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이식을 앞두고
9번째 동결 이식을 준비 중이다. 다발성 자궁근종이 있다 보니 한 달 전 근종 크기를 줄여 내막에 착상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루프린¹ 주사를 맞았다. 그로부터 2주 후 시작된 생리가 끝났는데도 소량의 부정 출혈이 일주일간 계속됐다. 내심 이번 이식은 어렵겠다고 짐작하고 남편과 남해로 여행을 가자는 계획까지 세워뒀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은 너무나 평온한 목소리로 루프린 주사를 맞고 난 뒤 으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초음파 검사 결과 근종 크기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데도 근종으로 눌렸던 내막이 펴졌다고 했다. (아니 그렇다면 그 동안 나의 내막은 구겨져서 비좁았다는 말씀?) 한 번 더 루프린을 주사해 재차 근종 크기 줄이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지금도 배아를 이식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란다.
현재는 하루 3알의 프레다 정²을 복용하면서 내막 두께를 키우고 있다. 다음 진료 때는 내막 두께를 보고 이식 날짜를 정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달 첫째 주 전후로 9번째 이식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번 채취로 두 개의 배아가 생겼고, 그 전 채취 때 동결해둔 하나의 배아가 있다. 두 번의 채취 중 가장 최근 것 두 개의 상태가 상대적으로 등급이 높다고 했다. 아마 배아 2개를 이식한다면 가장 최근에 생성된 배아들을 해동하게 될 듯하다.
고차수라고 해서 말랑말랑한 심장이 단단해지진 않았다. 다만 약간의 요령이 생겼는데, 무덤덤한 척 기대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나를 요동치게 하는 감정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번에 안 되면 어쩌나’ ‘다음 시험관을 하게 되면 비용도 그렇고 일은 어쩌지’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일부러라도 시험관을 제외한 일상에 집중한다. 불쑥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덮치면 이번엔 다를 거라고 잘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올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는 아가와 밀당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도 자꾸 검색을 하게 되고 인터넷 카페를 들락날락하게 되고, 나와 비슷한 차수에 성공했던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나도 선생님께 처방을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해야 할까’라는 마음이 들 때면 모든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말한다.
‘안 되면 또 하지, 뭐.’
그때 걱정은 그때하면 된다. 다행히 이번 차수에는 여러 가지로 분주하게 지내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험관 일정을 점검할 겨를도 없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달력 한 번 들여다 볼 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다음 진료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과정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지금 복용하는 프레다 정은 반드시 8시간 간격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말에 오며가며 책상 위에 꺼내놓은 약이 보일 때마다 한 알씩 꺼내 먹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1알 나머지 한 번은 2알도 괜찮다. 칼 같이 앞뒤로 똑같이 시간 간격을 두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약 먹기를 잊었다면 지금 2알을 먹으면 된다. 점심에 잊었다면 저녁에 2알. 단, 프레다 정 3알을 한 번에 다 복용하는 건 안 된다. 약 효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시험관을 하다 보면 ‘내려놔야 아가가 온다더라’라는 말을 적어도 한두 번은 듣게 된다. 내려놓는다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어떻게 기대하지 않는 일에 선뜻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나 스스로 느끼기에 시험관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다면, 각종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의 연결 고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난번에 안 됐더라도 이번에는 잘 될 수 있고, 이번에 잘 안 되더라도 다음번에는 잘 될 수 있다. 내 주치의를 믿고 모든 노력을 다하는 나를 믿고 내가 와줄 배아를 믿고 최선을 다 한다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와 미련도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며칠 전 이식일이 정해졌다. 내막이 8mm로 적당히 잘 자랐고, 난소도 근종으로 눌렸던 내막도 자궁도 모두 상태가 양호하다. 배아는 최근 두 차례 채취로 얻은 3개를 4일 배양 배아 상태로 이식할 예정이다. 주치의는 평온한 말투로 그 중 하나는 등급이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육안으로 최상급이라고 판단했던 배아도 PGT 검사를 통과했던 정상배아도 착상이 안 되거나 유산이 되었던 경험을 되새겨 보면, 이번에도 겉과 속이 다른 배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잘 되면 좋겠다.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품는 동안만큼은 분명 우리의 아이니까, 예뻐해 주고 환영해주어야겠다. 혹시 안 되면 또 기다려 주면 된다. 나와 남편을 닮은 우리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니까. 그 모든 이유는 너니까.
1. 루프린: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는 난포 자극 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 이식 전 자궁 크기나 근종을 줄이는 등 자궁 상태를 호전시켜 아기 자랄 공간을 만들어준다. 1차 주사 후에는 생리가 나오지만 2차부터는 생리가 나오지 않거나 소량 출혈이 있을 수 있다.
2. 프레다 정: 호르몬 조절 제재로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고 자궁 경부 점액을 만들어 준다. 이 약을 복용하면 배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피임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하루 3번씩 시간 간격을 복용하도록 권고하는데, 하루 한 번은 1알 다른 한 번은 2알 먹어도 하루 종일 약의 효과가 유지된다(단 3알을 한꺼번에 먹는 것은 안 됨). 프레다 정은 보통 임신 확인 시까지(일반적으로 이식 후 8~10일) 유지한다.