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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May 23. 2019

사색60. 실업급여 받으러

4월 21일(월)

오전 11시 너머 일어난다. 10시 전에 일어나면 좋으련만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아침을 차려주는 것도 아니니, 일찍 일어날 이유 없다. 늦잠 자는 걸 마냥 나쁘다고만 하긴 어렵다.       


건강보험이 실직 후 지역 가입자로 변경됐다는 통지서가 왔다. 90일 안에 가족 중 직장이 있는 사람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면, 굳이 지역 건강보험료를 낼 필요 없다. 한 명의 직장인이 한 가정의 건강보험을, 책임질 수 있다. 공무원인 동생에게 전화한다. 나를 네 피부양자로 넣어달라고, 동생은 흔쾌한 목소리로 가족증명서를 팩스로 보내고, 간단한 서류만 처리하면 된단다. 이런 부탁이 민망하지만 그런 거 따질 만큼 소원하지 않아 자연스럽기도 하다. 동생은 예전에 아버지 생전에 자기 아내 자식 가족 모두 자기 직장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된 적 있다고,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단다. 여러 직업이 있지만 공무원을 선택한 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렇다. 동생은 부모님의 자식 계획 중 안정적인 인적 투자인 게다. 나는 투기성. 부모님께서 자식 분산 투자를 잘하셨네. 언젠가는 내가 대박 수익을 내야 할 텐데 정작 이런 투자를 기획하신 아버지는 내가 직장 생활 시작하기 직전에 돌아가셔서 투자 회수, 용돈 한번 받아보지 못하셨다. 내가 주는 돈을 받을 사람도 아니었겠지만 용돈 한번 못 드려본마음 아픈 일이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직접 고용센터로 가서 수급신청을 해야 한다. 이미 실업인정 처리는 됐다. 그건 회사와 노동부 사이의 일이고, 드디어 프랑스 영화 같은 장면이 남아 있다. 젊고 사지 멀쩡한 청년이 실직했다는 이유로 돈 받으러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영등포 남부고용센터로 갔는데 한산하다. 접수하는 사람은 드문데, 처리하는 공무원들은 한 층 전부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3층에 18번 접수대 여성분과 상담한다. 내 신분증을 보고, 자판을 두드리고, 신분증을 보고, 자기 앞의 모니터를 보고, 내 얼굴을 보고, 모니터를 보고, 공항 출입국관리소 마냥 사람을 쳐다본다. 가까운 관악센터로 가셔도 되는데 왜 이리로 왔냐며 예상 못한 질문을 한다. 실업급여 수급대상자라는 이메일 통보에서 이리로 가라고 해서 왔다니, 누가 그랬냐고 다시 묻는다. 노동부, 당신네들이 보낸 이메일이라고 대답한다. 그건 사업지 주소 관할이라서 그렇게 됐을 거고, 거주지에 가까운 관악센터로 가란다.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여기서 할 수 없냐니, 앞으로 몇 번 더 와야 할 텐데 계속 이리로 올 거냐고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게 어떠냐 하기에, 거기나 여기나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저 곧 취직할 것이니 다시 여기 올 일도 없을 거예요”라고는 말 못 했다.     


실업급여가 사실 공돈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낸 실업 보험료에 따른 보험금을 타는 거니 공돈 받는 마냥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당당해야 할 일이다. 당당한 내 태도에 접수처 여성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좀 전까지 공돈 받는 게 마냥 부끄러웠는데, 이건 보험료에 따른 보험금을 타는 거라는 자신감을 가져 의기양양하다. 접수처 여성은 양양한 내 의기 따위야 관심도 없이 키보드를 타탁 치고 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직 이유에 '그만두라고 해서(권고사직?)' 라고 적는다. 급여 수급의 적법한 실업 이유는 권고사직이다. 권고사직, 요즘 같은 시대에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사람도 있나? 마지막으로 1층으로 내려가서 서류를 받으면 된단다. 시키는 대로 하니 5월 12일에 교육이 있단다. 그 교육을 받으면 실업급여가 지급된단다. 창구 직원에게 만약 당일에 오지 못하면 어쩌나 다른 날은 없나니 첫 교육은 미룰 수 없단다.      

민원인을 만나는 일선 민원 담당 공무원들은 되도록 ‘친절’하려 한다. 그런데 사실 친절할 필요 없다. 민원인이 두 번 할 일을 한 번으로 해주면, 발품을 덜 팔게 해 주면 불친절해도 된다. 목적과 달리 의미 없는 친절은 공허하다. 공무원의 역량은 친절한 것보다 민원인이 할 일을 한 번만이라도 줄여주는 게 진짜 대민 역량이다. 그런 걸 할 수 없으니 가짜 변수인 친절을 따진다. 공무원들 감정노동 안 해도 된다. 진짜 노동을 기대한다. 귀찮은 일 한두 번 줄여주면 드라이해도, 친절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런데 법원은, 법원 공무원은 좀 다르다. 판사, 검사가 위압적인 태도로 사건 관련 담당자들에게 대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칼 들고 있으니까. 사건이란 게 위압적으로 해야 일이 풀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법원 공무원, 법원 사무관, 등기관, 서류 접수처, 민원실, 이런 놈들까지 위압적으로 간단하게 용건만 짧게 말하라니, 설명 듣다가 짜증내고, 준비서류 다해왔는데 뭐 하나 빠졌다고 다시 오라고 하고, 나도 짜증 나서 획 돌아서면 접수대에선 서류도 못해왔으면서 하고 책상에 볼펜 집어던지고. 접수하는 사람들이 접수받는 공무원들 무서워서 벌벌 기겠나. 혹시 정말 만에 하나 니들 기분이 판결에 영향이 갈까 봐 굽실거리는 건데, 법원이란 데가 아무리 친근, 친밀한다고 하더라도 사건 당사자는 얼마나 가기 싫은 곳인데. 법원 공무원 만날 때마다 대통령 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래서 평검사와의 대화가 아니라 법원 공무원과의 대화를 열어서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하면서 서류 집어던지고, 촛대 까고 싶다.      


이 젊은 나이에 실업급여라, 살다가 이런 일도 다 있네 우울한 마음과 한편으로는 공돈인데 감사해야지, 아니 공돈은 아니다. 또, 첫 교육이 5월 12일이니 그날 오기 전에 얼른 새 직장을 찾자는 결의도 생긴다. 쨍쨍한 날씨를 뒤로 하고 무슨 근대화 시대 대한제국 같은 양식의 영등포세무서 건물을 구경한다. 거리를 따라 즐비한 영세한 카센터들을 지나, 지하철을 타고 다시 해동 도서관으로 간다. 중간고사 기간인가, 학생들이 많다. 나 같은 백수가 괜히 한자리를 차지해 이 탁한 공기를 더 덥히는 게 미안하다. 뭐, 겨우 한자린데 하며 프리라이더의 담대함으로 책을 펼친다. 경제학자 캐플란이 쓴 <합리적 투표자에 대한 미신>을 읽는다. 투표자의 비합리적, 거기에 좌지우지되는 여러 공공선택론적, 비사회적 후생을 설명한다. 번역서인데 두세 번을 곱씹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번역체다. 소개하려는 이론보다 뭘 소개하려고 한지 번역 자체가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소재인데 번역이 후지다. 그러고 보니 책 한 권을 5명이 공동으로 번역했다. 챕터 간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원서를 보고 싶은 만용이 생기게 할 정도다.     


내일은 A사, B사 경력직 채용에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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