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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an 22. 2019

사색42. 이지러진 달이 보름달로 바뀌고

4월 3일(목)

새벽 3시,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든다. 그때부터 REM(rapid eye movements, 역설수면)이라고 하나? 자고 있는데 눈알이 돌아가는 게 느껴지더라. 뒤척거리다가 오전 11시 즈음 일어난다. 어제 잠들기 전 인생에서 먹고사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해 달라 기도하면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벌어진 막연한 하루, 먹고사는 문제로 마음이 괴롭다. 여전히 이 상황이, 이 상태가 나를 괴롭힌다. 다시, 잠으로 도망한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노년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명령을 따른다.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신의 계획에 all in 하는 어려운 일을 해낸다. 신앙의 완성, 인간으로서 신을 신뢰하고, 신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체험을 이뤄낸 수준이다. 고향 부산에 있다가 갑자기 면접 보자는 호출로, 곧장 올라와 면접을 본 게, 난 일종의 calling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안된 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소식을 기다린다. 우연의 하나일 뿐인데, 내가 원하는 바와 상황에 따라 신앙을 개입해서 해석해 사건의 인과 관계를 필연으로, 극적으로 만드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이게 제일 피곤하다. 그냥 면접을 본 것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운전할 때 좌회전 신호가 오면 핸들을 왼쪽으로 돌려 신호에 실천하는 것일 뿐인데, 왜 좌회전을 해야 하지, 이 신호가 지금 이 길로 가라는 사인인가? 과도한 해석은 오히려 비신앙적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꽤 춥다. 일교차뿐만 아니라 동일 시간대 어제와 오늘의 기온차가 심한 것 같다. 살면서 동일 시간대 어제오늘 기온차를 느껴본 적이 있던가. 실직자는 동일 시간대 어제오늘 기온차를 몸으로 느낄 정도로 그동안 지나쳤던 하루를 여러 단위로 경험할 수 있다. 집 앞 동네 식당에 가서 돈가스 김치찌개를 먹는다. 신기한 메뉴다. 김치찌개에 돈가스를 넣고 끓인 요리, 근사하게 말하면 퓨전이고, 잡탕찌개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런 게 땡긴다.       


오는 6일, 일요일, 아버지 기일이다.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없었다면, 그냥 부산에 계속 있었으면 아버지 기일까지 있다가 서울 올라오는데, 면접 보느라 중간에 올라왔지만, 결과가 없이 다시 내려간다. 허무하다. 마침 아버지 기일을 맞아 동생으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이메일이 왔다.


"형님, 올해 진급 심사 참고자료에 가족 중 직업 군인에 대한 기록란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해군 하사였다는 것만 알았지 아버지 근무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습니다. 그래서 해군 기록정보단에 문의하니 아버지 근무 기록을 알려주더라고요. 하나하나 받아 적으면서, 괜히 그리운 생각이 들고 있던 차에 형님 문자가 왔네요. 생전에 아버지께서 DD구축함 93함, 레이더 교육받았다고 말씀하시며 해군 생활 이야기하시던 것, 장교는 하사관과 달리 영어 책을 해독하더라, 하시던 말씀, 경력을 보니 고이 남아있네요.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해군 근무 내역을 보냅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기록입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성명 사유진

*군번 000000000

*전역 당시 계급 하사

*출신 해군 부사관

*주특기 전탐

*복무 71.1. ~ 77.4. (6년 2개월)

*경력

-71.1~71.3 신병훈련소

-71.3~71.5 통제부 통신참모실

-71.5~71.9 교육단 교육생

-71.9~72.1 함대부 전술 학교

-72.1~74.4 93함

-74.4~76.2 작전참모실

-76.2~76.4 86함

-76.4~77.4 71함     


아버지는 20대 젊은 시절 6년 넘게 해군에 계셨다. 생전 식탁 위로 ‘내가 해군에서 말이야... ’할 때는 지루한 군대 이야기라고 흘려들었는데, 구체적인 근무일지를 확인하니 그때 흘러 듣던 이야기가 다시 생생해진다. 그도 해군을 천직으로 여기고 복무했다는 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을 젊은 날, 인생 계획이 틀어진 그때, 방황, 실패, 실직의 기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궁금하다. 많이 그립다.         


교회 동생 정지인과 저녁을 먹는다. 낙성대에 있는 9온스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지인이는 캘리포니아, 나는 클래식 햄버거를 시킨다. 만족스러운 메뉴다. 지인이가 자기 생일 턱이라며 계산한다. 생일이라 내가 대접을 해줘야 할 텐데, 소득이 없으니 그냥 지인이가 계산하게 한다. 무소득은 계산할 일에 사람을 뻔뻔하게 만든다. 집으로 걸어가다가 카센터의 타이어를 보곤 firm theory가 생각났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핵심적인 것은 직접 생산하고, 비핵심적인 것은 외부 회사와 계약해서 발주하는 것으로 대체할 것이다. 자동차 회사의 엔진은 핵심적인 기술로 스스로 생산하지만, 타이어는 자동차의 비핵심적인 요솔 판단해 외부 회사와 계약한다. 현대자동차는 있어도 현대타이어는 없다. 비행기 회사는 놀랍게도 엔진을 외부와 계약해서 발주한다. 내부에서 직접 만들 것이냐, 외부 회사에게 줄 것이냐를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게 ‘대체 가능하냐’는 것이다. 비행기 회사가 엔진을 외부 회사에게 맡기는 것은 비행기 회사를 운영하는 데 엔진이 핵심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근로자가 회사에서 짤리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이 대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로 결정될 것이다. 최근 면접을 보면서 느낀 건, 회사 측에서 내가 작성한 이력서, 지원서 서류로는 나에게 어느 정도 대체 불가능성을 봤는데, 막상 면접에서 대체 가능성을 발견하고 채용이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직전 회사에 사장이 날 해고하기로 결정한 것도, 말도 안 되는 미친 이유지만, 나 말고도 대체 가능한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대체 불가능하지 않으니까 해고를 결정한 것이다. 구직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내가 대체 가능성이 낮다는 걸 회사에 설득시켜야 하고,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대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찾아야 하고, 이게 재취업할 수 있냐 마냐의 싸움이다.      


이발하러 간다. 머리 깎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주말이 아버지 기일이니 단정한 머리로 고향집에 가야겠다. 아무렇게나 삐죽한 머리를 보면, 어머니는 괜히 얘가 놀고 있어 머리 신경도 안 쓰는구나 속상하실 것이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커트를 해줄 수 있는 미용사를 찾았다. 장루이다비스라는 헤어 살롱의 세라 실장. 미용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름이 세라, 미라, 미호, 헤라, 주니 같이 아이돌 가수 같은 이름을 쓴다. 어떤 이름이면 어떠랴 짧은 스포츠 스타일이지만 남성의 헤어스타일을 소비자 요구대로 구현해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스포츠머리 헤어스타일을 주문했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소통, 내 원하는 바를 구현해내는 미용사를 만나지 못했다. 사실 정확하게 원하는 스타일을 본인도 모르는 데서 원인 하겠지만, 또 그걸 잘 설명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친구는 “옆머리를 높은 것보단 낮게, 낮은 것보다는 높게 해 주세요”라며 현대 포스트모던 철학서보다 어려운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라. 헤어스타일이라는 구체적인 상품도 소통하기 어려운데, 제도와 정책을 소통해야 하는 정부는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 걸까. 툭하면 소통이 문제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모두 소통 문제라 하니, 가끔은 ‘소통’이 불쌍하다.     

  

집으로 가는 길, 4월의 봄날이라 하기엔 쌀쌀한 날씨, 지금 내 심정과 차라리 잘 어울린다. 아직 실직 중, 봄이 부담스럽다. 사는 게 뭘까. 계획한 것과 계획하지 않은(못한) 것의 충돌,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것을 마주했을 때 어찌 대응하며 채워가는 그림 같다. 겨우 대응만 하고 사는 게 인생인가. 생각하지도 못한 실직을 만난다. 실직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 이전 자신감 넘치며 살던 것보다, 단 하루도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에 대응을 모색하는 겸손한 태도가 나쁘진 않다. 그런데 이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면, 이런 겸손이 무기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신은 내게 어떤 걸 준비해 놓고 있을까, 아니 신은 내가 어떻게 대응하기를 바라고 있나. 이걸 신앙으로까지 확대하는 믿음, 그걸 어떻게 가지나. 신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나.      


어머니께 내일 부산으로 내려간다며 내일 봐요 하고 전화한다. 여전히 고향집으로 가는 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고향에 간다는 ‘순간’은 편하다. 전화를 끊으며 들어선 골목길, 눈을 들어 떠있는 달을 보니 초승달인가, 초생달인가. 아버지 생전에 서예글로 쓴 송익필의 '객중'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시련의 때 주저앉지 말고

 적막의 날들 앞에 허물어지지 말고

 이지러진 달이 보름달로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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