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갑상선기능항진증 약을 받으러 약국에 들렀었다. 처방전을 건네고 내 이름이 불리면, 간단한 복약 지도를 듣고 약을 챙기면 되는 너무나 단순하고 익숙한 일. 따로 조제를 할 필요도 없이 한 통을 통째로 받으면 되는지라, 앞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약국에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데 빠르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날은 여느 때와 달랐다. 평소 못 보던 약사님이 약과 처방전이 담긴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앞에 두고 내 이름을 불렀다. 비행기 기내식이 나오기도 전에 테이블을 내리고 준비하는 한국인답게 신속한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를 꺼내려는 찰나, 얼마 전 간 질환 약을 타갔었는지를 재확인한다. 그렇다고 답하니, 장기간 갑상선 약을 복용하면 간이 약해질 수 있다면 관련 증상들을 줄줄이 읊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영양제 몇 가지를 권한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했다. 난임으로 시험관을 진행 중이라 함부로 영양제를 먹을 수 없는 데다 이미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그럴 듯한 이유도 댔다.
그러나 새로운 약사는 끈질겼다. 내가 복용하는 영양제 종류를 듣고 종이에 받아 적더니 그 중 어떤 영양제는 본인이 권하는 회사 제품이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각종 도형과 전문 용어가 난무한 두꺼운 클리어파일을 펼치며 열변을 토했다. 오래 아이를 갖기 못한 부부가 자신이 추천해준 영양제를 먹고서 바로 임신했다고, 이전 같으면 귀가 솔깃했을 미끼를 던졌다. 단칼에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모든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해방됐다. 그 후로 그 약국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유쾌하지는 않았다. 의례적인 영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난임 부부의 간절함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기분이었다.
한때 나도 영양제 보태보태(?) 시기를 보냈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는 영양제를 보태고 늘려가는 시기 말이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몸에 나쁜 것은 멀리하고 몸에 좋은 것을 가까이하려는 게 당연하다.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엄마와 아빠의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니까. 영양제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간 소홀했던 영양적인 균형을 바로 잡아 임신 확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가격에 상관없이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면 해외 직구를 해서라도 손에 넣었다.
PGT(배아 염색체 검사) 검사를 하기로 결심한 이후로 만 2년여 동안 그런 생활이 지속됐다. 항산화제가 난자질과 정자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길래, 종합비타민에 활성엽산(일반 엽산보다 흡수율이 높다)과 비타민D, 오메가3, 코큐텐(혹은 유비퀴놀)은 기본이고 각종 항산화제들까지 하나씩 추가했다. 이것저것 보태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각종 영양제를 복용하는 일정으로 빡빡했다. 한창 종류가 많을 때는 하루에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가 20개에 근접해서,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거나 이렇게 먹다가 영생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영양제를 구매하는 데에만 매달 50~60만원이 들었다.
지금은 영양제 개수를 확 줄였다. 종합영양제와 활성엽산 1알, 비타민D 1알, 오메가3 1알, 유산균 1알. 이게 다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특별히 난임에 영향을 끼치는 원인이 없다면, 이 정도 영양제로도 충분하다. 임신 성공률 100%인 난임 영양제가 있다면, 우리가 다니는 난임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먹으라고 권하지 않았을까? 세 군데 병원을 거치는 동안 반드시 하는 질문이 시험관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로는 뭐냐는 것이었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들은 한곁 같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은 초진 상담 당시 기존에 구매해둔 영양제들은 아까우니까 먹고 다 먹고 나면 새로 구매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의학적으로 효과가 증명된 영양제는 기본 영양제 몇 가지일 뿐인데다 난임 부부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고 일부 제약업계들의 상술에 분노하시기도 했다.
종합영양제와 활성엽산 1알, 비타민D 1알, 오메가3, 유산균. 이렇게만 먹고도 불안하지 않냐고?
전후 채취 결과가 말해준다. 큰 변화가 없다. 그러니 영양제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일일이 여러 영양제를 일일이 챙길 여유가 없다면 종합영양제 하나로도 충분하다. 한 번은 5일 배양 배아가 꽤 많이 나왔었는데 비싼 돈을 주고 추가한 영양제 덕분인가 했더니, 동일하게 영양제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차수 결과는 영 지지부진했다. 영양제 영향이 아주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게 임신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다.
그냥 그달의 내 몸 속 환경이 다를 뿐이다. 들쑥날쑥하는 추이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기간 영양제 부자이기를 단념할 수 없었던 건, 영양제 개수를 늘린 뒤로 얼마간 5일 배양 배아가 나와 주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내 노력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시기에 전력투구했었던 만큼, 이제는 영양제 부자였던 시절을 돌아보지 않는다. 더 이상 영양제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난임에 좋은 영양제, 임신에 도움 되는 영양제를 수소문하는 그 마음을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껏 늘어놓은 말들은 그래도 그 시기를 겪어봤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무엇 하나 내 의지가 먹히지 않는 시험관 시술에서 유일하게 내 생각 내 주장대로 선택할 수 있는 틈이니까. 누군가가 어떤 영양제를 먹어서 임신을 했다는 말이 내내 귀에 맴돈다면, 의학적으로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단 한 점의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도록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도 좋다.
단, 자기에게 유의미한 결과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이 우선. 한 주기에 여러 종류를 동시에 복용하고 싶다면 2~3종류부터 시작해서 다음 차수에는 하나씩 줄이거나 늘리면서 나만의 조합을 찾아가는 것이 적절하다. 결과가 좋았던 차수의 영양제는 유지하고 여기에 새로운 영양제 하나를 추거하거나 나와 맞지 않았던 영양제는 줄이는 식이다.
그리고 난임 영양제는 최소 3개월 전부터 복용한다. 난자가 완전히 성숙하기까지 대략 3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짧게는 최소 6주 전부터라도 영양제를 복용하도록 병원에서도 안내한다. 난임 영양제를 중단하는 시기는 병원마다 다르게 보기도 하는데 보통은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하는 날부터 난임 영양제를 중단하면 된다. 코큐텐 같은 항산화제는 채취 전날에 끊으라고 권장하는 곳도 있다.
정답은 없다. 난임 영양제를 늘리든 줄이든 몸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방향이면 된다. 하다못해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지라도 내 마음이 믿는다면 내 몸도 따라 움직여줄 수도 있으니까. 나처럼 영양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서로 격려하면서, 각자의 답을 점검해 나가면 좋겠다. 결과에 따라 언제든 다듬고 바꾸면 된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부족하거나 넘쳤을지라도,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러니 그때도 지금도 우린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