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노조 파괴범들을 취재할 때까지 몰랐다. 곧 내가 아플 거라는 것을. 꿈을 꿨다. 구석 그늘진 곳에서 사람 몸체 만한 검은손이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왔다. 끔찍하게 불쾌한, 더럽고 참혹한 감정이 온몸을 무겁게 덮어버렸다. 가위눌린 사람처럼 몸부림치다 겨우 눈을 뜨고 분명히 알았다. 내가 꿈에서 성폭력 피해자였음을. 그 즉시 스마트폰에 지도 앱을 켜서 난생처음 심리 상담을 검색했다. 10만 원에 달하는 1회 상담 비용이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사건은 어느 날 벌어진 무언가 때문에 일어난다. 어느 날 제보 전화가 걸려왔고 그 전화를 우연히 내가 받게 됐다. 나는 무한한 스트레스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노조 파괴 문제로 당장 취재해야 할 아이템들을 다 털어버린 뒤로 ‘멘붕’이 왔던 것. 그동안은 전 직장에서 취재하던 내용의 연장선상을 다뤘던 터라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기만 했는데, 이 모든 게 끝나버리자 그야말로 리셋이 된 탓이었다. 강원도가 아닌 낯선 현장에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모르는 것들을 공부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야 했다. 한 달째 머릿속에 하얀 도화지가 펼쳐져 있던 그날 띠리링, 제보 전화 벨소리가 내 앞에서 울린 것이다.
“A 국적의 이주여성 노동자가 자신을 고용한 사장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 A 국적 통역사라는 제보자는,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이 이주여성 노동자를 대신해 T 매체에 제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주여성 노동자 B 씨는 사장의 성관계 요구를 거부한 뒤 “불법 체류 사실을 알려 한국에서 쫓아내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이후 성관계 요구를 재차 거부하자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여기까지 제보 내용만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기사화할 정도의 사건인지, 이른바 ‘얘기가 되는’ 제보인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제보자가 말했다. (얘기가 되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시다면 매거진 <나는 기자가 참 안 맞다>의 ‘얘기되는’ 아이템 시리즈 참고.) 이 사건이 이미 A 나라에는 보도가 됐다고. 한국에 사는 A 국적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B 씨를 위한 변호사도 선임했다고.
귀가 쫑긋했다. 본국에서 보도된 사건이라면 기본적으로 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을 보도한 A 국적 기자와 B 씨가 선임한 한국 변호사, B 씨를 도운 이주민들 모두 취재해 볼 수 있다. 특히 통역을 돕는 이주민들을 통해 당사자인 B 씨의 말도 들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취재 과정에서 사건을 증명할 촬영 영상이나 음성 녹취 파일 등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다. 팀장께 제보 내용을 보고했다. 취재에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은 보도가 됐다. 3주가량 사장을 비롯한 사건 당사자와 관계자, 사건 현장 등을 취재했고 24분짜리 영상 리포트를 제작했다. 새로운 사실관계도 알게 됐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장으로부터 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또 다른 이주여성 노동자와 연락이 닿았다. 불법 체류 관련 제도의 허점, 범죄 피해를 입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 관계당국들의 실태 등을 파악했다. 보도 이후 벌어진 사장의 2차 가해, 경찰 수사 끝에 그 사장이 구속된 소식까지 전부 4건의 기사를 썼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중간에 다른 사건 취재를 병행하고 기사도 썼지만, 이 성폭력 사건은 넉 달 동안 항상 내 마음 한편에 있었다. B 씨와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갔다. 언제부턴가 한 건씩 기사를 내보내는 시점마다 두려움이 쌓였다. 가해자라는 사장의 입장을 들어야 했기에 내 스마트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다. 따라서 내 연락처를 그가 안다. T 매체의 박사샤 기자 이름으로 보도했으므로 내 이름과 얼굴, 다니는 회사가 어디인지까지 그는 안다. 이 사장은 내가 쓴 기사로 사실상 범죄자로 낙인찍혀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내가 철천지 원수일 것이다. 전 직장 다니면서도 산재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가 살해 협박을 받은 전례도 있었던 상황. (시즌 1 8화 참고.)
출근 중 버스에서 저장 안 된 연락처로 전화가 걸려왔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 사장인가. 버스에서 내려서 회사로 걸어가는데 멈칫했다. 그 사장이 회사 앞에 서 있으면 어떡하지. 야근을 하려다가도 망설여졌다. B 씨 사건도 어둑어둑한 시간에 발생했는데, 그 잔혹한 사장이 오늘 밤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 나 혼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성폭력 피해자가 겪을 트라우마가 내 정신에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여기에 성폭력 피해자가 된 꿈까지 꾸자, 트라우마 치료차 심리 상담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심리 상담사는 내가 취재를 하며 낮은 단계의 트라우마를 입게 됐으며 내면의 완벽주의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의 한 문장, 영상 리포트의 한 장면에 아주 미미한 수준의 오류라도 발견되면 나는 오보를 낸 기자야, 나는 쓸모없어, 나는 쓰레기야, 같은 생각에 젖어드는 나를 알아챈 것. 설령 중대한 실수를 했다 해도 재빨리 바로 잡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사과하면 되는 일임을 나도 알고 있었다. 기자도 인간이고, 완벽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이 성폭력 사건을 취재, 보도하면서도 이 완벽주의가 무한대로 발동돼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숨 막히게 살았었더랬지.
다행히 상담을 계기로 기사와 나 자신을 분리하는 훈련(기사는 기사일 뿐. 기사를 못 썼다고 나까지 못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기자인 나와 ‘그냥 나’는 다른 존재다. 이렇게 생각해 버릇하는 것.)을 하게 됐고, 극단적인 완벽주의는 많은 부분 해결됐다. 트라우마도 옅어져 갔다. 하지만 좋아진 건 잠깐이었다.
성폭력 사건 제보를 받았을 때처럼, 나는 상담 이후에도 자주 아이템 기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시들어갔다. 탐사 보도를 주력으로 하는 매체였어서 애초에 아이템 발제가 전 직장보다 훨씬 어려웠다. 탐사 보도로 다룰 만큼 좋은 아이템이어야 한다는, 어떤 암묵적 기준이 회사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사 못 쓰는 기자, 기자 아닌 것 같은 기자가 돼 가며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눈두덩이처럼 부풀어갔다.
근근이 가끔씩 기사를 써오다 그해 가을 이태원 참사라는 충격적 사건이 터졌다. 모든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와중에도 나는 두 달간 단 하나의 아이템 발제도 하지 못했다.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예비 남편과 결혼 준비도 하고 있던 내게 정신적 여유는 사라지다시피 했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찾았다. 정신 차려보니 내 안의 초록 불이 깜빡, 깜빡, 깜빡하고 있었다. 빨간 불이 켜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