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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2. 2019

사색47. 오륙도

4월 8일(화)

이상한 꿈을 꾼다. 장소는 학교 교실, 나는 선생이다. 학생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빵 하나를 먹으라고 건네 준다. 학생은 손가락으로 빵을 꾹 눌러보고는 그냥 교실을 나간다. 기분이 상한 나는 학생을 따라 나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굉장히 논리적으로 따진다. 그런데 학생 얼굴을 보니 야구 선구, 투수 류현진이다. 류현진이라는 걸 알아차리면서 꿈에서 깬다. 별 꿈을 다 꾼다.     


저녁에는 어머니께서 오륙도가 보이는 용호동에 있는 레스토랑 ‘가원’으로 가서 둘이서 근사하게 외식을 하잔다. 식사초대권이 있어 곧 가야지 하다가 마침 내가 있어 오늘 가야겠단다. 내가 집에만 있는 게 보기 싫은지, 어제 어머니 혼자 외식한 게 미안했는지, 식사 초대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건지. 용호동 이기대 선착장에는 해운대와 다른 깊은 부산 바다를 볼 수 있다. 손을 뻗치면 바로 잡힐 듯한 오륙도가 있다. 부산이 고향이지만 해운대 바다만 보고 살았다. 조용필의 노래 중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에서 오륙도가 부산 어딘가에 있는 줄은 알았는데 오늘 처음 눈으로 본다. 가슴 탁 트이는 남동해 전경, 어머니는 이걸 보여주고 싶어 외식하자고 여기까지 오자 한 것 같다. 본인도 가끔 답답할 때 버스 타고 여기를 찾으면 속이 좀 시원해진단다. 그동안 익숙하기만 한 해운대 바다 아닌 또 다른 부산 바다를 봐서 신선하다. 


식사를 마치고 배가 너무 불러 이기대에서 용호동 거리까지 걷는다. 용호동, 예전에 나환자촌으로 유명했다. 그런 동네가 최근 재건축인지 재개발인지,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나환자촌 이미지가 사라졌다. 동네를 걸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아파트 단지 사이 사이에 있는 주택들은 여전히 그때의 오래된 기억을 연상케 한다. 재개발 건설 자본은 나환자촌 이미지를 깡그리 지우려 하지만, 남으려는 끈질긴 저항이 그 역사를 다 지우긴 어렵다. 


버스를 타고 수영 팔도 시장에 내려, 만두와 어묵을 산다. 어머니가 이 시장에서 롯데 야구선수 타자 이대호의 할머니가 장사를 했다고 한다. 아침에 꿈에서 투수 류현진이 나왔는데, 이대호 할머니가 장사한 시장에 들르려 했던 건가. 여하튼 성과를 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 뒤에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같이 극진한 후원자가 있다. 혼자서 성공하는 인물은 없다.      


외식을 하고, 산책을 하고, 어머니와 안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는 지난주 급체해서 아직 속이 거북한지,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한다. 등을 두드리고, 손을 주물러 주는데, 집에 혼자 있으면 이렇게 만져줄 사람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사무친다. 어머니께선 내가 부산에 있으면 좋겠다 하더라. 그래, 나도 내 고향 부산에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에서. 그런데 여기서 뭘 한단 말인가. 보험설계사? 직장을 찾았다고 부산을 떠날 때처럼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니, 서른 중반 나이에 아직도 뭘 할지 모르겠다는 게 말이 되나? 


구약 성경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본처 사라와 싸우다가 결국 집에서 쫓겨난다.  TV드라마에선 첩이 이기는데 성경에선 본처가 이긴다. 서자 이스마엘을 데리고 쫓겨난 하갈은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아 아들을 끌어안고 울며 기도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계획이 아니었던, 첩의 궁핍함도 하나님께서 챙겨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한다. 이걸 지금 우리 집에 병치시켜보니 내가 이스마엘이고 우리 어머니가 하갈이다. 어머니는 지금 내가 가까이 있어 좋긴 하겠지만 마음은 내 젊은 아들이 실업자라고 취업하게 해달라며 궁핍한 우리 처지를 놓고 새벽기도 가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테다. 나는 급체한 어머니 등을 퉁퉁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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