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

휴직에 들어가다

by 사샤
빨간 불이 켜질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습니다. (2화 참고.) 이직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2023년 7월, 저는 우울증을 사유로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이 글의 초고는 그때 나왔습니다. 제 첫 에세이였죠. 휴직을 하고 무슨 힘에 이끌린 것처럼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었습니다. 거기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소중한 첨삭을 받았고 그 첨삭 내용을 토대로 퇴고한 글입니다. 몇 달 전에 매거진 <나는 기자가 참 안 맞다>를 통해 공개한 글이지만 이 브런치 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글이기도 해서 재차 싣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때때로 의심받는다. 그래서 그것을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로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몇 달 전부터 내게 생경한 감각이 생겼다. 감각이라는 게 내 것일 텐데도 그 정체가 뚜렷이 잡히지 않았다. 나 자신을 지켜보는 관찰 카메라를 자처했다. 그러자 이내 보였다. 아침을 챙기기는 늦었고 점심을 먹기는 이른 어중간한 어느 때, 무거운 마음과 몸을 힘겹게 일으켜 통근 버스에 실어 놓고, ‘오늘은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다, 사무실 책상에 앉은 지 한두 시간 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바로 내가 보였다. 이런 나를 만든 생경한 감각을 정신과 의사는 우울과 무기력증, 적응 장애와 같은 단어로 정의했고 심리 상담가는 번아웃이라고 말했다.


나부터도 이상하다고 여겼다. 세상의 사각지대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 말 그대로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보내는 그들의 하루를 기자로서 수년간 취재해 왔다. 이들과 비교하면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내가 가질 감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감각은 분명 존재했다. 생경한 내가 계속 보였다. 실은 생경한 감각도 아니었다. 하얗게 불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는 그 정도와 결의 차이가 있었을 뿐 10대와 20대에도 있었다. (10대, 20대 번아웃 이야기는 다음 화에 공개할 예정이다.) 30대에 접어들어 5년 차 직장인이 돼서야, 상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뒤에야 번아웃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감각을 새삼스럽게 발견했을 따름이다.


회사는 보여달라고 했다. 평소 근태와 업무 성과만 봐서는 내게 번아웃 따위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회사는 결론짓는 듯했다. 정신질환 질병 코드인 F 코드가 적힌 정신과 진단서를 보여줬지만, 회사는 질병휴직 여부를 계속 고민했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선배 몇몇의 시선도 스쳐갔다. 반대로 ‘이런 나’를 회사에 보여주고 쉼표를 요구하는 내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안타깝게도 내 곁에 있는 일부 동료 역시 나처럼 보이지 않는 것과 매일 혹은 자주 싸우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좋게 말하면 특별하고, 나쁘게 말하면 이상한 존재가 됐다. 대다수가 세상에 들키기 싫어하는 감각을 당당하게 드러낸 용기, 대다수와 달리 그 감각을 굳이 남들에게 알린 무모함.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모순적 존재가 됐다.


‘차라리 출근길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가 부러진다면, 오만가지의 눈초리를 받지 않고 무리 없이 휴직할 수 있을 텐데….’ 심리 상담가가 말해준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소원이다. 허무맹랑한 상상에 기반한 것 같지만 이 소원은 가끔씩 무거워진다. 아무에게도 의심받을 일 없는, 눈으로 보이는 애로 사항이 있어야만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회사들이기에, 세상이기에 그렇다.


이 이름 모를 노동자들 때문에 쓰였을 뉴스를 봤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도 학업도 손에 잡지 않고 있는 (나와 같은) 청년들의 숫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초고를 쓴 시점에서 2022년) 기준 이 청년들이 29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이제 ‘쉬었음’ 청년 수는 - ‘쉬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 올해 11월을 기점으로 160만 명에 달한다.) 아직까지의 사회 통념상 ‘일할 시기’에 이들이 ‘쉼’을 선택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번아웃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어떻게든 보인다. 다행히 회사는 내게 개인 일신상의 이유로 인한 휴직을 허락했다. 번아웃과 우울, 무기력 등을 여전히 질병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는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멀지만 가까운 29만여 명(지금은 150여만 명)에게 말하고 싶다. 현재 우리 마음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번아웃이라는 것, 존재하는 게 맞는지 의심할 필요도 없고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예전만큼 글쓰기가 쉽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것과 맞서 싸우고 있다.


스크린샷 2025-12-22 091511.png 저 코끼리를 찾아서 (출처: 네이버 블로그 '스팀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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