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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May 16. 2023

아카시아

공상과학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배가 고프지 않아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그중 가장 특이한 비밀을 이야기 하려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검지 손가락이 몇 미리씩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실을 인지한 건 재작년 여름이었다. 컵을 쥐고 있는 검지 손가락이 중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왼손의 검지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자란 느낌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길이를 재어 보면 길이에 별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르게 보이다니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알게 된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언젠가 이 검지로 인해 나의 세계가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이는 상상도 해보았다.


삼십여 년 동안 오른손은 왼손과 같은 모습으로 인지되어 왔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계기가 되어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첩에서 몇 년 전 사진들을 들추어봐도 오른손과 왼손의 검지에 대해 지금과 같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검지에 대해 이상한 점을 발견한 이는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나에 대한 관심이 없을 터이다. 특히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나의 손가락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그날 난 늘 그렇듯 저녁식사로 사발면을 사기 위해 편의 점에 들렀다. 따로 하는 일은 없어진 이후로 하루종일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 되면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사발면을 산다. 이런 게 나의 루틴이 된 지 좀 되었다. 편의점 한편에 가지런히 진열된 사발면이 심신의 안정감을 준다. 항상 저녁이면 먹던 것을 골랐다. 그리고 오른쪽 한편 냉장칸의 참치김밥도 챙겼다. 그러던중 검지로 냉장 진열칸을 가르키며 가로지르던중 비빔밥과 간장맛 삼각김밥이 원플러스 원이란것을 발견했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참치 김밥을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고 행사 상품을 길어진 검지로 집어 들었다. 역시 나의 검지는 특별하다 생각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남들이 보면 다 큰 어른이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기에 나는 이런 생활들에 대해 조금씩 적응된 것 같다. 이 시간엔 알바가 편의점을 지키고 있다. 그 친구가 알바를 시작한 지는 5개월이 넘었다. 대부분의 알바는 한 달도 안돼서 바뀌곤 했는데 지금의 알바는 5개월이나 편의점을 지키고 있다. 처음 알바가 출근하는 날 밝은 목소리로 크게 인사를 해서 그 이후로 나 역시 인사를 하고 있다. 물론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인사말만 할 뿐이다. 그게 어찌 보면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계산대에 사발면과 행사상품 삼각김밥을 올려놓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드를 내밀었다. 삑 소리와 함께 행사상품 원플러스원이라는 기계음이 나오고 계산을 마쳤다. 돌아가려는데 그 친구가 말했다.


'저기요.'

'검지가 좀 긴 것 같아요. 저는 약지가 좀 긴데.'


부끄러워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뒤돌아 보진 않았다.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을 나섰다. 누군가가 나의 이런 작은 변화를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는 놀라움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난 매일 그 편의점에 들렀지만 그 친구의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별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계절은 어느새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었고, 멀리 보이는 인왕산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인왕산에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내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인지 그날 저녁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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