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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06. 2019

사색33. 편견

 3월 25일(화)

기타에 새 줄을 맨다. 저번에 고친 브릿지가 6현의 장력을 견딜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줄을 조이며 조율해본다. 디잉~, 디이잉, 디이잉, E음을 내는 첫 번째 줄부터 한옥타브 높은 E음을 내는 여섯 번째 줄까지 조율을 마치고 촤라랑 G코드를 쳐본다. 기타를 배우며 처음 잡은 G코드, 그 소리가 절대음으로 귀에 박혀 완성된 조율을 완성하는 기준이다. 소리가 제법 괜찮다. 스크로크로 한 곡을 치고 나니 조율이 약간 틀어진다. 이 정도면 직접 수리한 것에 만족하지만,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맡길 걸 후회도 한다. 큰 결함이 아니라 혼자서 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한 데로 되지 않는다는 만연한 공리를 또 복습했다고 자위한다. 고향집에 잠시 있는 동안 이 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낼 거다.       


목욕탕에 간다. 책장에 있는 책들 중 온탕에 들어가 앉아 읽어도 될 만한, 물에 좀 젖어도 되는 소장가치가 적은 책을 골라 목욕탕 바구니에 넣는다. 안철수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2004)>을 펼친다. 보안에 대한 저자의 원칙,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의 차이점, 관리자가 해야 할 일 등 오래전에 쓴 책이지만 여전히 탁월한 경영자의 모색을 공유할 수 있다. 지난 목욕 때는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1999)>를 온탕에서 읽었는데, 글로벌 기업으로 범세계적인 재무기준을 본사 기준에 맞게 표준화해 전사(全社) 시스템을 구축하는 어려움 등, 역시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까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러고 보니 IT계 두 거장의 책을 목욕탕에서 읽었네. 


안철수는 지금 정치계로 영역을 바꿔, 국가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영인이 기업에서 선택하는 것과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선택하는 것의 차이는 자명하며, 기업 경영에서 증명된 역량이 비교적 모호한 목표와 가치를 띄는 국가를 운영에서 두각을 낼 수 있을까. 한때 누구보다도 신선했던 그가 정치라는 분야에서 점점 노출되면서 미시적인 정치 실패로 인해 신선함이 상쇄돼 가는 게 안타깝다. 공공의 성과를 이루는 방법과 기준, 의사결정은 특히 공공 영역의 비효율, 목표의 모호함을 얼마나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가에 따라 그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자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얼마나 자기 결정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과 소위 국민이라는 모호한 집단에 반응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실 그게 국가를 잘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여하튼 그가 이룬 이전의 성공은 정치계에서 쌓을 수 있는 성과와는 아무런 관계없다. 안랩을 성공시킨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의 경쟁자가 더 실패하는 데서 새로 생길 대체성에 대한 기대감, 반사이익이 없다면, 그가 다시 예전처럼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목욕을 마치고 몸을 말리고 옷을 꺼내려 사물함 키를 돌리는데, 열쇠가 꿈적하지 않는다. 좌우로 돌려봐도 잠금장치가 돌아가지 않는다. 사물함 안에 옷이 잠금장치에 끼어 열쇠가 돌아가는 걸 막고 있는가. 이거 어떡하나. 목욕탕 아저씨를 찾아가 상황을 말하면서도 이 사람이 뭘 어찌할 수 있겠나 싶다. 아저씨는 자리에 앉아 내가 열쇠를 반대로 넣었은 것 같으니 위아래를 바꿔 돌려 넣으라고 퉁명스레 말한다. 아니, 이 나이에 목욕탕 사물함 열쇠 위아래도 몰라 볼 것 같나. 남일이라 그리 퉁명스레 이야기 하시나 따지려다 한번 시키는 대로 해보고 따져야겠다고, 사물함으로 돌아가 열쇠 위아래를 좀 전과 달리 반대로 해서 돌려보니 문이 철컥 열린다.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아저씨 외모와 퉁명스러운 태도만으로 판단한 내 편견을 반성하게 된다. 견문을 넓힐 곳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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