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금)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 나를 받아 줄 곳 있을까. 소명의 재인식까진 아니라도 내 자신을 확신하거나 다시 일할 수 있기는 한 걸까. 결국 불안감이 쓰나미 같이 밀려온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잔다. 안타깝다.
온천천 카페 거리로 나가 오늘은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까 cafe crawling을 한다. 멜버른이라는 근사한 테라스가 있는 카페로 자릴 잡는다. 대학 때 어학연수를 떠난 곳도 호주 멜버른이다. 어학연수도 다녀왔는데 놀고 있다. 요즘에야 누구나 하는 어학연수, 그게 취업에 결정 요인은 아니겠지만 대학 재학 때는 어학연수 가냐, 못 가냐가 인생의 큰 결정인 줄 알았다. 지금에선 아무 일도 아닌 듯하다. 각자 때에 따른 거대한 고민은 무엇이든 늘 있나 보다. 카푸치노 위로 만약 여기서 산다면 부산에서 뭘 하나. 여기 젊은이들도 일자리 찾아 부산을 떠난다는 데 다시 이곳에 와서 뭘 할까.
온천천에 수십 년 된 듯 한 벚꽃 나무는 누가 언제 심었을까?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까 상념은 종횡무진으로 퍼진다. 벚꽃 핀 온천천 주변의 카페, 고향집 앞이 이렇게 근사하게 변했다니. 일본인은 때에 맞춰 떨어지는 벚꽃, 사쿠라가 최고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데 이맘때 온천천은 일본 최고미를 만끽하게 한다.
온천천은 폭 20미터의 천을 사이로 한쪽은 부산시 동래구가, 나머지 다른 쪽은 부산시 연제구가 관리한다. 강길 주변을 공원으로 만든 건 연제구가 먼저 시작했는데, 나중에 동래구도 마주 보며 관리하기 시작해, 서로 경쟁적으로 조경을 조성하다가, 온천천 주변 전체가 훌륭한 공원으로 변했다. 공원에 사람이 모이니까, 카페 한두 개 생기다가 카페거리까지 번영한 것이다. 내 생각으론 조경은 동래구가 잘 꾸민 것 같고, 연제구는 가시적인 것보다 진짜 필요한 시설에 집중해서 설치한 것 같다. 지자체 기초 행정 구역이 이렇게 서로 경쟁하다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늦은 밤 어머니는 안방에 편한 침대를 놔두고 거실에 딱딱한 소파에서 졸고 계신다. 내 방 열어 놓은 문을 넘어 이력서 쓰느라 타닥타닥 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거실의 어머니 귀에 까지 때린다. 어머닌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있냐며 잠결에 잔소리를 하신다. 어머니, 컴퓨터로 놀고 있는 게 아니라 다시 취직하려고 발버둥 치는 소립니다. 어머니, 아들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하잖아요. 꼭, 다시 출근하고 말겠다고 타닥타닥 타타타닥 키보드로 목청껏 외친다. 거실을 가득 채운 키보드 소리에 어머니는 결국 안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