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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6. 2018

사색12. 면접

3월 4일(화)

적합한 옷을 입고, 심호흡을 하고, 면접 길을 나서려는데 K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면접을 오후 2시로 미루잔다. 치러야 할 일을 얼른 치르고 싶은데 오후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 오히려 여유롭게 된 거다. 점심을 먹고, 김치 국물 튈까 벗어놨던 새하얀 와이셔츠를 다시 입고, 준비해둔 자료를 한 번 더 본다.      


시간 맞춰 K회사로 들어간다. 회의실에서 대기하라 해서 그리로 가니, 나 말고도 다섯 명이 앉아있다. 그들과 나는 동시에 ‘뭐야 이건’ 하며 회사 측의 배려 없는 면접 진행에 가벼운 짜증을 낸다. 경력자 면접은 면접자들끼리 마주치지 않게 회사에서 면접시간을 따로 해주는 편이다. 신입 직원 채용도 아닌데 경쟁자와 얼굴을 마주치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또, 같은 분야에서 일한 지 좀 되면 거기가 거기서 거기라 서로 안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있으니, 얼마나 어색한가. 회사 마음이지만 우르르 다 집어넣어놓고 기다리라는 건 처음이다. 내가 면접 순서 제일 마지막이란다.      


“물도 한잔 안 주네”

타는 목마름으로 말문을 열었더니 다들 허허 하더라. 한 시간을 기다린다. 물 한잔도 없이 어색한 상황을 가장 오래 견뎌낸다. 재취업하는데 물 한잔 마시지 못하는 것 참을 수 있다.      


물 한잔 챙기지 않던 것과 달리 사장 면접은 분위기가 좋다. 고약하다고 소문난 사람이라 편견이 있었는데, 소문과 달리 면접 내내 친근하다. 이런저런 근황을 묻다가 본격적인 질문을 하는 가 싶더니     

“근데, 참 똑똑하게 생겼네”, “띠는 무슨 띠?”, “눈썹이 이야, 나도 한 눈썹 하는데, 당신 눈썹은 아주 그냥, 캬~”.

그러더니

“그래요, 서류 좀 보고 나중에 연락 줄게요”

서류를 보고 면접을 보는 게 아니고, 면접을 보더니 서류를 보겠단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정작 해야 할 말은 한마디도 해보지 못한 면접이 된 듯하다.      


집으로 가는 길, 한 무리 젊은이가 아동학대 반대 운동을 하며 서명을 받는다. 이전에는 저런 서명 운동에 특별히 관심 없어 지나쳤다. 저런 게 효과 있나, 내 서명 하나가 제도 개선에 영향이 있나 했는데, 이젠 실직자 입장이 되고 보니 약자를 위한 일에 작은 힘이 된다면, 여전히 효과는 기대하지 않지만, 내 서명을 그리 비싸게 굴 필요 있나. 약자를 위한 일이라, 실직자가 되어보니 그런 형편의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처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관심이 갈까.   

    

저녁을 순대국밥으로 먹고, 집 앞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산책한다. 어둑어둑한 운동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학교 건물 너머 교회 십자가가 빨갛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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