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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n 03. 2019

사색63. 노는 시간도 관리해야

4월 24일(목)

오늘 바람 쐬러 외출을 계획했다. 실직자는 무료한 하루를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우울한 생각에 빠져 침대에 누워 보내기 십상이다. 목요일, 일주일의 중반이 지났다. 익숙한 장소,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 방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는 게 정신적으로 좋다. 알면서도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실행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무료함, 무료라는 것 빼고 좋을 게 없다. 출근할 때 자석 같은 극이 만나던 것 같이 일어나 지던 침대에서, 실직하고는 같은 극이 붙은 것 마냥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렵다. 어쨌든 침대를 빠져나오는 한 걸음을 시작한다.       


미술관에 갈까 했는데 사치스러운 느낌이다. 입장료 내면서 그림을 본다는 건, 물론 소득이 있다면 그런 지출을 ‘교양’이라 하겠지만, 실직자에겐 ‘사치’라 불리기 십상이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중 액체 문명 미술전>*을 하고 있다. 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아파트 인생>이라는 기획 프로젝트가 열린다. 구미가 당기는 전시니, 가야겠다. 무엇보다 무료다. 실직자의 무료함을 이기는 건 무료뿐이다. 아니, 너무 답답해서 외출을 계획한 어제 다짐을 이행해야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중국의 장 샤오타오(Zhang-xiaotao) 예술가의 작품 중 '석가 No.3'이 눈에 띈다. 심장을 그림인지, 사진인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표현해 놨다. 


출처 :  https://www.artsy.net/article/chinesepavilion-about-the-artist-zhang-xiaotao

기복 신앙이라고 한다. 신앙에 자신의 복을 담보로 하는 걸 저평가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신앙은 기분에 따라 믿음, 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기분 신앙이다. 기복 신앙이 기분 신앙보다 낫다. 기복에 대한 믿음은 확신이라도 있다. 존 파이퍼 목사의 책 <인내> 도입부에서 "심장스러운 신앙인"을 은유해 놨다. ‘아드레날린 그리스도인’이 아닌 ‘심장 그리스도인’이 돼라.... 아드레날린은 예배가 있는 일요일에는 흥분시키지만, 월요일만 되면 가라앉게... 심장은 그렇지 않다. 심장은 쉬지 않는다. 요란스럽지도 않다. 기분 좋은 날이건 그렇지 않은 날이건 변함이 없다. 행복한 날이건 슬픈 날이 건 한결같다. 감사한 날이건 그렇지 않은 날이건 요동하지 않는다. 심장은 결코 이렇게 말하는 법이 없다. ‘하루 쉬겠습니다’ 겸손히 제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아드레날린과 달리 심장은 끝까지 간다. ... 심장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 섬김의 분명한 이유를 담고 있다. ... 문제들은 넘치는 에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참고 견디는 사람에 의해 해결된다. 스프린터가 아니라 마라토너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고 서술한다. 존 파이퍼가 말하는 심장은 꾸준함과 일정함이다.      

장 샤오타오가 말하는 작품 석가로 말하는 심장은 불교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 같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불도에 문외한 게 작품 해석에 어려움을 준다. ‘석가’라는 제목으로 유추할 뿐이다. 기독교에서 ‘심장스러운 신앙인’, 석가라는 작품에서도 심장으로 불도의 메시지, 이 땅의 종교는 다 심장으로 통하나 보다. 꾸준함, 성실함이라.      

시립미술관에서 역사박물관으로 옮겨간다. 그 사이 이문세 노래에 나오는 정동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근대 때 만들어진 창덕여중(1940년대), 이화여고(1880년대)에서 현대의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온다. 서로의 스마트폰을 보고 깔깔, 무엇이 저리 즐거울 수 있을까. 저 젊음이 찬란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동시에, 저 또래 아이들이 세월호에 갇혀 깊은 바닷속에서 죽었다는 게, 깔깔 거리며 서로 넘겨보는 스마트폰으로 엄마 아빠 나 죽는다, 사랑한다, 무서워하며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가슴을 팍팍 지른다. 저렇게 아름다웠을 애들이.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아파트’를 주제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에 대한 전시회가 있다. 아파트라는 게 거주 공간뿐만 아니라 자산 형성 수단, 우리 아버지 세대의 유일한 투자처 같이 관심이 많아 들른다. 더욱이 무료 아닌가. 전시회에서는 당시 정부가 아파트라는 주거 정책을 도입한 이유, 특성, 변화, 자산형성 수단 등 설명했고, 전시 구성을 예전 한 가정의 아파트 살림살이를 미시사적으로 잘해놓았다. 1970년대 강남 서초삼호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은 인상적이다. 지금 생각하면 다세대주택 수준인데 이게 당시는 부잣집으로, 계급 상승의 상징이었단다. 전시회에서는 재산형성 수단이라는 욕망으로 접근하는 뉘앙스가 강한데, 전시회를 준비한 총괄자의 생각이 그런지, 그걸 비꼬는 경향이 있다. 강남 등 아파트 재산 증식 신화에 대해 저평가하고 있지만, 전시회를 나오며 방명록에는 “그래도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지요”라고 적었다.      


정동길 끝 경향신문사 앞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저녁 6시 즈음, 수트를 입은 직장인들의 퇴근길이 햄버거 집 유리창 밖으로 보인다. 나는 저 군집에 있지 못하고 여기서 햄버거를 씹으며 관조한다. 저들은 햄버거 집 안의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정신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저 집단 속으로 들어가야 안정될 것 같은 역설. 잠겨버린 세월호에서 시신을 수습한 몇몇 애들 중 남자애와 여자애가 서로의 구명복을 묶은 채로 발견됐단다. 생사의 긴박한 순간에선 더 뚜렷이 나타나는 집단이 되고 싶은 인간 마음, 실직의 불안한 마음도 역시 길게 보면 생사의 기로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집단 속으로 들어가려는 마음. 나와 구명복을 묶을 곳은 어디 있나. 실직은 철저하게 혼자, 개인의 일인가.       


모처럼 해질 때까지 걸어본다. 서울역까지 가서 다리가 아파 버스를 탄다. 퇴근길 만원 버스 속에 서서 창밖으로 한강대교 위에서 해지는 노을을 감상한다. 예전 출퇴근할 때 타던 501번 버스를 타고 있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여의도, 공평동, 평창동 ...  501번 버스에 얽힌 출근길 이야기가 많다. 내 인생사가 담긴 노선이다. 대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낸 통화 말미에 “혹시 나쁜 생각하지 말고 잘 지내라”라고 하더라. 나쁜 생각이라. 실직자가 할 수 있는 나쁜 생각은 무엇이고, 실직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나쁜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생각을 실천할까. 이제 슬슬 나쁜 생각을 시작해야 할 타이밍인가.

      

집에 도착해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J회사에서 경력직 재공고가 났다. 1차 공고 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나? 특정 사안에 대해 기획안을 첨부하라는 데 그 사안에 대해서는 경력이 없는데, 사실 이게 그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본 다기 보다 어중이떠중이 다 지원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한 일종의 필터 기능일 텐데, 사실 내 경력은 그쪽과 크게 연관은 없는 데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서 한번 써볼까. 내일 시도해봐야겠다. 


*주석: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공동주최로 중국 북경 송주앙예술구의 송주앙미술관, 798예술구의 화이트박스미술관과 협력하여 한중현대미술전 <액체문명>전을 개최한다. SeMA는 아시안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일환인 이번 국제교류전을 통해, 동북아시아 뮤지엄 및 작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아시아 전통과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문화적 기반과 창조적 역량을 키워나가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액체문명 Liquid Times”은 서구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현대사회를 규정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인 “액체”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한 국가나 도덕 체제 내에 갇혀 있지 않고, 개인의 삶의 안위만을 생각하지 않는 초국가적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가 정보화, 글로벌화되면서 정치, 경제는 물론 도덕까지 전세계적으로 상호 영향을 미치는 ‘유동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기준, 규범에 따라 삶을 살아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게 되었다. <액체문명>전에 참여하는 한중 12인의 현대작가들은 유동하는 현대사회에 반응하는 다양한 예술가적 태도를 보인다. 쉬용과 미아오시아오춘, 신형섭과 한경우가 탈중심화 된 현대사회와 그 속에서 흔들리는 개별주체를 설치와 사진, 영상을 통해 선보인다면, 왕칭송과 장시아오타오, 한진수와 이창원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 타인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 세계 각국의 폭력사태, 아시아의 서구 중심적 사고 등에 대한 예술가적 시각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송동과 리웨이, 이용백과 이원호는 현대사회에 적극적으로 주체가 개입하면서 살기를 요청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지구화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시아권 국가인 한국과 중국에 속한 작가들이 보여주는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태도와 반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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