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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May 21. 2019

사색59. 대표기도

4월 20일(일)

실직, 

세월호,

부활절,

세 가지 이슈가 맞물린 주일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한다. 티셔츠, 청바지 말고, 정장을 입고 나선다. 교회 가는 길이 화창하다. 관악산 입구,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세월호, 전국적인 슬픔, 타인의 비극을 위로한다면서 그걸 자기 생활에서 삼갈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붐비는 등산객들 사이를 걸으며 타인의 자식을 잃어버리는 사고에 대한 공감은 피상적일 뿐, 4월 좋은 날씨 주말 등산 스케줄을 잠시 미룰 수 없다. 뉴스 화면에 비친 꼬꾸라진 배를 본 순간, 그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등산 길가 막걸리 집은 붐빈다. 좋은 날씨를 즐기겠다는 사람을 탓하기만 하기엔, 아니 탓할 수 있지 않겠나. 다만, 방송이나 언론에서 세월호 사태가 국민 모두의 아픔이라고 함부로 포괄하는 표현은 줄여야 한다. 남의 비극은 절대 남의 일이다.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안위하기도 하는 우리는 남들이다. 나도, 남들과 다를 바 없다.     


오랜만에 가는 교회, 여러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부산에 있는 동안 잘 지냈니?라는 인사가 왔다 갔다 한다. ‘잘 지냈나?’고, 잘 지낼 수 없지, 실직당했는데, 안부인사가 번거롭더라도 피할 수 만 없다. 인사하는 이가 악의를 가지고 안부를 묻진 않으니, 악의만 없다면 괜찮은 걸까.      


부활절 주일 예배가 시작한다. 찬양 인도자의 선곡 중 가사가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가사에서 마음속 괴물이 철컹철컹 내 마음의 창살을 부순다. 진도 바다 저 배 안에서 꺼져가는, 그 아이들의 불을 끈 건 누군가.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인가? 부실한 해운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사주인가? 파멸하는 사탄인가, 벌하는 하나님인가? 조류를 무시하고 속도만 강조하는 기성 한국 사회 문화 인가? 찬양 가사가 입술에서 나오지 않고 굳어져버린다. 정신마저 혼란스럽다. 어찌 선곡을 이렇게 했을까. 찬양 인도자의 선곡은 신앙의 확신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개인의 확신에 나 같이 신앙이 약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말 텐가. 안 그래도 조금 있다 나가서 이 어려운 분위기에서 대표기도를 해야 하는데 심란함을 가중시킨다. 나중에 예배 마치고 찬양 인도한 녀석에게 주먹을 한방 먹일 테다. 부활절이라는 데, 아이들은 바다에서 다 죽었다. 어제 준비한 기도문 중 세월호 부분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거워서 도저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기도 소재가 아니다.      


대표기도 순서가 온다. 앞으로 나가 어젯밤에 준비한 기도문을 차분히 읽는다.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문단은 아까 마음먹은 대로 넘어가련다. 넘어가려다가 울컥하는 뭔가가 가슴속에서 요동친다. 요동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인상을 찌푸리며, 세월호 부분 기도문을 읽고 만다. 건너뛰려 했는데, 오늘 모두가 세월호, 비극적인 소재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알 수 없는 끌림이 입으로 읽게 한다. 한 단어, 한 단어 읽을 때마다 목소리가 울컥거린다. 세월호, 이 사건을 기독교적 틀로 함부로 해석하고 떠드는 거 정말 싫지만, 나도 오늘 함부로 말한 건지, 넘어갈 걸 괜히 떠든 건지 모르겠다.      


부활,

기독교인이 놀라운 건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2000년 전에 한 사람이 그렇게 부활했다는 걸 믿는 것이다. 신의 아들 예수가, 그것도 우리를 위해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 그 부활 덕분에 나도 신앙을 가지면 죽고 다시 산다는 믿음. 다시 산다는 건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요즘 생각하면 생명이 죽고 산다는 생명 살리기, 구국기도회 같이 스케일보다 일단 오늘 내 생활의 부활, 실직자인 내 하루가 우울함, 불안으로 죽지 않고 활기차게, 규칙적으로 살아내는 부활, 하루를 잘 보내는 기쁨 수준의 부활로 믿고 싶다. 신앙이라는 게 스케일이 큰 것만이 부활 신앙이 아닌, 오늘 하루, 나 같은 실직자의 하루가 즐겁고, 휴식을 즐기고, 잠깐 멈춰 내 삶을 점검하는 하루 단위의 부활을 실천하려 한다.      


예배를 마치고 세월호 사건을 놓고, 목사님과 생각을 나눈다. 꽤 절친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어중간한 관계에선 헤비 한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개인 의견이 상처, 편견으로 인해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목사님은 정부의 고위 공무원의 무책임한 리더십에 분노한다. 미국 교포 출신인 그는 2001년 9.11. 때 뉴욕주정부가 비행기에 맞아 불난 WTC 빌딩에 300명의 소방관을 투입시켰다고, 빌딩이 붕괴되면서 결국 소방관도 많이 죽었지만, 구조대를 투입시켜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를 줄이려는 제2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관리한 정부 리더들은 그런 희생을 피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제2의 희생을 남일 같이 서늘하게 이야기 하지만 구조대가 죽는 걸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도 해역인 사고 지역이 거센 조류로 구조가 어렵더라고 그렇게 어려운 곳에 공무원이 들어가, 정부는 희생을 치러서라도 국민을 구해준다, 설령 또 구조대의 목숨을 잃더라고 그렇게 어려운 일을 정부가 한다는 것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런가, 어려운 일이라 구조는 실패하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공무원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가 생각난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근사한 미국식 대응법이다. 그러고 보면 전쟁 때 미사일 버튼을 눌러야 하는 총괄 책임자의 고뇌를 감당할 고위 공무원이 있을까. 우리 정부에는 버튼을 누르는 사람, 고뇌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 제발 있기를 바란다.      


집에 가는 길, 아까 목사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조대가 죽을 수 있지만 그걸 들어가라고 신속한 명령 내릴 리더가 없었다(책임지려는). 예를 들어 구조원이 30명 가까이 죽어도 한두 명 구조할 수 있었다면 진도 해역이 그 정도로 구조가 어려운 곳이었다고, 정부는 국민 구조에 공무원의 생명을 잃어가며 최선을 다했다는 공감을 얻을 텐데. 이런 사건이 실제로 무능한 대통령, 안전부처 장관에게 무슨 큰 영향이 있을까, 그냥 그대로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한국 정부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꼴이 됐다. 문재인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 한 가지였을 것이다. 한국 정부 자체의 무능함이다. 박근혜 대통령, 그녀를 탓할 수 없다.   

   

선진 한국이라 하지만 재래시장 깊이 들어가 보면 과연 이게 GDP 2만 불이라는 우리나란가, 영세한 시장 상인들 모습에 곧 3만 불, 4만 불 시대라는 건 헛소리 같았다. 최고소득층의 소득이 올라서 평균이 올라가는 건, 저소득층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오히려 격차만 늘어나는 허탈감만 줄 뿐이지. 3만 불, 4만 불 보다 그냥 분포가 좁은 2만 불이 훨씬 선진국 아닌가.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르는 평균, 이게 사회주의 스타일인가.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상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착각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긴데.      


밤공기를 마시며 달린다. 여덟 바퀴, 5km를 40분에 뛰다 걷다 반복한다. 운동장 바닥에 8개 트랙이 표시돼 있어 1번부터 8번까지 한 바퀴 한 바퀴 목표를 두고 달린다. 세 바퀴 3번 트랙쯤 되면 숨이 차서 그만둘까 하다가 4번 트랙을 지나면 이제 지금까지 달린 네 바퀴만큼 한 번 더 달리면 목표를 이룬다고 새로 마음을 다독여, 6번 트랙을 지나면 이제는 두 바퀴밖에 안 남았다고 고비고비마다 목표를 새로이 설정해 목표한 여덟 바퀴를 마칠 수 있다. 인생이 이런 건가. 매 고비마다 새로운 태도를 가지면, 결국 끝을 만날까? 무엇보다 끝까지 계속 달리는 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트랙 달리기는 저기 끝이 보이니 목표 세팅이 가능하지만, 실직은 끝이 보이지 않으니, 계속 달릴 수, 힘들어도 계속 달려야 할 이유가, 달려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으로는 어떤 터널이든 끝은 있게 마련인 걸 알고 있다. 다만 이즈음이면 끝일 것 같은데 하는 내 생각과 그렇지 않고 터널이 훨씬 남은 현실과의 간극을 잘 견디는 게, 기다리는 게, 인내하는 게 현명한 태도이다. 인내하는 태도, 말은 쉽다. 내일은 실업급여를 처리해야겠다. 그게 생각보다 까다롭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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