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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01. 2019

사색45. 올해 가장 어려운 일

4월 6일(일)

4월은 봄이라기에는 아직 날씨가 춥다. 오후에 있을 아버지 추도식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진행을 준비하며 기도한다.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두곡 부르며 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특히 방황 중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음을, 오늘 아버지를 그리워 묵상하고 우리 인생에도 아버지 같이 하나님의 간섭을 기대하도록. 동생 가족이 도착한다. 큰 조카 해동은 외삼촌이 사줬다는 멋진 RC카를 손에 들고 있다. 둘째 조카 현동은 오는 길에 잠이 들어 아빠 품에서 자고 있다.      


거실에 모여 아버지 추도식 예배를 시작한다. 먼저 찬양하는데, 그리움과 동시에 실직자라는 처량함에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는다. 울기 싫다. 어린 조카들이 요란 법석을 떠는 바람에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아 차라리 다행스럽다. 각자 요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는 바를 터놓는다. 동생은 만개한 벚꽃 길에서 자전가를 타며 아버지는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애쓰시던 분이었는데 지금도 우리가 즐겁게 지내는 걸 원하지 않을까. 앞으로 벚꽃이 흐드러진 이맘때 아버지 생각으로 슬퍼하지 말고, 우리 서로 즐거워하잔다. 진원 제수씨는 시아버님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아버지 안 계신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리워한다. 그러고 보면 제수씨는 아버지랑 시간을 보냈지만, 장차 내 미래의 아내는 시아버지 얼굴도 못 보겠구나. 식을 마치고, 아버지 회갑 때 기념으로 만든 동영상을 거실 TV로 본다. 아버지가 어릴 때 사진부터 차근차근 지나가 순식간에 청년이 되고, 장성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까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노래 한곡 동안, 한 인생 노래 한곡으로 끝난다. 동영상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나온다. 기억한 다곤 했지만 모호하던 아버지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또렷하게 내 고막에 닿으니, 이게 아버지 목소리지 하고, 반갑다.      


아버지 유골이 있는 반송 실로암공원묘지 납골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는 아버지가 여기 조그만 유리방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아버지 유해 일부로 효율적인 상징을 만들어 그를 기념하는데 도움을 주는 장치이다. 또,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보다 남은 우리 가족이 일 년에 한두 번 마음을 모아 그를 그리워할 때 아버지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것이라 믿는다. 어머니 역시 신앙인으로서 아버지가 이 조그만 방에 있는 것은 아니라 믿겠지만, 평생을 함께 한 동반자 빈자리가 그리워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다.     

 

조카 현동 손을 잡고 공원의 연못을 건넌다. 징검다리 하나를 건너면서 혹시 현동이가 물에 빠질까 봐 손을 더 꼭 붙잡는다. 현동은 내 손으로 인한 자신의 안전을 의심하지 않으며 보호를 누린다. 그렇게 의심 없이 징검다리 위를 총총 뛰어 건넌다. 지금 실직이라는 연못 위를 위태롭게 건너는 나, 내 손은 누가 잡아주나? 현동이가 당연하게 누리는 연못 위 안전을 나도 요청하고 싶다. 내 손을 잡아달라고.      


비 온 터라 연못이 탁해 금붕어가 보이지 않는다. 탁한 물속을 집중해 보면 크고 검은 잉어가 순간 나타난다. 크고 검은 물체가 내 눈 앞에 계속 있었는데, 탁한 물속이라 그걸 잉어라고 인식하는 데 잠깐의 시간이 걸린다. 저기 물고기 있다는 내 손짓에 현동이는 어디, 안 보인단다. 금빛 금붕어만 봐온 터라 검은색 잉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인식하나 보다. 연못 속의 검은 잉어는 현동에겐 물고기로 보이지 않는다. 황당하기만 한 내 실직은 내가 그동안 봐온 게 아니다. 내가 예상한 것, 계획한 것만 인식하니 다른 결과는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실직은 탁한 연못 속 검은 잉어처럼, 늘 내 옆에서 헤엄치고 있던 것이었나. 연못 안의 검은 잉어를 현동이가 잉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내게 펼쳐진 실직도 내 인생에 있지 않는 인식의 오류 같다.      


집으로 돌아와 만찬을 한다. 어머니는 맛있는 요를 하는 걸로, 자신의 사랑을 구현하는 행위로 독점한다. 나와 동생은 오래전 독립했고, 아버지가 안 계시니 누굴 위해 밥 차릴 일 없는 게 제일 슬펐단다. 시장을 가도 먹일 사람이 없으니 장보는 게 속상하다고, 누굴 위해 차리는 음식이 아니니 혼자서 대충 밥상을 차려 먹다 위장병이 났단다. 아버지 기일이라며 울진에 계신 고모부가 직접 잡은 문어를 보내주셨다. 동생의 제사에 맞춰 문어를 보내는 누나 마음은 어떨까. 큰 조카 다섯 살, 작은놈 네 살이다. 자기들이 다 큰 줄 알고 식탁 위로 고집 피우는 걸 보니 성장한 것 같다. 한 세대가 가고 이렇게 한 세대가 오는 걸 느낀다.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생네가 돌아가고 어머니와 산책을 한다. 만약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오늘 저녁 먹고 서울로 출발했을 텐데, 그랬다면 오늘 아버지 기일 행사를 모두 마친 저녁 시간을 어머니 홀로 버티고 계셨겠구나. 이제 2년 지났지만 놀랍게도 벌써 아버지의 부재가 익숙하다만, 어머니는 그 빈 공간이 힘들어 오늘을 부담스럽게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첫해 추도식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많이 오셔서 손님 치른다고 정신없었는데, 올해부터 오직 우리 가족, 아니 어머니 혼자서 이 기간을 견디는 듯하다. 올해는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 생각에 힘들었다고 어렵게 말씀을 꺼낸다. 사유진의 아내 장선옥, 그녀에게 남편의 기일이란, 한해의 가장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지금 어머니 옆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안도한다. 어머니도 내가 어쨌든 옆에 있어줘서 마음 편하게, 올해 가장 어려운 일을 잘 치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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