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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an 23. 2023

행복한 죽음

공상과학


1999년 12월 나의 생활은 그날 이후로 모두 달라졌다.


여느날과 다름 없이 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싱크대 한켠에 놓인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오늘 저녁의 근사함을 더해주는 재즈음악이 흘러 나오고, 끓고 있는 냄비는 심벌과 같은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밥이 다 되어 '삐'하는 소리와 함께 굉음의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날카로운 고주파음에 의해 나의 뇌가 스치듯 베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쓰러져 기억이 없다.


여전히 재즈음악에 맞춰 심벌음이 박자를 맞추고 있으며,  창가의 커튼 사이로 저녁 햇살이 길게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다. 평온한 분위기 그래도 였다. 모든게 다시 그대로 흘러간다.



'선생님 제 아내가 눈을 떴어요!'


그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후 처음 들은 소리였다. 남편으로 보이는 그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웃고 있었다. 난 눈부신 태양을 뒤로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났는지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땐 다시 어두운 밤이 되어있었다. 고개를 둘러 보았다.

남편은 나의 왼켠 쇼파에 작은 담요를 안고 누워 잠이 들어 있었으며, 그 뒤 창가엔 비가 오는지 빗물이 맺혀 있었다.  밖의 불빛이 그 물방울에 비쳐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실내는 따뜻한 백열 조명과 나의 오른쪽 혈관동맥에 떨어지는 이름 모를 수액이 미묘한 박자감을 가지고 떨어지고 있었다. 쓰러지기 전의 듣던 재즈음악과 같은 그런 느낌의 분위기였다. 가끔 뒤척이는 남편의 옷 바스락 소리도 하나의 음악이 되어 주었다.

그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의사선생님께서 남편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아내분의 뇌혈관에 작은 종양 같은 것이 생겨 혈관을 막았다는 것과 그리고 그 종양이 원인 모를 병이며 그로인해 뇌에 어떠한 자극도 주어서는 안된다. 즉 슬픔으로 인한 눈물, 기쁨으로 인한 웃음등 감정 표현이 되면 갑작스런 혈류의 이동으로 어찌 될 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난 그럼 아무 감정없는 로봇과 같은 행세를 해야 하는건가? 이런 기묘한 상황이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의 행동에 규칙이 있다는것은 알게되었다. 그로부터 한달뒤 남편과 난 그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의 귀환을 환영하는 남편의 행동에는 뭔가 어색한 면들이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듯한 표정과 행동들이 많이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일거란 생각에 이내 미안한 마음으로 변하였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났다.


오늘도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음악을 틀고 약간의 흥을 느끼며 야채들을 탈수하고 빵을 가르며 흥얼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일년간 어떤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예전처럼 쓰러질 수 없었기에 처음엔 참으려 노력했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난 난 예전과 달라진 점은 얼굴의 표정이 사라졌다는 것과 그로인해 조금씩 생겨나던 나의 눈주름도 성장을 같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어둡고 깊은 물속으로 가라 앉는 듯한 이 공간의 무게를 느끼며 아침을 준비한다. 우리 부부는 식사를 하면서도 말이 없다. 어떤 말 하나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나올 수 있는 감정적 표현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될 수 있다는 긴장감으로 그럴 수 없었다.


'오늘 샌드위치 맛있네'


오랫만에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없는것 같다. 나도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출근을 하는 남편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애처롭다는 생각과 함께 슬픔이 밀려오는게 느껴졌다. 난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인형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듯 서둘러 설겆이를 시작했다.

지난 일년간 우리 부부의 모습은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점점 구덩이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밥과 남편이 좋아하는 배추국을 준비하고 얼마전 엄마가 보내준 김치와 나물들을 준비하였다. 따뜻한 밥과 국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이 무슨 향을 피운것과 같은 모습이다. 항상 식사하던 시간에서 삼십분이 지났다. 피어오르던 김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이 조금 밀려왔다. 왜냐하면 지난 사고 이후로 우리 부부는 항상 같은 시간에 아침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이런 빈자리가 더 낯설고 두려움마저 드는 것이다.


식탁위에 진동음과 함께 낯선 번호에서 전화가 오고 있다. 긴장한 나머지 오른손으로 받치고 폰을 귀에 댔다.

그리고 잠시 후 난 쓰러졌다. 감정의 변화로 인해 혈관이 막히면서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그녀의 주위로 식탁위의 물컵에서 흐르는 액체가 그녀의 뺨을 적시었다. 가늘고 긴 물줄기가 그녀의 얼굴을 타고 주방을 가득채우고 있다.


저녁 햇살도 더이상 그녀의 몸을 감싸지 못한다. 주방은 이내 어둠으로 가득하다.  

모든게 멈춰 봉인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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