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4. 이유 없음

2월 24일(월)

by 사창우

“내가 이번 인사에서 창우 씨에게 미안한 건, 창우 씨를 그만둘 이유를 못 찾겠다는 거야. 그런데 결론은 이렇게 났어.”

사장이 따로 보자고 한다.


“제가 사장님의 모호한 집단지성 운영체제 도입 이후 방황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해고로 이어지는 건 납득이 안 됩니다. 당시 제도의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정말 제가 짤리는 이유가 뭡니까? 운영체제 성과 말고, 뭐가 있습니까?”

시팍, 마지막이니 할 말 안 할 말 다 해보자.


“아니, 창우 씨가 다른 데 가면 역량을 더 잘 발휘할 것 같아서요. 특별히 잘못한 건 없어요.” 사장이 말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르냐. ‘이 새끼야, 너 하는 일이 별로야’ 이런 말이라도 들으면, 억지로라도 수긍은 하겠다. 그런데 자르는 놈이 자르는 이유를 못 찾았단다. 해고당하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말인가. 끝까지 뭔가라도 들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사장과 마주 앉아 있다. 사장은 내 눈을 피한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다.


어제까진 일어나지 않아 불투명하던 일이, 막상 일어나고 나니 오히려 명료해진다.

“아는 변호사 있습니다. 부당해고로 고소할 생각입니다. 사장 고소한 놈 소문나면 이 바닥에서 끝장이겠지만, 저 새끼 스크래치 내고 고향 내려가서 국수장사나 할랍니다.”

해직 동료, 선준욱 과장과 산책하며 이런 말을 꺼내자 그는 킥킥 웃어버린다.

“야, 차라리 잘됐다. 이제 좀 놀자. 나 그동안 그만두고 싶었거든. 사표 문장 쓸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잘됐지. 난 제주도 가서 감귤 농사 지을 거다.”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회사를 버텨온 선 과장, 누구보다 화를 내야 할 그가 웃어버리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아니, 겨우 누그러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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