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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16. 2019

사색49. 도피성 수면

4월 10일(목)

눈뜨니 우울하다.      


눈뜨면 다시 실직자로 돌아간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로 쓰러져 다시 잔다. 도피성 수면이다. 의식 중에 불안감이 이명 같은 위잉 위잉 소리를 낸다. 불안감은 늘 활성화 중이다.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으론 의식 자체를 죽이는 수면뿐이다. 그렇게 잠으로 불안감을 죽여 나를 살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은 감옥에서 20년 동안 자신을 수양하고 성찰해서 인간성을 완벽하게 개조했다고 생각했다. 출옥 후 옛 친구들과 자리를 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도 안 변했구나"하며 핀잔을 주더란다. 신영복은 참담했단다. 자신이 옥중 사색으로 완성했다고 생각한 인간성인데 하나도 변한 게 없다니. 감옥에서 이뤄낸 20년의 성찰은 무엇이었나? 사람은 혼자만의 사색이 아닌 대인 관계로 성찰을 실천할 필드가 있어야 한단다. 필드에서 인간성이 이뤄진단다. 사색에는 필드가 필요하다고, 나도 필드가 필요하다.   


선준욱 과장에게 전화가 온다. 여~ 해직 동료님~, 거창한 호칭으로 응대한다. 서로의 생활을 묻다, 선과장이 최근에 실업급여받은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에는 실업급여라니 자존심이 상했단다. 막상 통장에 돈이 찍히니 은근 든든하더란다. 얼른 신청해라며, 자존심 필요 없고 챙길 건 챙겨야 한단다. 자존심은 무슨, 곧 고용노동센터로 가서 신청하겠다고 전화를 끊는다. 한 달에 100만 원이 넘게 준다는데 보험료에 비해 보험금이 많은 편이다.      

선 과장과 같은 직종에서 다시 구직해야 할 텐데 둘 중에 먼저 취직하면 남은 한 사람은 낙오자 같이 지옥에 떨어진 기분 같을 텐데. 혹시 선 과장에게 전화가 오면 재취업 소식을 알리나. 누가 먼저 지옥으로 떨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해직 동료’, 신문이나 뉴스에서 노동자 시위에서나 듣던 용어 아닌가. '동료', 사실 동료는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해직이란 걸 함께 하고 싶은 게 아니잖나. 더욱이 해직을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나? 동료라면서 형성한 근로자 수의 힘으로 경영자 측에 노동 단체 교섭력을 가지기 위한 것이지, 해직 자체는 결국 개인의 일, 남의 일 아닐까.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구호를 외치는데, 기업경영에서 대량의 근로자 해고는 피해야 할 일이지만 경기불황, 매출 감소에 따른 인건비 감축 결정은 없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선의의, 공리적인 이유로 결정됐다 하더라도 개인에게 일어난 해고는 살인적인 일이긴 하다. 해고 당사자 의식이 죽어가고, 차츰 가족의 의식과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량 학살로 번진다. 

      

불안감, 잘 기다려, 잘 인내해야지 하고 마음을 잡아도 위잉 위잉 소리는 늘 울린다. 불안을 넘어 분노하기도 한다. 사장, 부장 모두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복수하고 싶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분노를 해소하려 어떤 기록이든 조각조각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으로 지속할지, 구체적으로 담길지, 혹시 재취업으로 복수심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날지 모르겠다. 일단은 재취업까지를 목표로 이 챕터를 기록하고 싶다. 한편 이걸 기록하는 것도 헛수고 일지  다시 취직될 거라고 믿는 게 웃기는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끝나고 싶다는 건, 내가 어떻게 이끌어 가는 소망에 달려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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