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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Dec 26. 2018

사색32. 데우스 엑스 마키나

3월 24일(월)

겨우 일어나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는다. 점심도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소리와 동시에 일하러 나서는 어머니를 보면서 지금 이게 현실인가 싶어 얼굴을 꼬집어본다.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고 실직자 아들은 집에서 텅하고 닫힌 현관문을 보고 서있다. ‘이게 뭐야!’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 막노동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 계신 것보다 적당히 일하는 게 본인께 좋을 거야 하며 아큐의 정신 승리 법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성경을 펼친다. 속 터질 땐 성경이 최고다. 훌륭한 신앙생활은 인생이 잘 풀릴 때도 성경을 펼치겠지만, 잘 풀리거나 번영할 때는 대부분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풍요를 더 늘려 주십시오, 또는 안정을 유지하게 해 주십시오 정도 기도할까. 번영할 때의 신앙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번영할 때 신앙을 필수적으로 고려나 할까. 번영이 신앙을 만드나, 신앙이 번영을 만드나, 둘은 분명히 모종의 관계가 있을 텐데.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걸 감당하는 건 성경 시대 인물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떤 일로 인생의 험한 길에서 신의 간섭으로 문제가 뻥하고 해결되길 기대한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D-WAR(2007)>를 본 평론가 진중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 법에서 피해야 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종결짓는다고  해, 다시 말해 아무런 개연성 없이 문제가 해결돼 버리는 걸 극 서사에서 피해야 할 기법이라고,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비평계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혹평당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에서 심각한 문제를 마주한 이들은 갑자기 신이 간섭해서라도 뚝딱 해결됐으면,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이라도 나타나 구해줬으면 할 텐데. 사실 교회나 절에서 하는 기도 대부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원하는 거 아닐까. 계획한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틀어진 상황, 신의 간섭 후 수월하게 개선되는 것,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그게 신앙으로 승화돼 신앙생활을 구성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 해결이 반복하면 번영의 신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신앙은 매사 신의 간섭을 의뢰하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그러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그렇게 혹평당하기만 할 것은 아니다.        


청소기를 돌린다. 가만히 집에 있는 게 부담스럽다. 실직하면 시간을 보내는 자체로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무료함에는 곧 익숙해진다. 거실, 안방, 내방, 빈방, 주방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고 보면 청소기를 사용하는 걸 ‘돌린다’라는 동사로 표현하는지, 돌아가는 것은 모터고, 나는 청소기를 밀지 않나. 그럼 ‘청소기를 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방 좀 밀어라’는 말은 들어본 것 같다. 그렇다면 밀는 행위의 주어는 ‘나’, 목적어는 ‘청소기’, 밀리는 대상은 ‘방’인가 보다. 언어와 행태를 그대로 맞추려는 것도 과도한 의지이다. 말과 행태가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 게 훨씬 현실적이지 않나. 그렇게 따져서 나는 ‘청소기를 밀다’라는 표현 하지만, 나머지 전부가 ‘청소기를 돌린다’라고 하면 나만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이니, 결국 틀린 게 되고, 문득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생각난다. 청소기 따위야 돌리든, 밀든 큰 일 아닌데, 혹 나중에 중요한 사건을 마주하고 남들과 달리 혼자만의 의견을 말할 일이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용기가 있나.      


청소를 마치고, 어제 교회 다녀오면서 마음먹은 일을 실행한다. 가지고 있던 주식을 처분한다. 작은 방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한다. 경쾌한 여성 중창 목소리로 ‘신한금융투자~’ 주식 트레이딩 프로그램 접속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로그인하는 손이 덜덜 떨린다. 고로 한 종목은 꽤 손해를 보고 있고, 다른 종목은 수익을 한창 보고 있다. 이게 서로 상쇄해도 약간의 손해 중이다. 돈이야 얼마 안 되지만, 내가 하는 주식투자 차원은 나의 분석에 따른 예측과 그 결과를 보는 내 생각이 맞나 하는 수준인데, 이게 신앙으로까지 승화해 지금 손절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실직기간에 내 인생의 신앙을 한번 점검을 해보자고 결심하지만, 그런데 지금 주식 팔아, 이제 주식 안 하고 하나님 잘 믿으면 다시 취직이 될 거라는 마음 또한 미신스럽기도 하다. 여러 생각이 들 때는 처음 결정한 데로 실행한다.      


저녁에는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번화가에 있는 기타 가게로 간다. 지난번에 고친 세고비아 통기타에 새로운 줄을 매러, 새 술은 새 부대라고 하던가. 술집으로 가득한 거리에 근사한 기타 가게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가게 이름도 SHINE, 거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가게인 듯. 벽에 걸린 이런저런 기타를 구경한다. 통기타, 어쿠스틱 기타, 일렉기타, 펜더, 레스폴, 베이스, 기타라는 범주에도 여러 다른 소리에 따라 달리 불린다. 같은 음을 내더라도 소리의 풍미와 톤은 제각각이지만, 또 다 같은 음이기도 하다. 공통의 범위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집단이 존속하려면, 세대를 거듭하는, 진화를 이뤄내려면 다양한 소리를 반영하되, 또 하나의 음을 낼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쉽게 제안할 수 있어도 실천하기에는 요원한 일이다. 어머니는 기타 잘 치는 작은 아들에게 새로운 기타를 선물하고 싶으신지 벽에 걸린 기타 하나하나를 다 만져보며 동생 이야기를 한다. 통기타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중학생이 이제 애기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됐다며, 어린애들 때문에 기타 한곡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아빠가 기타를 잡으면 애들도 같이 기타를 잡아버린다. 동생이 대학생 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산 일렉기타를 손자 녀석들이 던지고, 침을 묻히고 빨고 있는 걸 보면서, 어떻게 돈 모아 산 기타인데 애들이 저렇게 가지고 놀게 두고 있냐며 속상해하던데. 오히려 동생은 자기 자식이 그러는 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하고. 나 역시 가게에 걸린 근사한 기타를 보니 동생에게 한 대 사주고 싶다. 재취업하면 저기 걸린 펜터 스트라토캐스터를 동생에게 하나 사줘야겠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의 'old love'를 연주해 달라고 해야겠다.      


어머니와 집으로 걸어간다. 어느 지점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아버지랑 함께 걸었다는 길이라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신다. 나도 역시 아버지 병환 중 같이 산책을 하던 구간에 들어서면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좋은 기억이 너무 많은데, 마지막 병중에 계시던 고통스러웠던 두 달의 모습만 강렬하게 내 기억에 박혀버렸다. 라스트 리콜이라 하나 돌아가신 지 두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아버지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몇 년 사이 산책길 주변에는 근사한 커피집이 무수히 생겼다. 생겼다, 곧 사라졌다, 곧 생겼다 를 반복하겠지. 아직은 생기기만 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비 많이 오면 하천이 범람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는 이 길이 근사한 카페 거리로 변할 줄 알았을까. 어머니는 돈 좀 있었다면 여기 상가 한 채 사놓을 생각이 진작 있었다고 한다. 요즘 여기 상가 하나 당 임대료가 월 200만 원이 넘는다고, 비 오면 진흙탕 길에 장화 신고 다녀야 하던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강가 산책로, 카페거리... 사람 일, 아니 돈 되는 일은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있으니 이야기하며 산책하고 여하튼 잘됐다고 하신다. 어찌 됐든 누구 하나라도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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