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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6. 2018

사색4. 짤렸다

2월 24일(월)

사장이 부른다.     


“내가 이번 인사에서 창우 씨에게 미안한 건 창우 씨를 그만두게 할 이유를 못 찾겠다는 거야. 그런데 결론은 이렇게 났어”

“제가 사장님의 모호한 집단지성운영체제 도입 이후 방황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해고라는 인사로 귀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시 새로운 제도의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제가 짤리는 이유가 뭡니까? 운영체제 성과, 그런 거 말고 뭐가 있습니까?”

시팍, 마지막이니 할 말, 안 할 말 다해보자.


 “아니, 창우 씨가 다른 데 가면 역량을 더 잘 발휘할 것 같아서. 창우 씨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어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짜르는데.  ‘이 새끼야, 너 하는 일이 별로다’, 이런 말이라도 들으면 내 잘못이 있긴 하네 하고 수긍할 텐데. 짜르는 사람이 짜르는 이유를 찾지 못했단다. 해고당하는 사람에게 이 무슨 헛소린가. 끝까지 어떤 말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사장과 마주보고 계속 앉아있다. 사장은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다. 

어제까지는 일어나지 않아 불투명하던 일이 막상 일어나 확실해지니 오히려 명료해진다.   


“아는 변호사가 하나 있습니다. 부당 해고로 사장을 고소할 생각입니다. 사장 고소한 놈이라고 소문나면 이 바닥에서 끝장나겠지만, 저 사장 새끼 스크래치 내고 저도 고마 고향 내려가서 국수장사하고 살랍니다.”

“야, 차라리 잘됐다. 이제 좀 놀자. 난 사실 그동안 그만두고 싶었는데, 사표 쓴다고 문장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잘됐어. 난 제주도 가서 감귤 농사짓고 살 거다”

같이 짤린 선준욱 과장과 산책하다 고소로 대응하겠다니 선 과장은 허허, 킥킥거리며 희극적으로 웃어버린다. 회사 창립서부터 지금까지 노고를 바친 선 과장, 화를 내는 게 마땅한 그의 이런 반응에 내 마음이 누그러진다. 아니, 겨우 누그러뜨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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