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처럼의 휴가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제주, 나의 고향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나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이제는 타지에서 더 오래 기간 뿌리를 내리고 있고, 반대로 타지에서 만난 지인들이 내 고향에서 삶을 꾸리며 나를 맞이한다. 나이 들어 귀향할 계획도 아직은 없다. 그런데도 내 정체성의 근원은 아직 그곳에 머무른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가 이런 걸까. 묘하다.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익숙한 장소로 돌아간다는 관성과 점점 낯설어지는 곳으로 떠난다는 생경함이 공존한다.
네모반듯하게 생긴 하얀색 소형 SUV를 빌려, 처음 며칠은 생각나는 대로 예쁜 카페와 식당을 찾아다녔다. 친구의 3살 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 허락된 짧은 시간을 알뜰하게도 썼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혹은 운전을 못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들을 위주로 여기저기 쏘다녔다. 일명 장롱면허로 운전을 놓은 지 오래된 친구는 간만에 나선 나들이에 잔뜩 신이 났다. 문득 친구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이번 기회에 운전 연습을 해보지 않겠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방금 마신 밀크 티의 달콤한 향에 취했던 걸까. 평소에는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하겠다던 친구도 선뜻 내 제안을 받았다.
운전 연습하기 좋은 한산하고 가까운 곳을 찾아냈다. 다음 날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꼬마 숙녀는 우리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꼼짝 말고 자신을 기다리라고 신신당부하고서,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어른들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한다. 노란색 버스가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대충 겉옷만 집어 들고 급히 집을 나섰다. 일찍부터 문을 연 해장국 집에 들러 든든히 아침도 먹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실전이다. 운전 연습을 하러 간 주차장은 한낮인데도 차가 거의 없이 한산했다. 신경 쓸 만한 장애물이라고는 하나 없는 최적의 운전 연습 장소였다.
제일 먼저 친구를 운전석에 앉혀 몸에 맞게 시트를 조정하고 발의 위치를 잡는 법부터 일러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각자 안전벨트를 매고 드디어 친구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공기를 타고 차가 깨어나는 소리가 운전석에서 전해지는 심장소리처럼 느껴졌다. 첫날은 브레이크와 엑셀에 익숙해지는 것이 목표였다. 부드럽게 출발했다 멈출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붙였다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처음에는 덜컹거리던 차가 점차 부드럽게 움직이게 되자 선생님으로서 슬슬 욕심이 났다. 핸들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자고 했더니,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지만 친구도 침착하게 원하는 대로 방향을 잡는다. 차와 한 몸이 되었나 싶을 만큼 움츠러들었던 어깨도 한결 누그러져 편안해 보인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던 첫 날보다 훨씬 훌륭했다. 영 실력이 못 미친다며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더니, 의외로 친구는 운전에 소질이 있어 보였다.
진도를 뺀 김에 후진 주차까지 감히 노려봤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으로 차 후방을 돌려야 할지 헷갈리고 언제부터 핸들을 돌리면서 주차선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첫 주차에 성공했다. 해냈다는 희열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게 운전의 재미인가, 깨달을 무렵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 되어 버렸다. 친구는 긴장 가득한 상태로 브레이크를 밟느라 발목이 저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간만에 목격한 친구의 환한 미소를 나는 쉽게 지우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와야 했던 다음 날도 특훈을 이어가기로 했다. 공항에 가기 전까지 허락된 단 몇 시간이라도 운전 연습을 해보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모처럼 놀러 왔다가 운전 연습을 시켜주느라 무리를 하는 게 아닌지 미안해하는 친구를 초보 운전자일수록 잠깐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차와 친해져야 한다며 설득했다. 온전히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게 해 주고 싶었다. 마지못해 나의 억지를 받아들인 친구는 전날보다 한결 과감하게 운전석에 앉아 편안하게 차를 움직였다. 그리고 몇 번을 주춤거리면서도 멋지게 후진 주차에 성공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조금이라도 차와 가까워지게 해주고 싶었던 만큼, 진심으로 기쁜 마음에 절로 박수를 쳤다.
그때였다. 뻔한 표현이지만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이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어리둥절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맞은 편 계단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할아버지들이 이쪽을 향해 힘차게 박수를 쳐주고 계셨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슬쩍슬쩍 곁눈질로 초보운전자의 수행 과정을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친구는 자신에게 집중된 이목에 어쩔 줄 몰라 얼굴을 숨겼다. 뜻밖의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렇지만 연습을 멈출 순 없었다. 그 후로도 할아버지들은 방향에 맞게 움직여야 할 운전대 방향을 가리켜가면서 귀여운 훈수를 두셨다. 그리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변함없이 큰 박수로 친구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참 잘했어요
달갑게 쏟아지는 박수에 어릴 적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처럼 벅찼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로부터 과분한 찬사를 받았던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뒤뚱거리며 첫 걸음마를 뗐을 때, 옹알이만 하던 작은 입술로 ‘엄마 아빠’를 불렀을 때, 너무나도 간단한 구구단을 뗐을 때, 남들 다 받는 졸업장을 받았을 때, 사소한 것 하나에도 우리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주던 관심과 애정이 그리웠나 보다. 창피하다며 고개를 돌리는 친구와 달리 나는 속이 뻐근하게 뭉클했다.
의례적인 호의와 날선 경계심이 넘치는 가운데 나이만 먹었을 뿐 여전히 속은 미성숙한 나는 칭찬이 고프다. 어쩌면 나조차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만 들이대며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분명 어제보다 성장했다. 나만의 색으로 오늘보다 내일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자축해도 좋겠다. 오늘도 난 참 잘 살았다고. 그리고 잘 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