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키워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어른도 그렇다
얼마 전 형님 생일을 맞아 모처럼 밖에서 만났다. 추위를 녹여줄 뜨끈한 솥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을 찾아 헤매던 길에 눈여겨뒀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며느리들에게 후식은 수다이기 때문이다. 대화 주제는 늘 뻔하다. 몇 년 뒤면 고3 수험생이 될 조카가 사춘기를 맞아 다른 인격이 들어온 것 마냥 낯설어졌다는 푸념, 언제쯤 철이 드나 싶은 남편들의 뒷담화, 언젠가 현실로 이루고 싶은 노후의 꿈. 우리는 늘 비슷한 레퍼토리를 늘어놓고도, 언제나처럼 마음이 정화되고 헤어질 땐 아쉽다. 한창 손님으로 북적거려야 할 카페가 점심시간에도 한산했다. 덕분에 우리끼리 대화에 집중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근래 마신 라떼 중에서 가장 예쁜 라떼아트를 보고 감탄하며, 아르바이트생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였다.
일상과 다른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이 여유로운 공간에서 문득 지난 여름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주말이었다. 세차장에 차를 맡기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혹독했던 더위 때문인지 시원하게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햇살마저 뜨거웠던지 다른 자리에 비해 인기가 없는 창가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서로의 대화를 숨겨주려는 듯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 시원한 음료에 녹아내린 마음을 주고받는 말소리에, 둥둥 떠다니는 공기마저도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 북적이는 공기 속에서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 갓 대학교에 들어 갔으려나 싶을 만큼 앳된 얼굴을 한 소녀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기존에 들어온 주문을 겨우 따라잡았다 싶으면, 금세 그보다 많은 주문이 밀려들었다. 마치 42,195km의 마라톤을 100m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속도로 뛰어야 하는 심정이랄까. 그래도 새로운 손님들에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안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사색이 된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을 보고서는 상황을 짐작하겠다는 듯 알아서 발길을 돌렸고, 몇몇은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던 어떤 사람은 구겨진 표정으로 티 나게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풍경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달랐다. 몇 분마다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고 알리는 배달 어플의 기계음이 마치 더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르바이트생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상대는 카페 사장님인 듯했다. 배달 어플로 주문 접수가 안 되도록 막아뒀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주문이 밀려든다며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떤 답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전까지 버티고 있던 평정심은 깨진 듯 보였다. 음료를 만들어내는 손길은 떨렸고, 안색은 점점 창백해졌다. 멀리서 바라보기에도 그는 이미 위태로웠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결국 무너졌다.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카페 안을 가득 채우던 소음들이 모두 멈췄다. 적막한 공기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아니 어떤 말도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그에게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사람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그를 구원해줄 존재인 사장님은 감감무소식이고, 혹시 온다 해도 그를 도와줄 아군이 나타날 때까지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들(?)을 막아내야 했다.
울지 마, 바보야!
그때였다. 방금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함께 온 친구와 열변을 토하던 할아버지 한 분이 뚜벅뚜벅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 소리는 높았지만, 화를 내고 있다기보다는 ‘뚝’하고 울음을 그치라고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이 겹친다.
하나씩 하면 돼. 하나씩!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뭐라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따끔하고도 다정한 말투였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무엇도 하지 않았던 내가 실은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막연히 힘내라는 위로보다 설득력 있는 구원.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지 않았을까. 잠시 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음악 소리를 넘기고서야, 여태 서러움을 토해내던 아르바이트생은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막 이 공간에 합류한 사람은 무슨 일이 있었던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버텨내기 힘든 순간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순식간에 불어난 눈덩이가 큰 산이 되어 나를 덮칠 때, 작은 애정이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 작은 선의를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 명의 아이를 키워내려면 한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다 큰 어른에게도 자신을 지켜줄 주변의 선의가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일으켜주는 그런 순간이 결코 비현실적인 마법은 아닐 테다. 우리 안에는 각자 그런 용기와 온기가 있으니까. 그러니 울지 마,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