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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09. 2018

사색13. 최적과 상황

3월 5일(수)

점심, 목사님과 선짓국을 먹는다. 목사가 선지자라 선짓국인가? 어렸을 땐 소 피를 응고시켜 만든다는 선지가 징그러워 눈길도 못주고, 건강해진다며 억지로 먹이려는 숟가락질에 구역질을 했는데, 이젠 그걸 돈 주고 사 먹다니. 나이 들면 입맛이 변하기도 한다지만 못 먹던 걸 잘 먹게 되니 타락한 것 같다.     


목사님과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운영 중 연말 이사회 회의에서 임원의 올해 보너스, 다음 해 연봉을 결정하는데 사실 그 결정을 하는 이사회 멤버가 다들 임원 본인들이다. 자기들이 자기 받을 돈 결정하는데 보너스 주고, 전년보다 증액하는 게 자연스럽다. 나라도 그럴 테다. 이게 문제라면 임원의 연봉은 이사회가 아닌 데서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누가 해야 할지 애매하다. 조금 벗어나, 대기업 총수 일가가 회사의 법인카드로 개인적인 지출을 결제한다. 이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오너 일가에서도 볼 수 있는 행태다. 법인 카드가 피트니스, 한의원, 피부과, 동물병원, 백화점 쇼핑에서 사용됐다. 지난 2014년 8월 SBS 뉴스에서 보도한 재벌 3세 법인카드 사용내역서를 보니 하루에 2600만 원을 썼고, 비싼 물건은 100만 원 단위로 쪼개서 결제하고, 하루에 부산, LA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결제를 했다. 법인카드를 쓰는 게 법인세 공제 같은 절세 유인 때문에 마냥 나쁘다 할 일은 아니지만, 사례와 같이 개인적인 일에 쓴 돈을 법인 비용 명목으로 공제한다면, 공제로 인한 세수 충당은 다른 사람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지 않나. 총수 일가가 자기 회사에서, 사실 주주의 회사지만, 연봉을 높게 정해서 월급을 많이 가져가는 것에는 불만 없다. 월급으로 피부과 가고, 핸드백 사는 걸 뭐라 하겠나. 그런데 법인카드로 그러는 건 내 세금까지 닿지 않나.      


또, 이사회가 리더에게 의사결정 및 운영 업무를 줄 때는 계약할 때 구체적으로 재량, 권한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워야 한다. 모호하게 이만저만해서 잘 부탁합니다 하고 임명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서로 인상만 쓰게 된다. 회사 같은 곳은 CEO를 쓰는데 비교적 분명한 제안이 있지만, 교회 같은 종교단체, 비영리단체 같은 곳은 마냥 잘 부탁합니다, 잘 이끌어주세요 하는 모호한 수준으로 임명하여 결국 장로회 같은 이사회와 목사가 서로 인상 쓰는 일이 많다.      


목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어제 면접 결과, 그게 지금 즈음 회신이 와야 하지 않나, 오후가 다 지나가는데 왜 전화 오지 않나, 머릿속이 웽웽거린다. 당연히 채용 합격이라는 결과를 원하지만 지금은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싫어, 기다리는 걸 빨리 끝냈으면 하는데, 하루 종일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내가 딱이라고 생각하는 타이밍과 실제 타이밍은 다르다. 내가 최적이라고 예상하고 계획한 것들이 언제 들어맞은 적이 있던가. 최적과 상황은 대부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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