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사춘기 8화. 행운을 흘리셨나요
친한 동생이 꿈을 꿨단다. 어떻게 어떤 이유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속에서 그 동생은 갯벌 한복판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조개를 파고 있었다. 한참을 열중하던 차에 손바닥에 버금가는 큰 조개가 나왔다. 색깔도 예쁘고 맨질맨질하니 촉감도 기가 막히다. 이렇게 탐나는 조개들이 손을 대는 자리마다 쏟아져 나왔다. 여기가 노다지구나 싶어 절로 신이 났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조개의 촉감이나 색깔이 너무나 또렷해서, 이건 분명 길몽이구나 싶었단다.
검색을 해보니 조개 캐는 꿈은 딸을 낳는 태몽이거나 재물이 쌓일 꿈이라고 했다. 이렇게 좋은 꿈을 선뜻 나에게 주었다. 아마도 아이를 기다리는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였으리라. 평소 길몽이나 흉몽이니 특별히 의미를 두지는 않는 성격이지만, 상대의 진심을 알기에 내 신념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좋은 것이 생겼을 때 우리를 떠올려준 다정함이 애틋했다. 꿈은 거저 받는 게 아니라는 어른들 말씀이 떠올라, 약소하나마 꿈에 값도 치렀다. 하지만 꿈 하나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로또 1등에 당첨이 되면 제일 먼저 뭐부터 할까
나 역시 이따금 엉뚱한 상상을 하긴 한다. 로또에 당첨되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지. 공기 좋은 시골에다 별장 하나를 지어놓고, 일은 취미처럼 여기고 소일거리 하듯 즐기며 살아야겠다. 힘들 때마다 통장 잔액을 보며 얼마나 행복할까. 가족들에게 작은 집 하나씩을 장만해주고 다 같이 한 동네에 어울려 살면 좋겠다. 섣부른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니 그냥 안전한 투자처에 넣어두고 이자나 받으면서 살까. 헛물켜는 줄 알면서도 곧 부자가 될 것처럼 앞으로의 일을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로또를 사는 데에는 게으르다. 이따금 사더라도 당첨번호도 제대로 맞춰보지도 않는다. 그런 어마어마한 행운은 내게 일어날 리 없다고 믿는 염세주의자라서 그런가. 일주일 동안 행복을 누린 것만으로도 제 값은 다 치렀다고 여겼다.
아직 여름 늦더위가 가라앉은 일요일 오후였다. 왜 사람은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막상 외출하면 집에 돌아가고 싶어질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탓인지 여전히 기세등등한 폭염에 지친 건지, 남편과 나는 하나같이 녹초가 됐다. 말할 힘조차 없어 차 안은 오직 정적만 흐른다. 눈만 붙이면 당장에라도 낮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누군가 시공간의 문을 열어 이대로 집에 데려다 줬으면 하는 심경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정신을 집중하고 안전히 운전하며 귀가하는 데 성공했다.
차에서 내리니 모든 긴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가운데 시야에 잡힌 무언가에 무거웠던 두 눈을 번쩍 뜨인다. 주차장에 웬 하얀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봉투가 꽤나 두둑하다. 혹시 누가 돈을 흘렸나. 분명 피곤해서 흐느적거리던 다리가 재빨리 그쪽으로 움직인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남편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얼른 관리사무소에 맡겨 주인이 찾아가도록 해야겠다는 정의감을 들어 봉투를 집었다. 그런데 웬걸. 그 안에는 지폐 대신 로또가 한 가득이었다. 번호 6개가 한 묶음인 숫자 1줄마다 1천원을 내야 하니, 이 정도로 많은 복권을 사려면 족히 10만원 가까운 큰 비용이 들었을 듯했다.
당첨이 안 됐다고 분이 나서 버린 걸까. 실수로 흘린 걸까. 아무래도 전자 쪽이 우세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전날 발표된 당첨번호 일부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대충 훑어봐도 일치하는 숫자가 드물었다. 당첨번호와 맞는 번호가 있더라도 각각 다른 줄에 있었다. 모두 꽝. 봉투의 주인은 아마도 조상 꿈을 꾸지 않았을까. ‘드디어 조상 제사를 잘 모신 덕을 보는 구나’라고 확신하며 이렇게 거액을 들이지 않았을까. 그 조상님은 장난기가 많은 분이셨나 보다. 후손의 쓰린 속을 그날 밤 꿈에서 달래주셨는지 모르겠다.
슬그머니 봉투를 제자리에 내려놨다. 처음에는 봉투에 접근하지 말라던 남편은 이번에는 또 왜 봉투를 그대로 두냐고 묻는다. 원래 주인에게 이미 이 복권들은 쓰레기일 테니, 일부러 찾으러 올 리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별 거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찰나의 행복을 맛보게 하고 싶으니까. 지친 하루 중에 기분 좋게 웃어넘길 수 있는 작은 계기 하나쯤은 될 수 있으니까. 만 원짜리 지폐 시늉을 한 홍보 전단지를 주웠을 때처럼 당황스러운 감정이 뒤따를지언정 굴러다니는 낙엽 하나에도 깔깔거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남편은 이런 나를 심술궂다 했다.
안타깝게도 친한 동생에게서 꾸어준 꿈 역시 그냥 꿈이었던 모양이다. 실망스럽진 않다. 누군가 흘린 행운 덕분에 무채색이었던 하루가 소소하지만 유쾌한 기억이 되었으니까. 흔히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을 번개 맞을 확률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당첨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런 굉장한 운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불운하다는 뜻을 아닐 거다. 그러므로 또 나는 꿈을 꾼다. 하염없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기보다 나와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위에 내린 행운을 발견할 수 있기를. 나라는 존재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기를. 지금 우리 여기서도 충분히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