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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20. 2018

사색28. 계획

3월 20일(목)

오늘 월급날이라서 계좌를 확인해본다. 예상한 것보다 금액이 적어 지출계에 전화해보니 퇴직에 따른 세금을 미리 정산해다며 연말 정산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단다. 


"연말까지 가지도 못하고 내가 죽을 지 모르잖아요!"

짤린 게 억울했네 괜한 언성을 직원한테 높이곤 전화를 끊는다. 해직 동료 선준욱 과장에게 전화를 건다. 어떻게 지내시냐, 등산 중이다, 화병은 안 났냐, 서설을 풀다가 결국 말하고 싶은 지출계가 준 월급 이야기를 한다. 통화 내내 돈 돈 거리다가 전화를 끊는다. 모처럼 동료와 돈이야기만 했나 싶다. 돈 중요한 거 다 아는데, 돈돈 거릴 필요 있을까.      

 

어제 고향 부산에 고속버스로 가려했는데, 어정거리다가 오후 3시가 넘어버린다. 이제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면 밤중에 도착할 듯하다. 실직자 아들이 어둑어둑해져서 집에 들어오는 걸 어머니께선 어찌 보실까. 서울역으로 가서 고속철도로 내려가야겠다. 어제 밤에 고민해서 버스로 간다는 계획을 짰는데 쉽게 바꿀 거면 애써서 계획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제일 싼 게 시간인데, 조금만 일찍 나서면 될 것을 훨씬 비싼 돈을 주고 고속철도를 탄다. 무엇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차창 밖 봄을 보고 싶었는데, 익숙한 고속철도 길이라니, 날씨도 우중충하다.       


부산에 도착, 부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 각자 자신의 고충을 가지고 일상의 발걸음을 이어간다. 예전엔 어디부터 어디까지 목적지만 생각하며 길을 다녔는데, 처한 상황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실직에 처해보니 여유가 생겨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얼굴을 보니,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그들의 발걸음, 그걸 유지하고 있는 게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고향집 주변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카페,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평당 집값 상승률이 부산에서만 오른다. 동네에도 새로운 고층아파트가 올라가는데, 식당은 아파트 주변보다 사무실 주변이 훨씬 잘되지 않나. 그렇게 생긴 식당 10개 중 몇 개나 내년에도 계속 문을 열 수 있을까. 만약 계속 실직자로 산다면 고향 내려와 여기서 국수장사나 해야 할 텐데.      


어머니를 만난다. 활짝 웃는 얼굴로 실직한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통화로는 느끼지 못했는데,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곧 다가오는 아버지 기일을 기다리는 게 혼자선 힘들었다고, 내가 와줘서 기쁘다고 하신다. 


"어쨌든 니가 와줘서 너무 좋다, 그냥 엄마랑 둘이서 살자"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삶의 유한함과 허무함을 매사에 느끼며, 열심히 살아봐야 툭하고 죽던데, 열심히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작은 것에서 행복하게 좋게만 살고 싶단다. 충분히 이해하고, 어머니의 농담 반 진담 반 고향에서 나랑 살자는 말처럼 만약 여기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허나 앞으로 주어지는 기회가 어머니와 나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도 안다. 일단, 고향집에서 좀 쉬자. 그런데 부산답지 않게 춥다. 서울에서 겨울을 보낸 지 십 년이 흘러 부산의 따뜻한 기억만 반추하는데, 3월 말이 다됐지만 아직 부산도 쌀쌀하다. 부산에서 추위를 느끼면 왠지 손해 보는 듯하다. 따뜻한 줄만 알고 있던 내 고향 부산이 추우면 이상하게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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