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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Mar 29. 2023

기본 팔레트

공상과학

난 태어나면서 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사물이 뿌옇게 보여 형체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릴때 어머니가 남대문 안경상가에 데리고 가 맞는 안경을 골라주곤 했었다. 안경집 사장님들은 다들 어린아이가 이렇게 눈이 않좋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난 그들의 그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돋보기 안경을 끼어도 사람들의 표정을 알 수는 없는 정도였다. 그냥 형체가 조금은 잘 보이는 정도. 그정도였다. 그래서 혹여 내가 장님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생활을 했었다. 때로는 눈을 감아 일부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지금은 20대의 청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형체만 알 수 있을정도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장님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력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없어서 맹학교를 다녀 수업을 받았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나처럼 어느정도의 시력은 유지한 운이좋은(?) 친구들도 몇 있긴 했다.

그곳에서 내가 일반적인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기에 반대로 시력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많이 행동했었다. 그래서 나의 친한 친구들은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그들은 앞을 볼 수 없기에 나의 상태를 더욱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데 어떤 노하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난 그나마 색상은 구분 할 수 있는 정도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색으로 인식하고 했다. 좋은 느낌은 노랑, 차가운 느낌 회색, 정렬적인 느낌 빨강등 색상에 대한 인지로 세상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은 여러 색상으로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와 같았다. 내 앞의 친구는 회색, 뒤는 노랑, 옆은 빨강등등..

그런식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색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색들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추억하곤 했다. 나의 추억에 여러 색상 분류의 팔레트가 존재한다. 밝은 색위주의 팔레트, 어두운색 위주의 팔레트, 파스텔톤의 팔레트등 팔레트를 꺼내 추억하고 그 추억의 색상들로 아름 다움을 만들어 간다. 항상 처음의 환경에 들어가면 기본 팔레트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다 삭제되거나 추가되는 색상들을 조합하면 어떤 특정 색상의 주제를 갖게 된다. 그래서 난 그 환경 전체를 그 팔레트에 대입하게 된다.


어느날 지금의 대학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여학생을 만났다. 난 얼굴을 볼 수 없기에 그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을 보라색으로 정했다. 보라색은 알 수 없는 색이었다.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힘들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색상은 아니고 그렇다고 호감을 갖는 색상도 아니었기에 선택되어진 색깔이었다.


지팡이를 의지하고 길을 따라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수많은 색들이 내 눈앞을 수놓고 있다. 멀리서 회색이나 검정무리들이 보이면 그곳을 피해 다른 길로 가곤한다. 시력이 낮을 수록 촉이 높아 진다고나 할까. 사람의 표정이나 대화가 없더라도 그사람의 색상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초현실적인 능력이 갖게 되었다. 저멀리 보라색이 보인다. 순간 나의 가슴이 뛰는게 느껴졌다. 이럴때 다른 길로 가는게 상책이다. 그렇지만 이 느낌은 검정계열을 볼때와는 조금 다르다. 웬지 그 색 근처를 맴돌고 싶어만 진다. 그래서 용기내어 보라색으로 가게 되었다. 보라색은 내게 말을 걸었다.


'수업가니?'

'네 전공수업이 있어서요. 인문계열 쪽으로 가던 중이에요.'


우리는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길을 엇갈려 갔다. 가는 내내 나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이런게 사랑이라는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설레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라색은 사랑을 뜻하는 색상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그후 보라색에 대한 짝사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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