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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26. 2018

사색30. 쑥

3월 22일(토)

밤잠을 뒤척인다. 새벽 세시 너머 잠들었나, 아침에 눈뜨기가 잠들기만큼이나 어렵다. 꿈을 꾼 것 같은데, 어떤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란스러웠던 기억만 난다. 고향집 내 방에서 자는데도 편치 못하다.       


어머니는 원래 오늘 친정 식구를 만나러 본인 고향 진해로 가려했는데, 내가 왔으니 가지 않겠단다. 나도 이모, 외삼촌 보고 싶다고 같이 갑시다 해서 나선다. 굳이 실직했다는 이야기 할 필요 없이, 휴가라고 하면 되겠지. 서울에서 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내 등장에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실직자는 반가워도 적절한 거짓이 필요하다. 중간에서 어머니만 곤란하실 게다. 아는 사실을 모르는 척, 있는 일을 없는 척해야 한다. 영화 <하녀>는 부잣집 유부남과 하녀의 애정 행각을 놓고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야”와 “어떻게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게 되나”, 두 아이디어가 충돌하는 이야기다. “실직했는데 어떻게 실직자가 아닌 척을 하니”와 “곧 재취업하게 될 거니까 실직했다 말할 필요 없다”의 충돌 사이에 어머니만 끼여 있다. 반가워서 회사는 안 가고 웬일이냐 물어보는 걸 눈치 없다 할 수도 없잖나.      


아침 먹고 곧장 나선다. 마침 집 근처 진해까지 가는 광역버스가 있다. 정류소에서 기다린다. 기다림은 징글징글하지만, 어머니와 이렇게 분명한 이유가 있는 기다림은 즐겁다. 멀찌감치 노부부가 길을 걷고 있다. 한국 부부의 걸음걸이를 그린 익숙한 그림처럼 할아버지는 다섯 걸음 정도 앞서 가고, 할머니는 뒤 따라온다. 뒤쳐진 할머니 거동이 굉장히 불편하다. 중풍인가? 익숙한 그림을 재현했다기보다 할머니의 걸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할아버지는 뒤쳐진 할머니께 휙휙 가선 물어빠진 통나무 건지듯 억지로 할머니 걸음을 당긴다. 걸음을 이끌어 가려는 할아버지의 의지는 할머니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역정에 못 이겨 몸은 따르지 않지만 겨우 움직이는 형세다. 그게 한계가 있다. 할머니는 결국 땅바닥에 털썩 쓰러져, 누워 움직이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길바닥에 누운 할머니께 일어나라고 손찌검을 한다. 지금까지 어머니와 나는 무슨 일이지 관조한다. 할아버지는 쓰러진 할머니 얼굴을 발로 툭 찬다. ‘툭’, 물리적 충격은 크지 않으나 아파 쓰러진 아내 얼굴을 발로 찼다. 물리적이냐 아니냐는 고려 할게 아니다. 쓰러진 아내의 얼굴을 발로 차다니, 어머니와 나는 관조를 그만 마치고, 현장으로 달려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릴 친다. 우리와 함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모인다. 이 시점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나는 관조와 개입의 경계가 꽤나 공감각적인가 보다 싶다. 우르르 몰려든 인파가 만든 도넛 속에서 할아버지는 바로 앞 병원까지 할머니를 데리고 가면 된다고 별일 아니라며 허허 말한다. 심각한 상황인데 가해자가 별일이 아니라 하니 사람들은 더 분노한다. 어머니가 시작한다. “할아버지 그렇다고 할머니를 발로 차면 되냐”, “할머니가 평생 밥 해준 걸 생각해서라도 잘 데리고 가야지 이게 무슨 짓이냐” 어머니는 폭력 행위를 따지는데 평생 밥 해준 아내가 받는 푸대접, 아내의 노동을 투영시켜 분노한다. 옆에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때렸으니 할아버지도 한번 맞아보라고 팃포탯의 배신에는 배신 전략에 따라 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침착하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렇게 못 움직이시는데 집에 차가 없으면 경찰 불러서 경찰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경찰은 이럴 때 이용하는 겁니다” 안내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다가 어머니는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고 나에게 병원까지 할머니를 엎으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병원이 어딘 줄 알고 그러냐, 경찰 부르면 된다고, 이런 일은 일회적인 호혜로 문제를 해결할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병원 다니셔야 하니 경찰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는 지금 경찰을 어떻게 부르냐 일단 우리가 부축해서 가자고 한다. 우리가 계속 경찰 경찰 하니 할아버지는 경찰서 가는 줄 알고 내가 할망구 좀 그런 것 같지고 순사 부르겠다니, 불러라 불러, 난리가 더 커진다. 마침 우리가 기다리던 진해행 광역버스가 온다. 광역버스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에 한 대 오는데 우린 버스와 할머니를 번갈아 본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 꼭 병원 잘 모시고 가세요 하고, 나는 할아버지, 꼭 경찰을 부르세요 하고 버스에 오른다. 차창 밖으로 우왕좌왕하는 할아버지, 누워있는 할머니가 뒤로 사라진다.

       

버스에 앉아 다시 생각한다. 할머니를 아무렇게 대한다, 심지어 폭력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할아버지의 교만한 태도에 화가 난다. 사람은 상대편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무서울 정도로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는데, 사람은 쓰러져 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코앞이 병원인데, 이 상황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자기 분노로 번져 엉뚱한 폭력이 나온 건지, 그렇다면 인간적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할아버지의 행태와 다른 면을 보일 수 있을까. 실직해서 그런지 무력한 개인의 이탈, 부작용에 대해선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행색을 보니 영세민인 듯하다. 의료 시설의 사용, 공공 의료 혜택이 영세민까지 닿는 게 까마득한 일인가. 세계 어떤 나라도 영세민까지 의료 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개국이나 있을까. 이런저런 상황 따지다가, 어머니와 난 우리 버스 온다고 제쳐놓고 버스에 훌쩍 탔다. 그것도 인간답다. 선택의 순간에 나는 나의 편익을 최고로 고려한다. 그 순간 나를 포기하는 성인도 있다. 문제는 성인이 별로 없다. 경찰을 이용하라는 건 일회적인 도움으로, 오늘 내가 좋은 일 한번 한다 는 것으로는 이런 문제를 지속해서 대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구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경찰이 있다. 동네 파출소 순경 아저씨들은 그런 일 웃으면서 도와준다. 도둑놈, 강도, 살인범 잡는 것만 경찰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찰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       


진해에 도착하니 정류장에 막내 외삼촌과 이모가 나와 있다. 두 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의 깜짝 등장에 아이고 잘 왔다 잘 왔다 연발하신다.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라 무슨 일이니, 어찌 내려왔니, 혹시 실직했니? 이런 질문은 전혀 없다. 그저 반갑다 할 뿐, 나의 등장은 반가움으로 충분하다. 외삼촌 차로 어머니가 자란 집, 본가가 있는 웅동으로 간다. 많이 변했다. 주변에 공단이 들어서고, 조선소가 생겨 지역 경제가 굉장히 활성화됐다. 어릴 때 기억하던 딸기밭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어머니는 여기서 처녀 때처럼 농협에서 계속 일했으면 지금 연봉 1억이 넘었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그 소릴 들으니 나도 아쉽다. 1억 연봉 엄마라, 상상만 해도 든든하다. 요즘 대졸 구직자가 삼성전자하고 농협을 동시에 합격하면 농협을 선택한단다. 어머니도 본인 농협 있을 때는 그렇게 힘들었다고, 사실 농협이 지금 이렇게 좋은 직장이 될 줄은 몰랐다고, 아버지랑 결혼하고 당장 그만뒀다고 한다. 사는 게 한 치 앞날도 모르는데 평생 커리어를 어찌 알까. 근데 연봉 1억 엄마는 아쉽긴 하다.   

    

외가댁을 바로 마주하던 산에는 터널이 콧구멍같이 뻥뻥 뚫렸다. 이렇게 변했나 외사촌 형은 겨우내 얼었다 봄을 맞아 녹은 밭 땅을 고르고 있다. 외삼촌도 옷을 갈아입고 경웅기형 트랙터에 시동을 건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밭을 고루자고 모였다. 거창한 농사는 아니고 시골집 조그만 밭을 가꾸면서 가족 한번 모여라 하는 자리다. 일하는 줄 알았으면 굳이 따라오지 않았을 건데, 상황을 보니 나도 밭일을, 평생 처음 해보는 흙일을 거들게 됐다.      


주된 임무는 밭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으려고 겨울 동안 덮어 뒀던 비닐을 뜯어내는 거다. 잡초를 막으려고 덮어 놓은 비닐 위로 잡초가 자라 단단한 뿌리를 내려 비닐을 뜯어내려면 비닐 위 잡초부터 뽑아야 한다. 막상 시작하니 모두 열심이라 요령을 피울 수 없다. 30미터 되는 고랑이 10개가 있다. 3개 정도 비닐을 뜯었다. 손아귀와 등어리 상단이 아파온다. 농산물을 먹어보기만 했지, 키우는 과정을, 겨우 비닐 뜯는 걸 과정이라고 하기엔, 체험하고 있다. 식탁이나 시장의 채소코너에서 농사 결과만 취했는데, 심고, 거두고, 아니 겨우 잡초 막기 위해 쳐놓은 비닐을 걷는 걸로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먹을거리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점심시간이 되니 어머니는 봄 맞아 돋은 쑥을 뜯어 수제비를 만들어 온다. 다들 잘 드신다. 나는 쑥의 비린 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별로 먹지 못하고 그릇을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귀한 걸 잘 먹지 않냐 고 핀잔을 한다. 이모는 쑥을 안 먹고 자라서 그 귀한 걸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옛날 봄에 새로 돋아나는 쑥의 가치를 귀하게 보고 봄마다 쑥을 많이 먹었다고, 겨우내 이겨온 생명, 재생의 상징, 쑥을 먹으면 나도 새로 취업될까. 해마다 겨울이 되면 죽고, 봄이 되면 부활하고, 다시 겨울이면 죽고, 봄이면 부활을 반복해서 다들 각각의 연륜이 된 것이다. 봄날의 쑥은 그걸 기념하는 것, 그런데 맛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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