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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06. 2019

사색35. 신종플루

3월 27일(목)

아침밥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전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어제저녁에 섭취한 열량도 그대로 보존된 듯한데 아침이 들어갈 리 없다. 어머니께 당분간 아침을 억지로 먹지 않겠다고 한다.   

   

“니가 안 먹으면, 나도 안 먹는다”

어머니가 강수를 둔다. 그럼, 엄마도 먹지마! 먹고 싶지도 않은 걸 어떻게 먹어! 라고 강수에 맞설 강수를 둘 자격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게 밥이란 빼먹을 수 없는 종교적 실천 이다. 보리고개, 옥수수죽 이런 거 모르고 살아온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훈이 그랬다. 오래전 조선왕조부터 정권은 국민들의 밥을 먹일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인데 최근에서야 드디어 이뤄낸 거, 그런데 요즘은 밥 먹는 건 걱정이 없는데 밥을 먹기 위해서 이뤄낸 성장 속에서 문제가 뒤틀려 있다는 이면을 지적했다. 사람들 마다 이게 정상은 아닌데, 뭔가 문제가 있긴 한데, 그런데 뒤틀림을 캐기 전에 일단 밥은 계속 먹어야 하는 거니까. 어머니의 강수에 어제저녁에 섭취한 열량에 오늘 아침의 열량을 더할 수밖에 없다.


베란다에서 기른 파와 나물로 밥을 비벼주셨다. 어머니는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봄철에 김치도 없어 매일 이걸로 밥을 해줘 지겨웠다면서 이제사 맛있기만 하다 하신다.      


이상하게 기운이 없다. 열량은 충분한데,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어머니 나가시자 다시 잠을 청한다. 기면증 같은 건 아니지만 실직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운이 엄청 든다. 불안감으로부터 낮잠으로, 정신을 도피한다. 내방이 아닌 안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방안을 휘익 둘러본다. 2년 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암 말기 진단에 2개월을 병원에서 항암치료받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와, 이방에서 주무시고 그 하루를 마지막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시선, 이런 높이였구나 싶다. 그때 항암치료 같은 건 하지 말걸 후회가 들지만 이제사 후회를 하는 게 의미가 있나. 후회하면 뭐하나 마음을 추스르면 서도, 만약 항암치료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 가정법 속에서 잠이 든다.      


계속 집에만 있는 게 속상한지, 어머니는 좀 나라가라고, 해운대에 있는 동생 집에 반찬 좀 가져다주고 오라며 반찬을 싸 주신다. 배달하는 김에 가까운 해운대 바다를 들러 모래사장을 걷는다. 파도가 친다. 바람에 따라 파고가 다양하겠지만 오늘 출렁이고 있는 파도 높이는 충분히 견딜 만한 것 같다. 견딜 만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긴다. 어느 정도 넘을 만하다 싶으면 걸림돌이라기보다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 파도여 오너라. 지금 나는 실직이라는 파도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있나, 두려워하고만 있나. 반찬 가방을 들고 생각한다.      


미리 전화로 알리지 않고 동생집으로 기습하고 보니 제수씨와 조카 두 녀석 모두 감기에 걸려 골골거린다. 콜록거리지만 이제 세 살 된 둘째 조카 현동이가 말이 많이 늘어 하는 짓이 예쁘기만 하다. 첫째 조카 해동이도 네 살이 되니 의젓해졌다. 그동안 서울 살며 조카들 자라는 걸 못 보다가 처음으로 조카와 대화를 한다. 어색한 만큼 즐겁기도 하다. 조카의 성장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제수씨는 침대에서 계속 기침을 한다. 갑자기 해동이가 배 아프다고 투정 부리기 시작한다. 투정이라고 하기엔 정도가 심해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맨몸을 만져보니 갓 시킨 커피 찻잔 정도 열이 느껴진다. 침대에서 콜록 거리는 제수씨를 불러 애가 이상하다 하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제수씨 본인도 감기로 몸이 너무 아파 움직이질 못하겠다며, 나에게 해동이 데리고 여기 가까이 있는 병원에 좀 다녀와 달라고 부탁한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건 처음이다. 집 앞이라던 아동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6시 넘어 진료시간 끝났다고,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 모를 백의천사는 다른 곳으로 가란다. 해운대에 아동 병의원 여기 말고도 많이 있다는 친절한 안내를 하며, 내가 나서자 병원 셔터 문을 내린다. 집 앞이라 가깝다 해서 애를 둘러업고 왔는데,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 휴대폰으로 지도 주변 검색으로 가까운 병원을 찾아보니 업고 가기에는 꽤 먼 거리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큰길을 찾아 뛰기 시작한다. 등에 업힌 해동이는 울기 시작한다. 택시는 잡히질 않는다. 마음이 타들어 간다. 등에 업힌 애도 울고, 애를 업은 나도 울음이 나기 시작한다. 실직 중이라 되는 일도 없다 하는데, 아픈 조카가 등에서 울고 있으니 나도 맺힌 무언가를 터트린다. 애도, 어른도 엉엉 울면서 택시를 탄다.       


“열이 나서 체기가 있는지, 체기가 있어 열이 나는지 알 수가 없다”, “체기 처방을 하기 전에 독감(신종플루) 검사를 따로 하자”

의사 선생님은 독감과 배탈의 인과관계에 대한 직관적 처방을 미루고, 중간에 검사체계를 넣어 판단 하겠단다. 보통 상관관계만으로 의사 본인의 직관과 암묵지로 판단해 처방을 하지 않나? 독감 진단 하나에도 검사 과정을 추가한다니 과학적이라 믿음직스럽다.


신종플루 검사라는 게 보통 보다 훨씬 긴 면봉을 코 깊숙이 넣어 모세혈관을 터트려 나오는 피를 가지고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거라고,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 모를 여성이 잔인한 검사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조카에게는 간단한 검사라고 설명하고, 담배 길이보다 긴 면봉을 억지로 코로 넣는다. 조카는 놀람과 괴로움을 동시에 표출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아기 아버지, 아기 손발 몸을 딱 잡고 있으세요”라는 말에 아버지 아니고 삼촌이라고 대꾸할 정신도 없이 조카를 꼬옥 안는다. 누가 간호직을 백의의 천사라고 했나.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을 하고 있나.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끝까지 피를 보겠다고 작당한 저 짓을. 조카가 너무 괴로워하니 내 심장이 쿵쾅쿵쾅 거린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식이 다쳐 응급실에 온 부모들이 자식 아파하는 걸 보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간간히 봤다. 그 아픔이 어떻게 자신의 고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경험하지 못한 그 경지가 신기했는데, 조카가 내 눈앞에서 이리 괴로워하고 있으니 내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아프다. 조카의 아픔이 이 정도로 전도되는데 자식이라면 어떨까. 생판 남의 자식이라면 이리 괴로워할까. 결국 모두가 기다리던 선홍빛 피가 코에서 주룩 흐른다. 잘됐다 하며 피를 반긴다.       


검사 결과, 독감으로 판정한다. 결국, 독감인었는데 검사 없이 의사 선생님이 딱 맞출 수는 없었을까. 검사를 언급할 때는 믿음직해 보이다가 곤욕스러운 검사를 하고 보니 독감 정도야 대충 때려 맞출수 있지 않나 하는 미련한 생각이 든다.


열도 너무 높다며 의사는 주사를 처방한다. 주사 맞자니, 조카는 또 울기 시작한다. 좀 전 코 면봉 넣은 것보다 덜 아프다 고통을 다른 고통에 비교하며 설득하다니, 결국 고통인데, 악마적이다. 목적이 선하면 과정이 악마적이라도 괜찮을까. 나도 점점 지쳐, 얼른 병원을 나가고 싶은 생각에 조카에게 주사 맞자고 재촉 한다. 결국, 지옥 같은 병원 진료를 마친다.      


“힘들어, 삼촌”

병원 문을 나서는 데 누구보다 가장 힘들었을 조카의 말에 마음이 덜컹 내려 않는다. 얼른 택시를 잡아탄다. 조카가 아파 병원 가는 것도 마음이 이리 심란한데. 만약 이런 자식들이 있는 데 실직한다면, 끔찍한 상상을 멈춘다. 지금 노총각인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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