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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10. 2019

사색38. 소득, 영양 균형

3월 30일(일)

아침에 눈을 뜬다. 순간 여기가 고향집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고 놀란다. 동시에 고향집 아닌 또 익숙한 내 공간이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부산 고향집에 오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리 일찍 서울 집으로 와있을 줄 몰랐다. 공간보다 시간이 어색하다.     


일요일이다. 습관처럼 교회로 간다. ‘습관’으로 교회 가는 게 좋지 못한 신앙 같지만,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된 것도 훌륭한 신앙 아닐까. 신앙이란 게 습관 이상의 것도 필요하지만 태도는 습관에서부터 이뤄지니까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게 먼저인 듯. 그렇다면 습관처럼 일요일 아침에 교회 간다는 게 나쁜 말이 아니다.      


오늘은 식품영양학과 교수님 한분이 주일예배 설교에 특별 강연을 한다. ‘하나님의 경제학’이라며 설교하는데, 들어보니 경제학의 옛날 명제, 정의를 가지고, 요즘 잘 말하지도 않는 ‘인간은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소재로 인간의 죄성?을 열거한다.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돈돈 거리는, 개인의 이익을 고려하기만 하는 행태를 폄하하는 듯한, 물론 돈 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란 믿음을 높이기 위한 설교를 하고 싶겠지만, 타학문에 대한 개론서 수준의 이해를 소재로 삼아 강단에서 설교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 경제학과 학생도 많을 텐데. 결국, 돈을 뜻깊게 쓰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건데, 사실 돈이라는 게 직접 벌고, 써봐야, 돈이 있어봐야 돈에 대해 알게 되고, 돈 잘 쓰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대학, 대학원 마치고 소득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알코올, 도박, 섹스 중독도 아닌 소득에, 돈에 중독된다. 없이 살다가 돈 좀 벌면 옷, 가방, 차사고, 외식하고, 휴가 때 일본으로 해외여행 가고, 원룸 월세에서 벗어나 전세라는 더 비싼 형태의 주거지 계약을 해서 공간을 확장하는, 위대한 돈. 이런데 돈 거리는 게 나쁘단다. 또, 돈 못 벌어봐서 써본 적도 별로 없는 학생들에게 설교에서 현실에서 돈을 포기하라는 천국 레벨급의 가치를 말하는 게 무슨 하나님의 경제학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들어보면 경제학 이야기도 별로 없다.      


신앙인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생활하며 돈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포기하기 어렵다. 하나님이란 단어와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조합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저런 대학 교수라면 본인이 학문을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경험 정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궁극적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의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틀을 가져와서 말하는 게 나쁜 설교법은 아니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자기식 틀에 끼워 망가뜨려가면서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건. 특히 교수라는 사람들이 자기 전공 분야도 아닌 분야에 대해 박사니까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박사들이 가진 습관인데. 박사는 자기 분야에서나 전문가인지 타 분야에도 전문가 식으로 행동하는 것, 특히 자기 분야의 틀을 다른 곳에도 적용시켜 해석하는 걸 박사병이라고 한다. 신문에 종종 그런 교수, 박사의 칼럼이 많다. 교회 설교 강단에 일반인이나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낸 사람이 강연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다만 이런저런 양반들이 ‘설교’랍시고 비전공 영역을 짧은 분석으로, 신앙 간증과 섞어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버린다. 정말 설교를 전공한 목사님들이 오히려 이런 사람들 눈치 보고 강단에 서기 어려워한다. 식품영양학 교수면 ‘하나님과 영양 균형’, ‘내 성전 내 몸, 올바른 음식물 섭취’이런 거 하면 안 되나. 개인으로 만나면 참 재밌고, 멋진 연구를 하는 교수님들인데, 왜 타학문의 척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설교랍시고 가져오는지. 그게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는 교만한 행태 아닐까. 실직으로 짜증이 늘었나, 교회까지 와서 불만을 가지는 게 내 탓일까, 설교 못하는 사람 탓일까.       


내일, 면접이다. 또, 면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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