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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2. 2019

사색46. 짜파게티와 머니볼

4월 7일(월)

지원서를 넣은 몇 곳에 채용 결과를 알아본다. 공고한 직무에 채용을 마감했단다. 서류 심사는 통과할 줄 알았는데,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면접도 보지 못하다니. 몸이 둥실 공중에 뜨는 듯하다. 은유 말고 진짜 물리적인 느낌이다. 몸은 떠있는데 고개를 숙여보니 발은 땅에 붙어 있다. 둥

실.     


어머니는 저녁 약속 있다며 나가신단다. 나 혼자 밥 먹게 해서 미안하다며 찌개, 국, 반찬 차리시기에 모처럼 나가시는 거니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알아서 챙겨 먹는다고, 제발 그냥 나가라고, 재촉에 재촉을 하니 미안한 표정으로 나선다. 절대 라면 끓여먹지 말고, 제발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인스턴트 음식 먹지 말라 신다. 알겠다 하고 현관문을 닫고 짜파게티를 끓인다. 하지 말라 하면 할 마음 없었는데 이상하게 더 하고 싶다. 밥, 반찬 다 차려놨는데 굳이 짜파게티를 끓여먹겠다는 정성이, 정신이 신기하다. 일반 버전 하나, 매운맛 버전 하나를 섞어 끓인다. 알맞은 매운맛이다.       


TV에서 영화 <머니볼>을 한다. 야구단이 타자를 스카우트할 때 기존에는 타점이 높은 선수를 우선순위에 두는데, 영화에서는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도록, 스카우트의 결정요인을 새로운 기준으로 바꿔 팀을 꾸려가는 이야기다.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데 상영 내내 상반신 탈의 한번 없어도 우직한 남성성이 흐른다. 

    

기존 시장에서 지배하는 전략을 바꾸는 것, 직관적인 편견으로 쌓인 의사결정에서 진짜 가치를 보려는 노력, 게다가 더 적은 비용으로 구단을 운용하는 패러다임 이동을 말하는 머니볼, 영화 내내 가슴이 설렌다. 새로운 전략이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 전략을 선택한 리더는 일약 스타가 된다. 더욱이 새로운 전략이 소수론이라면 그 선택은 더 빛난다. 갑자기 직전에 날 해고한 회사 생각이 난다. 늦은 푸념 같지만, 사장은 말도 안 되는 공동 집단 지성 운영체제라는 걸 가지고 와서 직원들을 괴롭혔다. 개인의 일과 조직의 일은 엄연히 구분하며, 구분해야 할 일터에서 집단 지성 운영체제라는 책에서나 근사하게 보일 업무 프로세스를 들이댔다. 재밌는 것은 사장이 그렇게 요구한 대로 집단지성 운영체제로 해서 만들어 준 output을 막상 사장이 거절하더라. 결과물에 거절이 반복되니, 직원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것의 목표가 무엇이고, 무엇이 집단으로 일하는 것이고, 결국 사장이 원하는 것은 결과인과 과정인가, 무엇인가. 매일 출근해서 회사에 앉아있으면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게 결과의 수준인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인지. 만약 과정이 목적이라면 질이 떨어지더라도 사장님께서 요구한 과정으로 만들어 온 결과니 그것을 수용해야 하지 않냐. 가져온 결과를 사장님께서 이거 집단으로 한거 맞냐 하며 자꾸 뒤집어 버리니 많은 직원들은 결국 집단으로 하는 척이라도 하자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한다고. 사장은 본인은 이 시장에서 이미 최고가 됐다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집단지성 운영체제를 완성하고 싶다, 무엇이 나와도 좋다, 이 변화가 우리를 벼랑으로 떨어지게 하더라도 함께 떨어지자는 투사적 의지를 보이며 체제를 고집하겠다 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 직원을 차례로 해고했다. 내가 떠난 그곳에서 그 말도 안 되는 운영체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지만 개인이 할 일과 조직이 함께 할 일은 구분해야 하며, 개인이 할 일을 조직에게 맡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행동 옆에 서있을 수 있다. 사장이 어설픈 경영, 기획스러운 경영 서적 한 권 읽고 와서 적용하겠다는 게 수많은 직원들을 얼마나 괴롭히나. 다니엘 핑크였던가, 그 사람이 썼다는 책을 읽고 극찬을 하던데, 하도 그러기에 나도 그 사람 책을 읽어보니 집단지성 운영체제라는 운영에 대한 동기를 얻기는커녕, 이건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을 확신했고, 경영대학원을 다닌, 내 주변에 몇 안 되는 현명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다니엘 핑크는 경영학자도 아니고, 조직운영을 아는 사람도 아닌 썰 풀이하는 수준으로 알고 있더라.      


영화 <머니볼>은 소수론을 선택해서 성과를 이뤄내는 탁월함을 그렸다. 남들의 회의적인 예상 속에서도 그것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하는 리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사회 직장에서 리더 다운 리더를 만나긴 어렵다. 영화 <머니볼>은 야구 영화라기보다 기존의 기득권에 변화를 주려는 사람, 아무도 따라주지 않는 선택을 모두에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게 진짜 리더 모습이라 말하는 듯하다. 반면 날 짜른 사장은 도대체 뭘 하려고 했는지, 여전히 그 동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해고에 대한 복수심만 남은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당신 왜 그랬어요?’라고 따져볼 기회가 있을 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기회조차 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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