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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6. 2018

사색10. fix

3월 2일(일)

실직 충격은 일요일 아침 늘 가던 교회도 갈까 말까 고민하게 한다. 


시련 중에 신앙으로 극복한다는, 거창한 신앙도 있지겠지만, 생활 습관, 방식이라는 일상의 일에도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게 신앙이다. 신앙 생활이라 하지 않나. 신앙인의 일상이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는 것이라면 그걸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도 신앙이라는 생각에, 침대에서 나와 교회로 간다.     


예배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실직을 고백한다. 다들 놀라는 눈치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할 때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며, 개인의 일이 공동체의 일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실직은 자기들이 함께 기도로 이뤄낸 내 취업이, 우리의 간증이 가치를 상실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수능 시즌, 취업 시즌을 앞둔 신앙 공동체는 우주를 창조한 신을 대입전형강사, 일자리 창출자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친구 김성한이 위로차 집으로 온다. 집 앞, 버스로 만든 식당에서 함께 함박스테이크를 먹는다. 잘 먹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현금이 없다. 여긴 현금만 받는데 ... 영세하거나 탈세하거나. 식당 주인이 외상을 주고 내 얼굴을 기헉하겠단다. 얼굴이 신용이라 했던가. 신용카드도 아니고 얼굴로 외상을 긋기는 처음이다. 밥을 먹어도 힘이 없어 침대에 누워있으니 성한이가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한 노래가 있다며 핸드폰으로 노래를 한곡 튼다. Coldplay의 <Fix you>, 마침 머릿속에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마음이 통했나, 귀신이 장난친 건가.      

"... stuck in reverse ... could it be worse ...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학교에서 해외어학연수 지원을 받아 호주에 갔을 때, 홈스테이 주인 아주머니가 점심 도시락을 싸주겠다면서 "I will fix your lunch."라 하더라. 'fix'를 ‘고정시키다’, ‘고치다’, ‘수리하다’ 등 자동차 정비소에서나 쓰는 딱딱한 의미로 알았는데 내 도시락을 '마련해준다', '준비해준다' 라는 따뜻한 의미가 있음을 그날 몸소 체험했다.      


I will fix your lunch. 

I will try to fix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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