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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Jun 11. 2019

사색64. 달인과 노예

4월 25일(금)

역시 오전을 잠으로 채운다. 실직이라는 고민으로 불면증이 생길 법한데도 이렇게 잠을 잘 수 있다니 감사하다. 오전 시간을 몽땅 버리는 건 아깝다. 맥이 빠져서 그런지 미뤄뒀던 드럼, 통기타 취미를 집중적으로 해보려는 것보다 침대에 누워 있으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 출근 말고 오전에 기상할 장치가 과연 있으려나.      


해고당하고 며칠 만에 면접이 잡혀 면접을 봤다. 이후 몇 번 더 면접을 봤다. 면접 볼 때는 실직 후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 싶었다. 막상 사장 면접까지 보고도 채용은 결정되지 못했다. 오히려 면접 본 게 더 스트레스받고, 짜증 난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희망고문이라고. 반면 실직 초기에 몇 번 면접이라도 보지 않았다면 내가 직종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구나 하며 자멸했을 수도 있다. 포기했다면, 지금까지 계속 지원서를 작성할 의지도 없을 텐데.     


저녁 먹고 나니 친구 김성한이 공부한답시고 가까이 학교 도서관에 와있다고 전화가 온다. 너도 도서관에 있니? 같이 산책을 하자. 월화수목금 일주일의 5일을 일했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선선한 봄날 저녁, 환상적인 밤공기, 교정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직장, 여자, 자동차, 결혼, 일, 회사 사람들 이야기를 나눈다. 내 실직 생활의 비참한 이야기로 대화의 끝을 장식하려 했는데, 성한 은 최근에 만나던 여자 친구와 헤어질 것 같다고 자신의 비참함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여자랑 헤어진다는데,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나는 지금 실직자로 꼬여있는데, 너도 좀 꼬이네. 우리 같이 꼬여버리자 며 집단적으로 꼬이면 그나마 좋겠구나.     


친구의 결혼을 대하는 게 전적인 축하로만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우리 대학가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 하던 불투명하지만 낭만스런 다짐을 다시 하는 듯하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이제는 낭만스럽기만 한 그 약속을 반복한다는 게 여간 씁썹한 일이 아니다.      


"성한아, 너 결혼하려는 게 잘 안 되겠다 하는데 너까지 장가갔다면 난 지금 아마 너무 우울했을 거야. 성한아, 너도 잘 안 되는 게 참 다행이다"

성한에게 속마음을 말한다.      

"이 미친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성한은 황비홍 같이 풀쩍 날라 내 등을 주먹으로 찍는다. 눈물이 핑 돈다. 등이 너무 아파 벽에 대고 문지른다. 맞은편 건물 거울에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 처지가 사뭇 우습기도 유쾌하기도 하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아니 실직이 사람을 이렇게 이기적으로 만드는가. 아니, 이건 이기적인 것도 아닌 유치한 수준이다. 불행도 나눠가지자. 이건 행복한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의 입장이다. 종말론이던가? 행복한 사람에겐 종말의 필요성을 찾을 수 없다. 불행한 단 한 사람에게서 만인을 불행하게 할 종말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집 근처 통닭집에서 치킨을 먹는다. 산책 후 치킨, 환상적이다. 가게 홀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에서 SBS 달인이 방영하고 있다. 이번 달인은 설악산의 중턱에 있는 가게에 단돈 1, 2만 원으로 50kg짜리 쌀, 물 등 엄청 무거운 식재료를, 심지어 냉장고까지 등에 지고 배달하는 아저씨다. 저건 달인이 아니라 노예다. 달인이라고 방송할 게 아니라 인권위원회 신고할 일이다. 저분이 저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사정엔 영세한 소득에 있지 않나. 아무리 선의로 저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킬 일이 있고, 시키지 않아야 할 일이 있지.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자는 저분에게 산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알선해줘야 하지 않나. 저분이 원한다고 저분의 착취적 노동공급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산 중턱에 위치한 가게들은, 1,2만 원 싼 맛에 저 사람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적정한 가격으로 20, 30만 원 일당을 부른다면 저 양반을 달인이라는 기획으로 방송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화나는 건 저런 일을 하는 게 영세한 환경(단돈 1만 원이라도 필요해서 일하는 구조적 경제 유인)에 비롯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달인이라 방송하는 방송사의 인간 소재화에 있다. 통닭 먹다가 괜히 짜증 난다. 요즘 세월호 때문에 방송에서 일부러 저런 성인, 인간미를 강조하는 테마가 유행하나 보다.      


내일 아침엔 관악산 등산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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