는 특이한 모범생이었다. 학교의 대입 실적을 올려줄 학생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는 쉽지 않기에, 일부러 야간자율학습을 ‘튀고’ 교내에서 사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교사들의 심기를 건드리던 나였다.
10여 년 뒤 현재의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틀, 차별과 폭력을 양산하는 구조를 건드려 작디작은 균열이라도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끝끝내 궁전 안을 헤매다, 망치질도 모자라 끊임없이 궁전 벽으로 몸을 들이받고 부딪힌 탓에 몸은 멍들었고 정신은 지쳐버렸다.
다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달을 알게 됐기에, 꿈꾸게 됐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생존이 마땅한, 아무것도 갖추지 않아도 되는 나 자신이 있음을 알게 됐다. 궁전 바닥에 쓰러져 난생처음 진정한 쉼을 보내며 달의 존재를 배우고 있다. 비로소 나를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자유의 문을 찾든지 궁전이 무너지든지 간에 머지않아 내가, 생기 있는 얼굴로, 나에게 밀랍 날개를 달아주러 올 것이라는 것을. 그럴 나 자신을 꿈꾼다. 궁전에 갇혀 달을 사랑해 울고 있는 나를 바로 내가 발견하기를, 달을 향해 “가라”라고 말하며 나 스스로를 떠밀 그날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