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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4. 2019

사색48. 감옥, 실직, 하루

4월 9일(수)

책장에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는다.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저자 신영복, 그러고 보니 이 책이 고향집 책장에 자리 한지도 20년 됐지 싶다. 책 제목만큼 무거운 심경에 공감할 기회가 없어 여지껏 책장 밖으로 나와 읽히지 못했다. 이제사 실직자가 되어보니 감옥살이의 심경이 손에 잡힌다.


저자는 감옥에서 하루를 반복한다. 하루, 수일, 수년의 시간을 축적한 그는, 결국 오늘, ‘단 하루’에 인생의 모든 가치를 걸고 철저하게 그 하루를 묵상하며 기록한다. 옥살이와 실직살이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실직 속의 오늘, 하루라는 시공간에 대한 태도와 감정에는 공통이 있지 싶다. 나 역시 실직으로부터의 사색을 기록하는 게 어느 차원으로는 그만큼 의미 있지 않을까. 감옥의 하루와 실직의 하루, 양은 같은 데 질은 어떤 차이가 날까. 감옥 생활 중 일광욕의 소중함을 설명하는 걸 보곤, 실직 생활 중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햇살 좋은 오후 밖으로 나갈 일을 찾아본다.

        

퇴근한 어머니는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 기분파 사장 때문에 일 못하겠다고, 결국 한판 싸우고 왔단다. 어머니 나름 회사 생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어 보니 여타 직장 생활과 다를 게 없다. 일 자체보다 인간 문제가 일터를 훨씬 버겁게 한다. 보통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 밥상에서 직장 상사 욕을 풀면 아내는 밥상에서 그래, 그랬어?, 김 부장 그렇게 안 봤는데 하며 맞장구 쳐준다는데, 어머니 푸념을 실직한 아들이 저녁 식탁에서 들어주고 있다. 어머니 그만두고 말겠다는데, 거 실천할 것 같은데 집안에 실직자가 둘씩이나 되겠다.

     

어머니는 부엌 창고에서 녹즙기를 꺼낸다. 당근을 갈아서 당근주스를 만들어준다. 순수 100% 당근 주스다. 사실 녹즙기는 아버지께 야채 생즙을 드시게 하려고 산거란다. 정작 그 목적은 몇 번 이뤄보지도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이제 매일 주스 만들어 먹자고, 우리를 위해 쓰자고 목적을 변경한다. 같이 설거지를 하면서 아버지 투병 때 항암 처방을 선택한 후회, 여전히 우리는 만약 그때 항암을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들먹이다가, 이런 대화에 진절머리를 친다. 이제사 결과를 가지고 가정법으로 접근하는 건 오늘 살아내는데 도움이 될까, 후회만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습관처럼 ‘... 했다면’ 가정해본다. 이게 말기 암환자 가족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후회하는 모든 일에 대응하는 습관 아닐까. 가정법이란 게 그런 목적으로 쓰라고 만들어 진건 아닐 텐데.        


잠자리에 맞춰 침대에 누워 여전히 반복하는 질문을 곱씹는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실직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실직으로부터의 이 기록, 이 챕터는 어떻게 끝날까. 거실 너머 안방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둔탁한 기침 소리가 고민을 잠시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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