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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10. 2019

사색36. Saved by the Bell

3월 28일(금)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덜 우울하다. 그런데 우울함에 대한 더하고 덜하고 그 정도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우울할 뿐이겠지.


기타를 치며 노랠 부른다. “오랜 꿈들이 공허한 어린 날의 착각 같았지”,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한창 부르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02로 시작하는 서울 번호다. 지원서를 넣었던 B회사란다. 오늘 당장 면접을 보잔다. 지금은 부산이라서 당장은 어렵다고, 공손히 시간 조정을 부탁한다. 알겠다며 전화는 

다. 


순간 멈춘 듯한 시공간, 그리고 멈춤을 깨는 후회가 밀려온다. 괜히 시간 조정을 해달라고 했나? 지금 KTX를 타고 가면 오후에는 면접이 가능한데. 회사 측에서는 알겠다고 해놓고 면접을 취소하는 건 아닌지. 구직 시장이 워낙 험난 하니 시간 조정을 요청했다는 게 혹시 건방진 인상을 준 것인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우울한 게 덜하다고 했나? 순식간에 더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우울한 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 확실히 더 우울해진다.


방금 떴던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울린다. 내일부터 주말 지나고 오는 월요일로 면접을 조정한다. 감사하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직 면접인데도 시간 조정하는 게 이리 마음 졸일 일이다. 취업시장에서 구직자는 을 중에 을이다. 근로계약서의 ‘을’이 되기 위한을 후보자들. 면접을 보자는 전화벨만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 구원의 벨소리다. 

    

월요일 면접이니 일요일에 올라가야겠다. 기왕 내려온 차에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막상 내일모레 집을 나서려니 어머니께 미안하다. 어머니 홀로 집에 두고 가는 게, 사실 원래 홀로 계시던 상황인데도 남겨 두고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작은 방으로, 작은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내 방으로, 내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현관으로 집안을 걷는다. 동향이라 오전에는 아침 햇살로 가득하다. 현관 신발장 앞에서 문득 지난 일요일 교회 가면서 어머니가 ‘예전엔 아빠가 자기 구두를 닦으며 본인 구두도 함께 닦았다는데 요즘은 아빠 없으니 구두 닦아 주는 사람이 없어 구두가 지저분하다’고 말씀하던 게 생각난다. 신발장에 있는 어머니 구두를 모조리 꺼내 닦기 시작한다. 집 떠나는 자식이 해줄 거라곤 이런 것뿐이다.       


어머니는 저녁 약속이 생겼다며 부산진시장에 다녀오겠단다. 나도 함께 가자고, 곧 떠날 테니 최대한 어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본다. 버스를 탄다. 창밖으로 석양이 번지기 시작하는 도시의 풍광에 서로의 시선이 박혀있다. 시선을 박아둔 채 갑자기 면접 보게 됐다고, 내일 서울 올라가 준비해야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시즌이라 본인 힘든 시기를 같이 잘 보낸 것 같다며 고맙단다. 본인이야 내가 있어 슬픔을 나눌 수 있어 좋긴 하지만, 한창 일해야 할 내가 고향집에 내려와 어머니 옆에 있는 게 과연 좋기만 하겠냐며 잘 올라가라며 석양에 박아두고 말씀하시는 눈에는 또 다른 슬픔이 흐른다. 슬그머니 어제 조카들 재롱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손주, 조카 이야기는 웃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버지 빈자리를 두 손주들 재롱으로 채워, 그 녀석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어머니는 부산진시장에서 아버지와 결혼 예단, 한복을 준비했다고 하신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본인 젊을 때 이 시장이 한복으로 유명했단다. 듣고 보니 여전히 한복가게가 즐비하다. 어머니는 약속 장소로 가고 나는 시장을 구경한다. 씨앗 호떡 하나, 씨앗은 많이 넣을 필요 없다고 주문하곤, 뜯어먹으며 돌아다닌다. 한복가게, 마크사, 천 가게를 지나 시장 깊숙이 들어가 본다. 부산에서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인데 들어갈수록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잦아진다. 재래시장이라지만 좋게 말해서 영세 자영업 자지 마냥 펼쳐진 좌판상이다. 시장에서 나와보니 어쩌다 부산진지성(釜山鎭支城)을 마주친다. 임진왜란 때 침범한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쌓은, 왜란 때 그 참혹했던 현장에서 세워진 돌들이 이젠 유적지 조성 사업으로 화려한 페인트 치장을 받았다. 근방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은 치열했던 역사를 가볍게 들이마시고 뱉는다.        


어머니 모임을 마치면 같이 돌아오려고 나섰는데, 모임이 길어진다고 먼저 가라고 해서 혼자 집으로 나선다. 역시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지하철 교대역에서 내려 온천천 길로 걸어간다. 청소년 때, 대학생 때, 연애할 때, 군대 휴가 때, 여러 추억이 있던 이 길, 오늘은 실직했을 때 걸던 길이라는 추억을 하나 더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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