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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un 03. 2023

계기

공상과학

오늘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왔다.

요 며칠간 회사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저녁으로 지하철에서 파는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하늘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은 반지하 원룸이다. 그래도 화장실, 주방, 거실, 침실이 심적으로 구분 되어 있어서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오늘도 위층에서 나는 소음으로 나의 이 피곤함이 더 증가되는 느낌이 싫다. 성격이 외향적이지도 않아 직접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그냥 이 작은 공간에서 홀로 불평하며 수많은 시나리오를 쓰고 결국엔 나 혼자 위안하며 지내고 있다. 이런 별거 아닌 방훼꾼에게도 내 감정이 유린되는 게 너무 싫었다.


위층엔 엄마와 아이 둘만 살고 있다. 아빠라고 보일 만한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위층이 이사 온 6개월 전 휴일 오전에도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계단에서 가끔 아이를 마주칠 때가 있다. 아이의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내 모습처럼 내향적인 아이인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 또한 밝은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투영되는 느낌도 받았다.


나 역시 홀어머니와 살아왔다.

어머니는 무엇이 불안한지 항상 다 큰 나를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그냥 길을 걸을 때도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도 그렇게 항상 손을 잡아 주셨다. 어릴 때는 좋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계속 손을 잡는 어머니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마 사춘기 시절이라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가끔 그 따뜻한 어머니의 손이 그리울 때가 많다.


다시 윗집 아이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런 내성적인 아이가 신기하게도 집에서 엄청 뛰어다니면서 하루 종일 나의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소음을 만들고 있다. 어딜 봐도 그럴 것 같지 않은 아이라서 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이 엄마가 만들어내는 소음인가 하는 생각도 들정도였다.


그날은 갑자기 팥빙수가 먹고 싶어 편의점에 들른 날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원플러스원이던 팥빙수가 정상가로 판매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사놓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팥빙수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 나 저 팥빙수 사주세요'

'안돼. 저건 너한테 양도 많고 넌 팥 안 먹잖아. 또 한 숟가락만 먹고 결국엔 엄마가 먹게 될 거 아냐'

'아니에요. 이번에 제가 다 먹을 거예요. 사주세요.'


그 아이와 엄마였다.

6개월 동안 인사도 한번 한적 없고 얼굴만 마주친 정도라 아는 척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바로 앞에서 아는 사람들이 내가 사려던 팥빙수를 사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더 나 또한 뭘 할지 몰라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었다.


'안녕하세요.'

아이 엄마가 못 들은 것 같았다. 아니 내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어 아마 들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좀 더 용기를 내었다.


'안녕. 꼬마야'

아이는 반응을 했다. 엄마를 쳐다보던 얼굴을 내게 돌려 당황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는 아저씨라 생각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아저씨 이 팥빙수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더라. 이거 나도 살려하는데, 너도 같이 먹을래'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내 머릿속 말과 내뱉는 말은 항상 다르다. '같이 먹을래'가 뭔지. 그냥 하나 더 사준다 했으면 좀 더 큰 사람처럼 보였을 텐데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웅'


아이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안 돼요.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나 아저씨 알아. 우리 아랫집에 살잖아.'


그 순간 아이 엄마와 난 둘 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마도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던 전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아이 엄마도 나도 뭔가 아는 척을 하기엔 좀 부끄러웠던 것 같다. 사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린 서로 그제야 인사를 했고, 아이 앞에서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친한 척을 했다.


아이는 역시나 팥빙수를 한 숟가락만 뜨고는 먹지 않는다 했다.

우리 셋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다음에 또 마주치면 왠지 가까운 사이처럼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아이는 내 생각처럼 내성적인 아이라고 아이 엄마가 말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불편하고 그냥 집에서는 반대로 뛰어논다며 그런 연유로 내가 힘들거라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덧 붙였다.


요 며칠 아이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소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그 둘 가족을 더 이상 경계할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 나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았다. 그냥 아인데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너그러움도 생기게 되었다.


내 모습이 아주 조금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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