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는 사람은 현재를 어떻게 살지
조금이라도 현재를 살려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거나 신호등의 초록불이 몇 초 남지 않아도 뛰지 않는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달리기라는 신앙을 가진 것처럼 다들 찬양을 한다. 교회 옆에 10년을 살다가 마지못해 성탄절에 이끌려 나온 것처럼 며칠 전부터 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10번 정도 달렸는데 믿음이 부족한 모양인지 아직 신도가 되지 못했다. 특히 달리기를 시작하는 첫 일분 동안 갖은 회의감을 느낀다. 우리 조상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채집과 수렵에 대한 부담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왜 나는 일부러 배를 꺼지게 하고 있지, 생존을 위해 뛰는 고라니가 보면 비웃을 일 아닌가. 10분쯤 뛰다 보면 온몸의 맥박이 튀나 올 것 같으면서 인류문명에 대한 고찰이나 전지적 고라니 시점 따위는 사라진다. 이게 신앙심인가. 업무로 오는 스트레스도 달리기로 풀기 시작했다. 마음이 힘들면 몸을 괴롭히면 되는구나. 회의가 끝나기 5분 전에 생각한다. 이 정도면 오늘 5km는 뛰어야겠는데?
재즈 공연을 볼 때 음악보다 연주하는 뮤지션의 표정을 보러 간다. 공연을 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표정은 내가 살면서 목격한 현재를 가장 온전하게 사는 표정이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인 이유도 영화의 메시지와 음악의 장르가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에서 마스크가 축축해질 때까지 울면서, '그래 나도 매 순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 내 직업을 떠올리고 차분해졌다. 학업은 늘 거시적이고 비평적인 시각을 요구했다. 나는 회덮밥을 먹으면서 이토록 인간의 노동력이 적게 들어간 레시피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에 비싼 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탓이라고, '걷고 싶은 거리'를 걸으면서 교통수단이 다리인 프롤레타리아를 조롱하는 마케팅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박사는 학위를 지칭하는 것 외에도 똑똑하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수식어로 쓰이는데, 막상 박사과정을 밟게 되니 전에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 모르겠고 다시 배워야 한다. 대학원 수업을 듣거나 교수와 회의를 할 때, 협업하는 단체와 미팅을 가질 때 '여기서 내가 제일 멍청하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고로 배울 점이 제일 많아서 좋다. 다만 내일도 학자 신분을 유지할 만큼의 증명은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다. 학부 때는 예술을 전공했었는데 목공소에서 작업을 하다가 교수를 마주쳤다. 할 말이 없어서 작업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봤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고 양봉업자를 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학부 때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재미 지상주의를 추구하며 살아온 나는 일찍이 한 가지에 두각을 나타내서 꾸준히 하는 이들이 신기했다. 내 주변에 아는 과학자 부부가 있다. 이름난 대학교에서 학부와 박사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각자의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쌓은 그들을 보고 은연중에 타고난 엘리트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지나가듯이 연구는 잘되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무심코 내가 평생을 안고 갈 마음가짐을 흘렸다. "응. 어제보다는 나은 정도?"
부부 중 한 분은 서른 살에 교수가 됐고, 무슨 대회에 수상을 해서 수능을 안 보고 대학에 갔고, 나무 위키를 성경처럼 외운다. 그는 보기 드물게 해맑은 사람인데, 누가 시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북한 뉴스의 아나운서를 흉내 내거나 아이돌 가수 춤을 춘다. 한 치의 자의식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부러웠고, 천재성이 지켜준 순수함이 아닐까 짐작했다. 알고 보니 그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열등감이 있었고, 서서 실험하는 게 힘들고 수학이 어려워서 지금의 분야로 전공을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 돼요." 그가 말했다.
아마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연주를 하는 매 순간 아티스트들이 충만한 현재를 사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연주하는 사람들이 공연 중에 청자와 떨림을 공유하는 순간과 그 근사한 모습이 부러웠다. 공부를 할 때도 간간히 오르가즘은 온다.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현상을 관통하는 문장을 발견할 때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책상을 치며 욕을 한다. 다행히도 그럴 때 늘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