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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16. 2018

사색21. 차갑긴커녕

3월 13일(목)

"일어나라, 출근해라”

아침 6시 45분, 여전히 어머니의 모닝콜이 울린다. 출근 못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아직 ‘네~, 일어날게요’ 라고 대답한다.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걸 말하긴 해야 할 텐데, 모닝콜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차일피일 받던 게 2주를 넘기고 만다.     


직장 생활한답시고 고향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한 게 수년이 됐다. 그동안 어머니와 공유할 소재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동생이 장가 간 즈음 어머니라는 여자는 자신의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뺏겼다는 미묘한 마음을 위로하려 어머니께 아침에 모닝콜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의 행위가 내 일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아들의 인생에 간섭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일종의 효도라 생각했다. 아침마다 ‘일어나라’로 성인이 된 자식에게 여전히 역할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도 나중에 장가를 가게 된다면 모닝콜도 할 수 없을 아주 한정적인 효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직하고 보니 그 효도를 멈춰야 한다. 위로한답시고 부탁한 거지만 지금에선 출근하는 척 해야 하는 거짓, 부담이 돼버렸다.        

   

어젯밤 문득 책장에 있던 앙리 코스톨라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읽었다. 코스톨라니는 투자란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할 때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단다. 그걸 실천하라는 것이다. 지금 소득이 없는 실직 상태에서 투자 하는 게 맞을까, 저축해 놓은 돈으로 생계가 아닌 주식에 돈을 써도 괜찮나. 안정적이지 못할 때 투자해야 한다는 역발상에 따르면 나는 지금 주식 투자를 해야 하지 않나. 마침 그동안 사놓은 주식 종목의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해당 종목 주식을 좀 더 사서 매수 가격(평균)을 떨어뜨려야겠다. 노트북을 켜 주식 트레이딩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신한금융투자~’, 경쾌한 여성중창 소리가 시장에 접속한 걸 알린다. 해당 종목을 더 사야겠다고 주문을 했는데 매수한다는 게 멍청하게 매도를 한다. 정신이 나갔다. 차익을 실현해도 모자랄 판에 손해가 안 주식을 팔아버리다니. 멍청한 실수 하나로 손해를 봤다. 정신이 나갈 것 같다. 흥분했는지 방금 실수를 메워보려고 다른 주식을 더 산다.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인지 나도 모르겠다. 큰돈은 아니지만, 실수를 하고 나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단기투자도 아닌 장기투자 성격의 종목을 정신없이 사고판다. 돈, 차갑긴 커녕 멍청하게 다루고 있다.           


신앙인으로 주식 투자하는데 고민이 있긴 하다. 주식 프로그램을 열어 놓고 매수나 매도할 때 호가 부를 때 아무런 생각이 없다. 오직 내 호가로 매매가 체결되기를 할렐루야, 아미타불, 알라 알라 하며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돈에 종속된 이 상태를 신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오직 호가와 그걸 체결해서 수익만 바라고 있는 상태, 좋게 본다면 몰입이다. 몰입, 무엇에 몰입해 있는가, 주식에 몰입해 있는 건 비성경적이긴 하다. 그런데 얼마나 매력 있나. 다들 최대한 공평한 상태(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인 시장에서 내가 가진 정보로 설정한 가격의 주식을 누군가가 산다는 게, 근사하다. 마치 가격의 창조자, 돈의 신이 된 느낌이다. 얼마나 비신앙적인가. 주식시장에서 신앙심을 가진다는 게 비현실적인 생각인가. 판 자체가 신앙이 없는 곳이니. 거기선 오직 돈 버는 게 신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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