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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6. 2018

사색6. 짐을 싸며

2월 26일(수)

저녁 8시 즈음 사무실에 짐 싸러 간다. 직원 두 명이 퇴근하지 않고 있다. 겨우 어제 하루 안 봤는데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처럼 어색하다.      


“낮에 오지, 왜 이렇게 늦게 와?”

현태진 차장이 짐작하면서도 물어본다. 사람들 있는데 짤린 사람이 짐 싸고 있는 거 서로 불편하잖아. 짐 싸느라 북적거리는 걸 보고 있는 게 힘든지 남아있던 직원들이 퇴근한다.     


어두운 창밖, 적막한 사무실, 가끔 들어오는 팩스로 종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혼자 야근할 때도 많았는데, 짐 빼느라 혼자 있다니. 쫓겨나는 사무실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짐이 많다. 무슨 책을 사무실에 이리 많이 두고 있었을까. 짐 싸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많이 뒀나 보다. 다시 새로운 곳에 취업하게 되면 볼펜 한 자루만 두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테다. 만약 쫓겨나면 볼펜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쓩 사라지게.    


“1년 동안 즐거웠다”

나서면서 사무실에게 인사한다. 여기서 일하는 걸 즐겼다. 떠나야 하는 게 아쉽다. 여기서 일하는 게 지겹고, 진절머리가 났다면 나가는 게 속 시원했을 텐데, 꽤 즐거웠단 생각에 발걸음이 *씁섭하다.      


*글 중에 쓰인 '씁섭'이란 말은 '씁쓸하고 섭섭하다'는 뜻으로 지어낸 것임. 응용해서 '썹쓸'이라고 하면 '섭섭하고 씁쓸하다'는 뜻으로 사용 가능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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