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아파트 입구 주차장에 작은 장이 선다. 웬만한 식재료는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편이지만,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그 앞을 어슬렁거리다 떡볶이 한 접시 마침 똑 떨어진 애호박 하나 사가지고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맡겨놓은 물건 찾듯 꼬박꼬박 들르는 과일 가게도 있는데, 우리가 먹을 과일은 모두 이곳 출신이다.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거의 매주 다니다 보니 원색의 파란색 천막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안면이 익었다. 이곳 덕분에 새로운 딸기 품종을 접하고, 청송 말고도 사과를 탐스럽게 키워내는 지역 이름을 알게 됐다. 어느 즈음에 체리가 물이 올랐는지 계절을 가늠하고 솜씨 좋은 농부의 이름을 익히게 됐다. 내가 고른 과일을 두고 술술 풀어놓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내용 하나하나까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즐겁다. 어느 가게를 지나다 익숙한 농부의 이름을 발견할 때면 아무도 모르게 반가운 체를 한다.
이 과일 가게의 장점은 단연 질이다. 마트에서 파는 과일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다소 비쌀 때가 많지만, 일단 맛을 보면 맛으로 모든 게 납득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적이다. 무조건 비싼 과일만 권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과일이 있다면 그대로 내어주지만, 오늘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으면 진짜 제일 맛 좋은 걸 꺼내주신다. 매번 질이나 맛보다는 가격만 보고 그때그때 제일 부담 없는 과일을 고르다, 어느 날은 그마저도 결정하기가 어려워 물었었다. 오늘 어떤 과일이 제일 맛있냐고. 그 동안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척척 본인이 판단하기에 맛 좋은 과일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맛있다고 무조건 비싸진 않다. 대체로 비싼 과일이 맛도 좋다 생각하지만, 항상 가격에 맛이 비례하지는 않았다.
올해는 워낙에 궂은 날씨 때문에 웬만한 과일값이 올라서, 예전 같으면 편히 집던 과일도 벌벌 떨며 두 개 먹던 거 하나 먹는 식으로 지갑 한 번 여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사과 하나에 5천원이 넘기도 했으니, 올해는 과일 하나 사는 데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던 지난 가을 어느 날, 그날도 어떤 과일을 골라주실까 기다리고 있자니 가게 제일 맨 앞에 내놓은 연시를 들고 오신다. 동글동글 윤기도 자르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연시 10개에 만 원, 맛도 기가 막힌단다. 그날 값비싸 보이는 과일은 가격이 맛을 못 따라간다고 솔직히 평한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연시 하나씩을 나눠 들고 스푼으로 속을 퍼 먹자니, 과연 저절로 감동이 차올라 찡해지는 맛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어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부럽지 않다. 어째서 이렇게 맛난 것을 왜 더 사오지 않았나 후회될 지경이었다.
나름 단골이 되었다고 느낀 건,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지독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남편이 자신의 대부님과 나들이를 간다고 하길래, 냉장실에 있는 수박을 숭덩숭덩 썰어 간식으로 먹으라며 들려 보냈었다. 한바탕 밖에서 땀을 흘리고서 보냉 가방에 두어 아직 시원한 수박을 먹자니, 더위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만큼 꿀맛이라고. 남편의 대부님은 이런 수박을 어디서 샀느냐고 당신도 사고 싶다고 물으셨단다. 괜히 으쓱해진 남편은 집으로 오는 길에 대부님과 함께 과일가게로 안내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부님께 수박을 선물하고 싶다며 가장 좋은 수박을 꺼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의기양양하게 우리에게 주려고 따로 숨겨놓으셨다며 가게 뒤 쪽에서 그 날 최고의 수박을 꺼내오셨다. 남편은 자기 돈을 쓰고도 뿌듯했다며, 한참 동안 신나게 후일담을 늘어놨다. 단골로서 기가 살았다. 당연히 수박 맛은 꿀맛이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를 기다렸다’는 말에 마음이 일렁였다. 우리만 반가운 줄 알았다. 가까워진 줄 알았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천막을 치지 않을 수 없다며 폭염에도 좌판을 펴는 성실한 고집이 고마워 때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나눠 먹기도 했고, 사과 한 봉지에 사지도 않은 귤 몇 개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작은 친절이었다. 그 이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감히 넘보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방도 그 마음에 응했다. 어떤 날은 그 날 팔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자기가 먹어야 한다며, 원가도 되지 않을 만큼 헐값으로 달디 단 과일을 쥐어주시기도 한다. 멀리서도 우리가 보이면 그 날 과일을 사지 않고 지나가더라도 환영하며 안부를 전한다. 과일 가게 사정에 훤해졌다. 서로의 가족도 안다. 판매자와 구매자로 만났지만 서로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익숙한 얼굴이 친근하게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꺼내놓는 곳. 나는 여전히 토요일마다 어떤 선물을 받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스스로를 단골이라 칭해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 사이에 달달한 정이 있다. 다가오는 주말이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