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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31. 2019

사색43. 역설

4월 4일(금)

아버지 기일을 맞아 다시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실직한 채 아버지 기일을 맞이한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뒤척거리다 보니 창문 너머 아침 해가 스멀스멀 밝더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등고속 표를 끊어 부산으로 간다. KTX는 비좁은 좌석에 비해 이른 도착이라는 시간을 보상하는데, 우등고속의 넓고 안락한 좌석은 KTX가 제공하는 이른 도착 시간이라는 보상을 상쇄하고 남는 듯하다. 실직자가 시간에 돈을 쓸 필요 없다.        


중부고속도로 위에서 고민한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인내로 완성한 신앙, 몇 천 년 전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지금 내 인생에도 여전히 작용할까. 신이 그때 아브라함을 위해 준비한 게 있다면, 나에게도 준비해놓은 게 있다는 걸 믿을 수,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나. 실직이라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가로 내 인생, 내 신앙을 결정한다면, 그게 신앙의 측정, 기준이라 할 수 있나. 만약 곧 재취업을 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이후 또 실직이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나. 그러면 신앙이 흔들리나. 수없이 일어날 인생의 출렁거림에 어떤 자세, 태도, 신앙을 가질 거냐를 지금 확립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실직 같은 상황에 대응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훨씬 현실감 있는 인생 계획, 대응책, 신앙고백이 아닐까. 대학 졸업하고 구직할 때, 대학원 졸업하고 구직할 때도 지금과 비슷한 감정, 특히 불안감에 포획당해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물론, 불안함이 어느 정도 몸과 생각을 긴장하게 하여 어떤 자세를 도출해 내는 건 긍정적이나, 불안해하기 만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고 만다면 그건 올바른 자세가 인가. 상황이 변수가 아니라 내 태도가 변수가 된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내 태도를 통제해보자. 그렇게 다짐해보면서 불안한 한숨이 덜컥 덜컥 나온다. 


여전히 손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혹시 지난 면접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붙잡고, 이러다 만년 실직자로 놀고만 사는 게 아닐까 하면 여전히 불안하다. 불안했다가 다짐했다가 다시 불안했다가... 체력이 많이 든다. 못 이룬 잠을 이제 들고 만다.    


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도착했으면 저녁을 같이 먹잔다. 제수씨와 조카들이 외가댁에 가서 내일 온다니 모처럼 어머니, 동생, 나 세 모자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잔다.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업으로 군인을 되게 훈련시키는 대학교로 진학해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별로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 부산으로 근무지를 신청해 운 좋게 발령받아 지금은 어머니와 가까이 있다. 일전에 해군에서 근무한 아버지 병적 기록을 신청해서 찾아봤다며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해물탕 위로 젊은 날 군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소회가 터진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해군 하사관으로 경상남도 진해에서 근무할 때 본인을 만났다며, 아버지는 어머니 앞집에 살며 자전거로 진해 해군 본부로 출퇴근했는데, 당시 진해 군청에서 일하시던 큰외삼촌과 바둑을 자주 뒀단다. 바둑을 두다가 식사 때가 되면 외삼촌은 어머니께 밥을 차리게 해 아버지와 같이 식사하게 됐단다.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똑 부러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고, 어머니도 아버지 집에 놀러 가면 방에 유식한 제목의 책이 가득 있어 이 사람 굉장히 유식한 사람인 줄 알았다며 서로 마음을 품었단다. 그렇게 서로 연애 감정이 싹터 결혼을 이루고 보니 아버진 어머니가 똑 부러지는 게 아니라 고집 뚝심 같은 여자란 걸, 어머니는 예전 방에 있던 책들이 아버지 게 아니라 아버지 룸메이트의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단다. 그렇게 서로 속아서 한 결혼으로 남긴 게 나와 동생이다. 된장 풀어 펄펄 끓는 물에 투척돼 발버둥 치던 산 문어가 이젠 토막토막 나 먹음직해진 해물탕 위로 즐거운 옛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머릿속 한 켠은 지금 실직했다는 실직감이 귀에서 웅웅거린다. 오는 일요일이 벌써 아버지의 두 번째 추도식이다. 웅웅 거리는 소리를 애써 눌러 아버지만 집중하고, 그리워하고, 추도할 테다. 


어머니, 동생, 나 세 명이서 고향집에서 밤을 보낸다. 동생이 집을 떠나고 이런 구성으로 집을 채운 건 처음이다. 여기에 아버지가 빠진 다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지금 현실이다. 오늘 즐겁게 하룻밤 보내는 게 실직이 준 선물 같다. 이 순간 역설적이지만 지금 실직 상태가 감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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