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이식 1일차, 2일차 감정 기록
9번째 이식을 마쳤다. 전원을 하고 벌써 3번째 이식이다. 누군가 사탕을 주머니에 품고 들어갔다 임신이 되었다고 하길래, 요즘 즐겨 먹는 캐러멜 사탕도 챙겼다. 이 사탕은 이식 후 바로 내 입으로 들어갔다. 이식 전 착상을 돕는 IVC-F 5000과 배 주사(이름은 물어보지 않음), 후리아민 주 8.5%짜리 영양 수액을 맞았다. 채혈 검사 결과에 따라 이식 후 피검 전까지의 처방을 유지할지 바꿀지 결정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프로게스테론을 비롯한 여러 수치가 다 양호하다. 이식 후 쓰는 경구약과 질정, 주사는 미리 받아 둔 그대로 쓰면 된다.
이식 전 담당 선생님이 배아를 찍은 초음파 사진을 꺼내 설명해 주신다. 오늘 품은 4일 배양 배아 3개 중 2개는 중하급, 1개는 상급이지만 분열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등급이 중요하지 않다지만, 주의 깊게 듣는다. 뚫어질 것처럼 사진을 머릿속에 새겨본다. 어쩌면 내 아이와의 첫 상견례일 수 있으니까. 자궁이 약간 꺾인 바람에 진땀을 빼긴 했지만 무사히 이식은 끝났고 10일 뒤 1차 피검으로 임신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 전까지 소화해야 할 일정과 약속들이 빽빽해서 다행이다. 이식한 사실을 잊고,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으니까.
벌써 5년 동안 시험관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궂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시험관을 통해 강인함을 배웠고, 남편과 가까워졌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 단톡방을 통해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깨고 나와 더 큰 세상을 알게 됐다. 힘든 사람과 상황에 직면하면 황급히 회피하곤 했던 성격에서 한 단계 성장했다. 결과론적인 성과에 기댄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분명 나는 난임으로 조금은 더 강해졌다고 여긴다.
왜 나는 아이가 갖고 싶은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만원 전철 안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철도노조 파업으로 전철의 배차 간격이 길어지면서, 본격적인 퇴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역마다 전철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겨우 올라탄 전철 안에서 제대로 서 있을 공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과 부대끼자니, 하차할 역에 다다를 즈음엔 온몸의 기운이 빠졌다. 내릴 역을 몇 정거장 앞두고서야 빈 자리가 났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유명한 난임 병원이 있는데도, 굳이 시간을 들여 지금의 병원을 오간다. 워낙에 대기가 길기로 소문난 담당 선생님을 만나려면, 하루 반나절은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짠순이인 내가 선뜻 거액을 턱턱 들여, 고생길을 자처하고 있다.
근종 수술 후 앞으로는 가임력이 뚝 떨어질 수 있다는 말에 놀라 얼떨결에 발을 들이게 된 시험관이었다. 처음에는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의 간극에서 오는, 오기였던 것도 같다. 순수한 자의로 인한 동기가 아니었기에,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공부도 운동도 작심삼일에 그치곤 했던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사소한 걱정에도 잠 못 이루던 내가 어째서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는 온다고 확신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는 걸까?
이식 2일차, 각종 호르몬제의 영향인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이유 없이 심기가 불편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해, 이럴 땐 몸을 움직인다. 이틀 전 지하철역 찬 바닥에 앉아 채소를 팔던 할아버지에게서 산 콩나물로 국을 끓이고, 콩나물불고기를 만들어 점심을 차렸다. 콩나물을 듬뿍 넣어서 그런지, 콩불이 탑처럼 수북하다. 남편은 또 덕선이 엄마가 소환됐냐며 놀린다. 평소처럼 받아질 컨디션이 아니다. 기분이 나쁠 땐 남편에게 솔직하게 기분이 나쁘다고 말한다. 남편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감정의 굴곡을 받아들여준다.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됐다.
남편에게 물었다. 왜 아이를 갖고 싶으냐고. 그랬더니 일체의 고민도 없이 ‘행복하니까’라고 말한다. 남편의 답은 항상 단순하고 쉽다. 남편에게 아이는 ‘갖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해서 행복한’ 존재였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가족이 완성된다거나 나를 닮은 자식을 봐야 한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감과는 달랐다. 아직 오지 않은 작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해주고 싶은 것들을 끝없이 떠올리며 마음으로 벌써 배가 부르다. 이런 남편을 닮은 아이와 함께라면, 그게 어떤 세상이든 재밌을 것 같다. 늦은 나이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젊은 엄마아빠보다 한층 고생도 많이 하겠지만, 힘들어도 해볼 만하겠다 싶다. 혼자서 담아두지 말고 나누길 잘했다. 긍정 회복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